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을 정립한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생산자가 자신의 실존 조건을 통제하려면 전적으로 새로운 사회관계가 발전되어야 한다' — 『경제계산과 소유형태』(1971)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CEMI를 설립해 소련 계획경제 연구를 개척했고, 나세르·네루·벤 벨라 정부의 경제 고문을 지냈다. 1963년 쿠바 '대논쟁'에서 체 게바라의 중앙집중화 노선에 맞서 분권적 시장요소를 옹호했으며, 마오쩌둥 사상에 경도되어 알튀세르와 함께 '경제주의'를 비판했다. 『소련에서의 계급투쟁』(1974-1982)에서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했고, 1972년 르몽드는 그를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마르크스주의자'로 평가했다.
경력 연표
- 1933공산청년동맹 가입 후 프랑스 공산당 입당
- 1936모스크바 5개월 체류, 대숙청 목격, PCF 제명
- 1944–1948노동부 관료, EPHE 연구주임
- 1950s이집트·인도·알제리 정부 경제 고문, 유엔 전문가로 인도 제2차 5개년 계획 참여
- 1958EHESS 산하 CEMI 설립
- 1963쿠바 '대논쟁'에서 체 게바라의 중앙집중화 노선에 반대
- 1966–1977프랑스-중국 우호협회 회장
- 1974–1982『소련에서의 계급투쟁』 전3권 출간, 소련 국가자본주의론 전개
소련 국가자본주의론
베텔하임의 대표작 『소련에서의 계급투쟁』(Les luttes de classes en URSS, 전3권, 1974–1982)은 1917년부터 1941년까지의 소련 역사를 '국가자본주의'로 분석한 방대한 연구다. 그의 핵심 주장은 생산수단의 법적 국유화만으로는 사회주의가 성립하지 않으며, 생산관계(즉 생산자들이 노동 과정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의 실질적 변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적 소유 형태가 '사회주의적'이라는 환상이 실재하는 착취를 은폐한다고 보았다.
베텔하임은 볼셰비키 내부의 '경제주의'(생산력 발전이 계급투쟁보다 우선한다는 테제)가 소비에트 관료 기구의 비대화를 정당화했고, 네프(신경제정책)의 점진적 포기와 1928년 강제 집단화로 인해 노동자-빈농 동맹이 붕괴되면서 '국가 부르주아지'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분석은 토니 클리프(Tony Cliff)의 소련 국가자본주의론과 자주 비교되며, 클리프와 달리 베텔하임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이러한 관료적 변질에 대한 해독제로 제시했다. 1982년 출간된 제3권에서 그는 10월혁명 자체의 사회주의적 성격마저 의문시하며, 그것을 급진적 인텔리겐치아가 민중혁명을 '몰수'한 사건으로 재해석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