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러 쿤

Kun Béla
헝가리 루마니아 1886–1938 ✕ 처형

133일간의 유럽 두 번째 소비에트 국가 — 그리고 19년 후의 처형장

“헝가리 프롤레타리아트는 지도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배신했다.” — 공화국 붕괴 직전 마지막 연설, 1919년 8월 1일

옛 트란실바니아 출신 유대계 언론인에서 혁명가로 전향한 쿤 벨러는 1919년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의 실질적 창설자이자 지도자였다. 유럽사상 두 번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133일간 이끌며 산업 국유화를 추진했으나, 토지 분배 대신 국영농장을 택해 농민의 지지를 잃고 협상국 개입 속에 붕괴했다. 망명 후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와 선전선동부에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론가로 활동했고, '제3시기' 좌경노선을 지지하다 1935년 인민전선 전환을 놓고 디미트로프와 대립했다. 1937년 대숙청에 휩쓸려 이듬해 총살, 1955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 133일의 실험

1919년 3월 21일,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통합으로 수립된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은 러시아 다음으로 유럽에서 두 번째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였다. 명목상의 수반은 사회민주당 출신 대통령 샨도르 가르버이였으나, 실질적 권력은 외무인민위원 쿤 벨러에게 집중되었다. 쿤은 무선전신을 통해 레닌과 직접 교신하며 조언과 지시를 받았고, 혁명정부평의회 내 33명의 인민위원 중 14명의 공산주의자와 17명의 사회민주주의자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정부는 귀족 작위와 특권을 폐지하고 정교분리를 선언했으며, 언론·집회의 자유, 무상교육, 소수민족의 언어·문화적 권리를 보장했다. 산업·상업 기업, 교통, 은행, 주택, 의료, 문화기관과 40헥타르 이상의 토지가 국유화되었다. 그러나 토지의 국유화, 즉 사유지 몰수 후 국영 농장으로의 전환은 결정적 실책이었다: 농민들은 분배를 기대했으나 토지를 받지 못했고, 이로 인해 농촌은 정권에 적대적으로 돌아섰으며 식량 공급은 악화되었다. 공산당은 부다페스트 산업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폭넓은 지지를 얻었으나 헝가리 농촌에서는 극도로 취약했다.

대외적으로는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협상국의 지원 아래 헝가리 영토를 잠식해 들어왔다. 아우렐 스트롬펠트 대령이 지휘하는 헝가리 적군은 5~6월 북부 전역에서 체코슬로바키아군을 격파하고 슬로바키아 소비에트 공화국을 선포하는 등 주목할 만한 반격을 펼쳤으나, 클레망소 통첩에 따라 철수하면서 전략적 주도권을 상실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콜차크데니킨에 맞서 내전을 수행 중이어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할 수 없었다.

내부적으로는 체르니 요제프의 '레닌 소년단'이 지방에서 적색 테러를 자행했고, 식량 강제 징발과 반대파 탄압이 정권의 사회적 기반을 잠식했다.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간 긴장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었으며, 쿤은 공산당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인민위원과 부위원 간의 구분을 흐리는 방식으로 제도적 균형을 무너뜨렸다. 8월 1일 루마니아군이 부다페스트 100km 이내로 진격하자 혁명정부평의회는 사임했고, 공화국은 133일 만에 붕괴했다. 쿤은 오스트리아로 망명했으며, 같은 해 11월 미클로시 호르티가 부다페스트에 입성하여 '백색 테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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