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대숙청을 지휘한 정보장교 출신 내무인민위원
부하린 아파트 수색에 "검은 양복, 흰 셔츠, 고운 반지에 긴 새끼손톱" 차림으로 나타났다. 안나 라리나는 "마치 연회에 온 듯했다"고 남겼다.
1921년 체카에 입문해 경제·방첩 부서를 거쳐 이노(INO)로 옮겨 베를린과 로마에서 비밀 거점을 운영한 소련 정보장교였다. 1935년 이노 제1부책임자로 외국정보를 총괄했고, 1937년 벨라루스 내무인민위원으로서 공화국 전역의 대숙청을 진두지휘해 8개월 만에 6만 명을 체포하고 쿠라파티 집단처형을 감독했다. 1938년 9월 NKVD 3국장으로 전보된 직후 베리야의 숙청에 휘말려 체포됐고, 1939년 2월 총살됐으며 사후 복권되지 않았다.
경력 연표
- 1921–1923이르쿠츠크 구베르니야 체카 요원
- 1923–1928OGPU 경제관리국 부서장
- 1928–1931중앙아시아 OGPU 방첩·특별부서장
- 1931–1933이노 OGPU 베를린·로마 거점장
- 1935–1936GUGB NKVD 이노 제1부책임자
- 1936–1937GUGB NKVD 비밀정치부 부책임자
- 1937–1938벨라루스 SSR 내무인민위원
- 1938NKVD 3국(수송·통신) 국장
관련 역사 사건
모스크바 쇼재판의 심문자
1936년 여름, 베르만은 GUGB 비밀정치부 부책임자로서 제1차 모스크바 쇼재판('트로츠키-지노비예프 연합 센터' 사건)의 증거 조작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가 직접 심문한 주요 피고인은 옛 볼셰비키 바가르샤크 테르-바가냔이었다. 소련 정보장교 알렉산드르 오를로프의 회고에 따르면, 베르만은 테르-바가냔에게 사형을 면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며 허위 자백을 받아냈고, 심문 중 오히려 피의자에게 진심 어린 호감을 느껴 '스탈린의 심문관과 희생자 사이에 우정이 싹텄다'고 전한다. 베르만은 또한 제2차 쇼재판을 위해 카를 라데크의 심문을 담당했고, 1937년 초 니콜라이 부하린 체포 직후 아파트 수색을 지휘했다. 제1차 쇼재판 이후 베르만은 벨라루스 내무인민위원으로 전출되어 중앙에서 체득한 심문 기법을 공화국 전체 규모로 확대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