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에서 「사막의 여우」로 불리고 노르망디 해안 방어를 맡은 독일 원수
1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전선에서 롱가로네를 점령해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받았고, 1940년 프랑스 침공에서 제7기갑사단을 이끌었다. 1941년 아프리카 군단 사령관이 되어 토브루크를 함락했으나 1942년 엘알라메인에서 몽고메리에게 밀려났다. 1943년 북이탈리아의 B집단군을 맡았고, 1944년 다시 B집단군 사령관으로 노르망디 해안을 지켰지만 상륙 당일에는 아내의 생일로 독일에 있었다. 7월 20일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10월 14일 재판 대신 자살을 강요받고 청산가리를 삼켰다. 나치당원은 아니었으나 끝까지 히틀러에게 충성했고, 전후의 「깨끗한 전쟁」 장군상은 「롬멜 신화」로 비판받는다.
다른 이름: 요하네스 에르빈 오이겐 롬멜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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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944
독일 국가기관아프리카 군단 사령관·B집단군 사령관대표
군사·지휘
경력 연표
- 1917.11.09이탈리아 전선 롱가로네 점령, 푸르 르 메리트 훈장
- 1937『보병 공격』 출간
- 1938.10총통 경호대대장
- 1940프랑스 침공, 제7기갑사단장
- 1941.02.06아프리카 군단 사령관
- 1942토브루크 함락, 엘알라메인 패배
- 1943.03.09북아프리카에서 소환
- 1943.08.16북이탈리아 B집단군 사령관
- 1944.01B집단군 사령관, 노르망디 해안 방어
- 1944.07.17연합군 기총소사로 중상
- 1944.10.147월 20일 음모 연루로 자살 강요
관련 역사 사건
- 1914–19181차 세계대전이탈리아 전선의 독일군 중대장1917년 카포레토 공세 때 마타유르산과 롱가로네를 점령해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받았다.
- 1940–1944프랑스 침공과 비시 정부제7기갑사단장1940년 프랑스 침공에서 제7기갑사단을 이끌었다.
- 1940.06.10–1943.05.13북아프리카 전역아프리카 군단·아프리카 기갑군 사령관방어 명령을 넘어 1941년 공세에 나섰고, 가잘라에서 최대의 승리를 거두었으나 엘알라메인에서 막혔다. 카세린 고개 전투 뒤 1943년 3월 독일로 돌아갔다.
- 1941–1944제2전선과 노르망디 상륙B집단군 사령관 · 대서양 방벽북아프리카에서 독일·이탈리아군을 이끌었고, 1944년 B집단군 사령관으로 노르망디 해안 방어를 맡았으나 상륙 당일에는 독일에 가 있었다.
- 1943–1945이탈리아 전선과 무솔리니의 몰락북이탈리아 B집단군 사령관1943년 8월 북이탈리아의 B집단군을 맡아, 9월 휴전 발표 뒤 이탈리아군을 무장해제한 아흐제 작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