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트 탈하이머

August Thalheimer
공산주의 독일 독일 1884–1948 ○ 자연사

독일공산당의 주요 이론가이자 보나파르트주의 파시즘 분석가

1937년 7월, 바르셀로나에서 KPO 대원 6명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 체포되자, 탈하이머와 브란들러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체포된 동지들에 대한 모든 정치적·개인적 보증을 떠맡는다. 그들은 반파시스트이며 혁명가로서, 스페인 혁명에 대한 반역으로 해석될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독일공산당(KPD) 창립 세대의 대표적 이론가로, 파시즘을 금융자본에 종속된 도구가 아니라 계급 대립 위에 군림하는 독자적 집행권력으로 본 '보나파르트주의' 파시즘론의 창시자. 1929년 KPD에서 축출된 뒤 하인리히 브란들러와 함께 공산당 반대파(KPO)를 창립해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모두와 거리를 둔 독자 노선을 지키며 망명 속에서도 반파시스트 저술을 이어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파시즘 분석: 보나파르티즘의 방법

탈하이머의 대표적 이론 업적은 파시즘을 보나파르티즘의 방법으로 분석한 글이다. 이 글은 1928년 코민테른 내부 문서로 작성되었으나 그가 코민테른의 당시 초좌경 노선에 반대한 탓에 조직에서 제명되었고, 1930년 KPO의 이론지 『물결에 맞서』에 발표되었다. 그는 파시즘과 보나파르티즘을 동일시하지 않는다고 명시하면서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루이 보나파르트 분석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핵심은 집행권력의 자립이다. 부르주아지는 사회적 지배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 지배를 포기하고 자립한 집행권력에 스스로를 종속시킨다. 여기에 혁명적 도약에 나섰으나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고 패배한 노동계급, 그리고 소농민층이라는 또 하나의 사회적 토대가 결합한다. 파시즘은 이처럼 계급 역량이 서로를 무력화하는 틈에서 자립적 집행권력을 장악한다. 따라서 파시즘은 객관적으로는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대변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부르주아지로부터 독립한 권력이 된다. 이는 파시즘을 금융자본의 단순한 도구로 보는 코민테른의 공식 규정과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탈하이머는 독일 파시즘이 이탈리아의 그것보다 더 폭력적일 것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사회주의를 위한 최선의 투쟁 무대'로서 그 파괴에 맞서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분석은 한동안 잊혔다가 1960년대 볼프강 아벤트로트가 그의 글을 다시 간행하면서 68운동 세대의 파시즘 논쟁에 영향을 주었고, 티모시 메이슨과 라인하르트 퀸 같은 역사가·정치학자에게도 자극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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