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 파블로비치 로젠골츠

Аркадий Павлович Розенгольц
소련 벨라루스 1889–1938 ✕ 처형

스탈린 시대 대외무역을 총괄한 볼셰비키 정치군인

런던 아르코스 사무소 급습 이튿날, 로젠골츠는 7쪽 분량의 항의각서를 영국 정부에 제출하며 증거를 요구했지만, 이틀 뒤 영국 내각은 지하 암실에서 압수한 문서를 공개하며 단교를 선언했다.

1905년 볼셰비키에 입당하여 내전에서 정치위원으로 활약하고 공군 총책임자로 소련 공군을 조직했으며, 이후 런던 주재 대리대사로 아르코스 사건과 영소 단교를 맞았다. 1930년부터 1937년까지 대외무역인민위원으로서 첫 5개년 계획 시기 소련의 수출입을 지휘했으며, 동시에 1923년 46인 선언에 서명한 좌익 반대파 출신으로 스탈린 체제로 편입된 복잡한 궤적을 남겼다. 1938년 제3차 모스크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공군 총책임자와 독일 비밀 군사협력

1922년 1월 로젠골츠는 붉은 공군(글라브보즈두호플로트) 총책임자로 임명되어 내전으로 피폐해진 소비에트 항공 전력을 사실상 제로에서 재건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항공 과학의 제도화, 국영 항공기 제조업의 구축, 조종사·기술 인력 양성 체계, 지상 장비 확보라는 네 가지 축을 설정하고 애호가들을 규합해 국책 사업으로 전환시켰다. 1924년 여름에는 '일리치' 명칭의 신편 비행대대가 붉은 공군에 편입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같은 시기 로젠골츠는 라팔로 조약(1922년)의 비밀 군사조항을 구체화하는 핵심 협상자였다. 1922년 그는 독일 국방군(라이히스베어)과 직접 접촉하여 항공·전차 분야의 협력 틀을 논의했고, 이는 이후 리페츠크 비행학교(1926~1933), 카마 전차학교, 톰카 가스전 시험장으로 현실화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공군 보유가 금지된 독일이 소련 영토에서 조종사 훈련과 신기종 시험을 하고, 소련은 독일의 기술과 교리를 흡수하는 이 이중적 협력은 1933년 나치 집권으로 종료될 때까지 양국 군사력 재건의 산파 역할을 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