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공산당의 주요 이론가이자 보나파르트주의 파시즘 분석가
1937년 7월, 바르셀로나에서 KPO 대원 6명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 체포되자, 탈하이머와 브란들러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체포된 동지들에 대한 모든 정치적·개인적 보증을 떠맡는다. 그들은 반파시스트이며 혁명가로서, 스페인 혁명에 대한 반역으로 해석될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독일공산당(KPD) 창립 멤버이자 1920년대 초반 당의 주요 이론가. 1923년 '독일 10월' 봉기 계획 당시 하인리히 브란들러와 함께 당을 이끌었으나 실패 후 모스크바로 소환되었다. 모스크바 쑨원대학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강의했으며, 부하린과 함께 코민테른 강령 초안 작업에 참여했다. 1929년 KPD에서 축출된 후 브란들러와 함께 공산당 반대파(KPO)를 창립하고, 보나파르트주의에 기초한 독자적 파시즘 이론을 발전시켰다. 1933년 이후 프랑스·쿠바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반파시스트 저술을 이어갔다.
경력 연표
- 1910독일 사회민주당(SPD) 입당, 좌파 언론 편집
- 1916–1918스파르타쿠스단 활동, 반전 선전으로 징집·투옥
- 1918.12독일공산당(KPD) 창립, 초기 주요 이론가
- 1923브란들러와 함께 KPD 공동 지도, '독일 10월' 실패로 모스크바 소환
- 1924–1928모스크바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쑨원대학에서 연구·강의
- 1929KPD에서 제명, 브란들러와 함께 공산당 반대파(KPO) 창립
- 1933–1948프랑스·쿠바 망명, 반파시스트 이론 활동 지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