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로스메르

Alfred Rosmer

생디칼리슴에서 코민테른·제4인터내셔널까지: 혁명의 한 세기를 관통한 프랑스 국제주의자

레닌은 로스메르를 이렇게 평했다: "그는 다섯 가지나 여섯 가지 언어로 침묵을 지키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 필리프 로브리외, 『프랑스 공산당 내부사』에서 인용

미국 태생의 프랑스 혁명적 생디칼리스트이자 코민테른 지도부 핵심 인물. 피에르 모나트와 함께 《라 비 우브리에르》를 발행하며 반전 국제주의 운동을 조직했고, 모스크바에서 17개월간 체류하며 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프로핀테른) 창립을 주도했다. 프랑스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활약하다 1924년 트로츠키 옹호로 제명된 후 좌익반대파와 트로츠키주의 운동에 투신했으며, 1938년 자신의 페리니 자택에서 제4인터내셔널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만년에는 알제리 전쟁 반대 선언에 서명했고 회고록 『레닌의 모스크바』를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혁명적 생디칼리슴과 반전 국제주의

로스메르는 프랑스 노동운동의 가장 뛰어난 혁명적 생디칼리슴 전통에서 자랐다. 1909년 피에르 모나트가 창간한 격주간지 《라 비 우브리에르》의 기자가 되어, 영국의 노동조합과 여성참정권 운동을 취재하러 건너가고 남아프리카에서 발칸까지 국제 노동운동을 보도했다. 그는 민족주의에 깊은 혐오를 지녔으며 노동계급의 자주 활동과 자기 해방을 신념으로 삼았다.

1914년 8월 전쟁 발발과 함께 프랑스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은 대부분 '신성한 동맹'으로 무너졌지만, 로스메르는 첫날부터 반전 국제주의자였다. 1915년 봄 그는 금속노조의 메이데이 특별호에 전쟁 비판 기사를 실어 17,000부를 유통시켰는데, 검열을 통과한 판을 겉장으로 쌓고 미삭제본을 아래에 숨겨 우송하는 수법이었다. 같은 해 스위스 치머발트 회의에 프랑스 대표를 보내는 일을 조직했고, 이어 '국제관계재개위원회'에서 활동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을 지지했고, 1919년 3월 모나트와 함께 《라 비 우브리에르》를 부활시켰으며, 그해 5월 페르낭 로리오와 함께 이 위원회를 '제3인터내셔널 가맹위원회'로 전환시켜 프랑스 공산당 창당의 토대를 닦았다.

이 반전 운동의 기록은 로스메르 자신이 남겼다. 1936년 출간한 2권짜리 대작 『전쟁기의 노동운동』(Le mouvement ouvrier pendant la guerre)은 전쟁 발발의 기원부터 치머발트까지 반전 운동의 성장을 다룬 참여자적 역사로, 트로츠키는 "모든 진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는 이 책을 읽어야 하고, 더 정확히는 연구해야 한다"고 평했다. 로스메르는 1959년 2권을 펴내 1916년 말까지 이야기를 이어갔고, 1917년의 반란과 러시아혁명을 다룰 3권을 집필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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