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게오르기예비치 데카노조프

Владимир Георгиевич Деканозов
소련 그루지야 1898–1953 ✕ 처형

리투아니아 병합을 연출하고 베를린에서 선전포고를 받은 자

1941년 6월 22일 새벽 4시, 리벤트로프가 데카노조프를 불러 대소 선전포고를 낭독했다. 데카노조프는 침착히 듣고 '히틀러와 스탈린이 직접 만났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답했다.

바쿠 출신의 그루지야인으로, 베리야의 최측근이자 NKVD 대외정보·방첩을 동시에 지휘하며 대숙청 후반기 숙정을 주도했다. 1940년 리투아니아 전권대표로 파견되어 한 달 만에 소비에트 병합을 연출했고, 베를린 대사로 부임해 1941년 6월 리벤트로프로부터 독일의 선전포고를 직접 받았다. 전후에는 라디오방송위원회 등 한직으로 밀려났다가 1953년 베리야 체포 직후 내무장관으로 잠시 복귀했으나, 곧 '베리야 일당'으로 함께 체포·처형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NKVD 지도부와 대숙청 후반기 숙정

1938년 11월 라브렌티 베리야가 NKVD 수장으로 임명되자 데카노조프는 즉시 모스크바로 호출되어 국가보안총국(GUGB) 부국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대외정보를 담당하는 제5부장과 방첩을 담당하는 제3부장을 동시에 겸임하는 전례 없는 권력 집중을 누렸다. 데카노조프의 주된 임무는 니콜라이 예조프 잔존 세력을 NKVD 내부에서 숙청하고 붉은 군대에 대한 숙정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1938년 12월부터 1939년 5월까지 약 반년 동안 그는 베리야의 가장 신임받는 집행자로서 대숙청 후반기 숙정의 핵심 지휘자 역할을 수행했다. 1939년 5월 외무부인민위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NKVD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국가보안 경력은 베리야가 스탈린의 측근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1938년 12월 국가보안 3급 인민위원 계급을 받았고, 1945년에는 중장 계급을 받았다. 2000년 러시아 연방 대법원 군사합의부는 그의 재활을 거부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의 체포, 형사 사건 조작, 고문 적용 등 조직적 권력 남용'을 지적했으나, 2020년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공식 웹사이트는 그를 소비에트 정보 영웅 명단에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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