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솔리니를 가르치고 그를 배신자라 부른 코민테른의 첫 서기
「그보다 더 비참한 인간은 본 적이 없다」 — 로잔에서 처음 만난 무솔리니를 두고
러시아 태생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코민테른 초대 서기로 무솔리니에게 마르크스주의를 가르쳤고, 그가 파시즘으로 전향하자 배신자라 규탄했다. 1922년 볼셰비즘과 결별하고 이탈리아 최대주의 분파를 이끌었다.
경력 연표
- 1897러시아를 떠나 브뤼셀 신대학에서 철학·문학 박사 학위 취득
- 1900이탈리아 사회당(PSI) 입당, 이주노동자 조직화
- 1912–14PSI 중앙위원, 《아반티!》 편집자로 무솔리니와 협력
- 1915–16치머발트·킨탈 회의 참석, 반전 국제사회주의 운동
- 1917러시아로 돌아가 볼셰비키 입당
- 1919–1920코민테른 초대 서기, 제1·2차 대회 준비
- 1922–1930볼셰비즘과 결별, 이탈리아로 돌아가 PSI 최대주의 분파 주도
- 1930–1945PSIm(최대주의 사회당) 지도, 망명 중 반파시스트 활동
치머발트와 반전 국제주의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 붕괴하자, 발라바노바는 반전 사회주의자들을 결집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15년 7월 베른에서 열린 예비 조직회의에 이탈리아 사회당 대표로 참석했으며, 9월 치머발트 본회의에서는 그림·트로츠키·롤란트-홀스트 등과 함께 중도파를 형성했다. 이 회의는 자본주의 정부의 전쟁을 규탄하고 무병합·무배상 평화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채택했으며, 발라바노바는 새로 구성된 국제사회주의위원회(ISC)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듬해 킨탈 회의에서도 계속 활동했고, 전쟁 기간 중 스톡홀름에 주재하며 치머발트 운동의 연락 업무를 맡아 중립국과 교전국 양측의 반전 세력을 연결했다. 이 경험은 이후 그녀가 코민테른 초대 서기로 나아가는 직접적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