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몬터규 우드하우스

Christopher Montague Woodhouse

저항과 제국의 경계에 선 그리스 전문가

1942년 고르고포타모스 작전 뒤 그는 철수하지 않고 그리스에 남아 저항세력과 카이로를 잇는 사절단을 세웠다.

크리스토퍼 몬터규 우드하우스는 영국 육군 장교이자 SOE·MI6 요원, 그리스 정치사 연구자였다. 그는 점령기 그리스에서 ELAS와 EDES를 잇는 영국 군사사절단을 조직하고 지휘하며 저항운동과 전후 국가질서 사이의 접점을 만들었다. 동시에 그의 활동은 군사 협력이 영국의 왕정 복귀와 영향권 정책으로 기울 수 있었던 긴장을 보여준다. 훗날 의원과 저술가로서 그리스 현대사를 해석했다.

다른 이름: 크리스 우드하우스 · 몬티 우드하우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고르고포타모스 작전과 저항세력 간 연락

1942년 9월 우드하우스는 SOE의 하를링 부대에 합류해 에디 마이어스 대령과 함께 그리스 중부로 낙하산 침투했다. 임무는 테살로니키와 아테네를 잇는 철도선을 끊어 북아프리카의 롬멜 부대에 전달되는 보급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11월 25일 고르고포타모스 철도교 파괴 작전에서 우드하우스는 EDES의 나폴레온 제르바스와 접촉하고 ELAS의 아리스 벨루히오티스 부대와 협력을 조율했다. 양측의 게릴라가 교량 경비대를 공격하는 동안 영국 공병대가 폭약을 설치해 교량을 폭파했다. 철도 운행은 6주간 중단됐지만, 작전은 엘알라메인 전투의 승리 뒤에 이뤄져 롬멜의 전역 결과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 작전은 SOE의 그리스 저항 지원 확대를 이끌었고, 철수 예정이던 우드하우스와 대원들은 현지에 남아 저항세력과 연락하는 임무를 맡았다.

우드하우스는 1943년 여름 저항조직들을 조율하려는 국민부대협정 협상에 참여했다. 이 협정은 공동 게릴라 총사령부를 만들었으나 실제 저항작전을 통합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1943년 9월 이탈리아 항복 뒤에는 그리스 주둔 이탈리아군 일부와 휴전 협상을 했다. 마이어스가 영국 외무부의 결정으로 복귀하지 못하자 우드하우스는 10월 17일 연합군 군사사절단 지휘관에 임명됐다. ELAS와 EDES가 충돌한 뒤인 1944년 2월 그는 플라카 협정을 중재해 양측의 휴전을 이끌었다. 1944년 여름 영국 정부가 EAM·ELAS와 관계를 끊고 사절단을 철수시키려 했을 때, 우드하우스는 그리스에 남아 연락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