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크라스노쇼코프

Александр Михайлович Краснощёк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러시아 (우크라이나 출생, 유대인) 1880–1937 ✕ 처형

극동공화국을 설계한 실용주의 볼셰비키

크라스노쇼코프가 병으로 해임된 후, 레닌은 몰로토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항의했다. "우리는 이 사람을 괴롭혀왔다 —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두뇌와 에너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인데도 말이다."

극동공화국의 초대 수반(1920~1921)이자 소비에트 초기 혼합경제 실험의 핵심 설계자.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노동운동 변호사로 활동하다 1917년 러시아로 돌아와 곧바로 볼셰비키에 합류했다. 내전기 일본군 철수를 위해 레닌을 설득해 완충국 극동공화국을 수립했으며, 직접 영어로 헌법을 기초하고 수상 겸 외무장관으로서 일본과의 고고타 협정을 성사시켰다. 이후 재무부인민위원, 최고경제회의 간부를 거쳐 산업은행(Промбанк)을 설립해 네프 시기 산업금융의 제도적 기반을 닦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극동공화국: 완충국의 설계와 한계

극동공화국(ДВР, 1920년 4월~1922년 11월)은 크라스노쇼코프의 정치적 창작물이자, 소비에트 역사에서 가장 이례적인 국가 실험이었다. 1920년 초 내전이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극동에는 약 17만 5천 명에 달하는 일본군이 주둔해 있었다. 서쪽으로는 폴란드 전쟁과 브랑겔군과의 교전까지 겹쳐, 일본과의 정면 충돌은 모스크바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었다. 크라스노쇼코프는 이반 스미르노프와 함께 '완충국' 구상을 제안했고, 전선을 넘어 톰스크의 붉은군대 사령부에 도달해 레닌을 설득했다. 공화국은 형태상 독립적 민주 국가로, 실질상 모스크바가 통제하는 완충국으로 1920년 4월 6일 선포되었다.

크라스노쇼코프는 이 국가를 문자 그대로 손수 조립했다. 헌법은 러시아어가 아니라 그가 미국에서 익힌 영어로 먼저 쓰였다. 정부는 처음부터 연립으로 구성되었다.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PSR)의 합법화를 고집하고 이들을 각료로 끌어들였으며, 당적 없는 실무가, 대표적으로 훗날 할리우드 배우 율 브린너의 아버지가 될 블라디보스토크 기업인 보리스 브린너, 도 무역·공업 부문 책임자로 기용했다. 1920년 7월 헌법의 기본 원칙을 묻는 크라스노쇼코프에게 레닌은 이 한 문장으로 답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작은 특권을 준 민주주의는 허용된다.」 1921년 제정 헌법 제1조는 '극동공화국은 민주 공화국으로 설립된다'고 선언하면서도 토지·광물·산림·수역의 국가소유를 규정했고, 재정·경제 조는 '사유재산 제도는 보존된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 혼합경제 실험은 1년 뒤의 네프를 사실상 앞서 시험한 것이었다.

그의 외교적 성취는 군사적 승부 못지않게 결정적이었다. 1920년 5~7월 고고타 역 협상에서 일본군 대표 타카야나기 장군과 교섭해, 7월 15일 고고타 협정으로 베르흐네우딘스크와 치타 사이에 중립지대를 설정했다. 파르티잔의 끊임없는 압박에 시달리던 일본군은 이로써 '체면을 잃지 않고' 자바이칼에서 철수할 수 있게 되었고, 10월 22일 민중혁명군이 치타를 점령해 유럽 서부만 한 크기의 영토를 통일했다. 크라스노쇼코프는 모스크바에 이렇게 타전했다. 「극동의 통일은 완결된 사실이다.」 레닌은 나중에 그를 두고 '거의 전부를 그가 조직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그러나 그가 설계한 바로 그 요소들이 그를 끌어내렸다. PSR과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RP)의 합법화, 이들을 정부 연립에 집요하게 끌어들인 점, 그리고 RSFSR로부터의 극동공화국 독립을 지나치게 강조한 점이 함께 일하던 공산주의자들(니키포로프 총리 포함)의 고발 대상이 되었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비호 덕에 한동안 버텼지만, 결국 1921년 말 공화국 밖으로 소환되었다. 완충국은 그 목적을 다하자마자 사라졌다. 1922년 10월 붉은군대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입성했고, 그해 11월 극동공화국은 RSFSR에 편입되었다. 크라스노쇼코프가 증명한 것은, 이례적인 다당제와 시장 실험이 혁명의 지리적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만들어지고, 필요가 사라지면 얼마든지 접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