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 파블로비치 로젠골츠

Аркадий Павлович Розенгольц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벨라루스 1889–1938 ✕ 처형

소비에트 공군을 세우고 대외무역을 맡은 볼셰비키

런던 아르코스 급습(1927년 5월 12일) 뒤 로젠골츠는 7쪽 항의각서를 내고 군사스파이 활동을 부인했으나, 5월 24일 볼드윈 수상이 의회에서 압수문서를 공개했고 영국은 5월 25일 국교를 단절하고 그를 추방했다.

1905년 16세로 볼셰비키에 입당한 뒤 내전에서 정치위원으로 카잔 공략과 콜차크전에 참여했고, 1922년부터 1924년까지 공군 총책임자를 지냈다. 1925년부터 1927년까지 런던에서 대리대사로 일하며 아르코스 사건과 영소 단교를 맞았고, 귀국 뒤 좌익 반대파와 결별하고 스탈린 체제에 합류했다. 1930년부터 1937년까지 대외무역인민위원을 지냈으며, 1937년 해임과 체포 후 1938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공군 총책임자와 독일 비밀 군사협력

1922년 1월 로젠골츠는 붉은 공군(글라브보즈두호플로트) 총책임자로 임명되어 내전으로 피폐해진 소비에트 항공 전력을 사실상 제로에서 재건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항공 과학의 제도화, 국영 항공기 제조업의 구축, 조종사·기술 인력 양성 체계, 지상 장비 확보라는 네 가지 축을 설정하고 애호가들을 규합해 국책 사업으로 전환시켰다. 1924년 여름에는 '일리치' 명칭의 신편 비행대대가 붉은 공군에 편입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같은 시기 로젠골츠는 라팔로 조약(1922년)의 비밀 군사조항을 구체화하는 핵심 협상자였다. 1922년 그는 독일 국방군(라이히스베어)과 직접 접촉하여 항공·전차 분야의 협력 틀을 논의했고, 이는 이후 리페츠크 비행학교(1926~1933), 카마 전차학교, 톰카 가스전 시험장으로 현실화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공군 보유가 금지된 독일이 소련 영토에서 조종사 훈련과 신기종 시험을 하고, 소련은 독일의 기술과 교리를 흡수하는 이 이중적 협력은 1933년 나치 집권으로 종료될 때까지 양국 군사력 재건의 산파 역할을 했다.

== 대외무역인민위원, 1930~1937 ==

1930년 9월 10일 로젠골츠는 무역인민위원 대리를 맡았다. 무역인민위원은 스탈린 측근 아나스타스 미코얀이었는데, 스탈린은 그가 무역 적자를 타개하지 못한다고 보고 '뛰어난 부관'으로 그를 뒷받침하게 했다. 그해 11월 인민위원부가 둘로 나뉘면서 로젠골츠는 대외무역인민위원이 되었고, 이후 1937년까지 소련 대외무역을 총괄했다.

무역수지 개선 압력 속에서 그는 중공업인민위원 세르고 오르조니키제와 수입 설비 문제로 격렬히 충돌했는데, 한때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다. 1931년 8월 정치국 회의를 보고하면서 스탈린의 대리인 라자리 카가노비치는 '로젠과 세르고 사이의 예의 교환'이 매우 불쾌했다고 적었다. 외환과 수입을 둘러싼 이 갈등은 대외무역 독점 체제 아래에서 공업화 자금과 설비 조달이 어떻게 배분되는가라는 문제를 드러낸다.

그는 소비에트 권력 수립과 소련 대외무역에 관한 소책자들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1934년 12월 30일 이전 제7차 전연방 소비에트 대회에서 그는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무역·경제 관계를 주제로 연설했고, 이 연설 보고는 『대외무역』 1935년 제3호에 대외무역인민위원 명의로 실렸다. 1937년 6월 14일 그는 이 직위에서 해임되어 국가비축 관리 부서로 옮겨졌고, 같은 해 10월 7일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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