크라스노쇼코프가 병으로 해임된 후, 레닌은 몰로토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항의했다. "우리는 이 사람을 괴롭혀왔다 —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두뇌와 에너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인데도 말이다."
극동공화국의 초대 수반(1920~1921)이자 소비에트 초기 혼합경제 실험의 핵심 설계자.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노동운동 변호사로 활동하다 1917년 러시아로 돌아와 곧바로 볼셰비키에 합류했다. 내전기 일본군 철수를 위해 레닌을 설득해 완충국 극동공화국을 수립했으며, 직접 영어로 헌법을 기초하고 수상 겸 외무장관으로서 일본과의 고고타 협정을 성사시켰다. 이후 재무부인민위원, 최고경제회의 간부를 거쳐 산업은행(Промбанк)을 설립해 네프 시기 산업금융의 제도적 기반을 닦았다.
경력 연표
- 1896키예프에서 불법 마르크스주의 그룹 가입
- 1902독일로 망명, 1903년 미국 이주
- 1912시카고대학 법학부 졸업, 노동변호사 개업
- 1917–1918블라디보스토크·니콜스크-우수리스크 소비에트 지도자, 극동인민위원회의 의장
- 1920–1921극동공화국 정부 주석 겸 외무장관
- 1921–1922RSFSR 재무인민위원회 부인민위원
- 1922–1923최고경제회의 간부회의 위원 · 산업은행(Промбанк) 설립 및 초대 총재
- 1923도브롤료트(Добролёт) 초대 이사회 의장
- 1924–1925부패 혐의로 체포·6년형 선고, 이듬해 사면
- 1926–1937농업인민위원회 신규인피작물 총국장, 섬유작물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