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카탈루냐 낙태 합법화 법령을 만든 아나키스트 의사·성과학자
카탈루냐 자치정부 보건 국장으로서 1936년 12월 25일 치료·우생·윤리적 사유의 낙태를 허용한 「낙태의 우생학적 개혁」 법령을 만들었다.
카르타헤나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 의학을 공부한 의사·정신과 의사. 1930년대 아나키스트 잡지 《에스투디오스》의 성 상담란을 맡아 피임을 알렸고 전국노동연맹에 속했다. 스물여섯에 카탈루냐 자치정부 보건·사회부조 국장이 되어 1936년 12월 25일 낙태를 합법화한 법령을 만들었고, 성매매 여성 해방 시설과 청년 성 정보 센터를 추진했다. 1937년 공화국 보건 차관이 되었다. 1939년 미국으로 망명해 의학 잡지 《MD》를 펴냈고 1972년 뉴욕에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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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1939
정부·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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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972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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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행정
관련 역사 사건
카탈루냐 보건 개혁과 낙태 법령
카르타헤나의 교양 있는 대가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펠릭스 마르티 알페라는 책 500권을 쓴 교육자였고, 가족은 바르셀로나로 옮겼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 의학을 공부하며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관해 그레고리오 마라뇬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고, 열아홉에 의사가 된 이듬해 마드리드 대학에서 인도 신비주의자들의 심리학과 생리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가 되었다. 1930년대에는 발렌시아의 아나키스트 잡지 《에스투디오스》의 주요 필자로 독자들의 성과 심리 고민에 답하는 「정신·성 상담실」을 맡아 피임법을 널리 알렸다.
내전이 터진 뒤 스물여섯에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보건·사회부조 국장이 되어 사회의학과 예방의학 중심으로 보건 체계를 다시 짰다. 그가 만든 「낙태의 우생학적 개혁」은 1936년 12월 25일 승인되어 1937년 1월 9일 공보에 실렸고, 전국노동연맹 출신 보건장관 페레 에레라 등이 서명했다. 공화국 정부가 낙태를 범죄로 둔 가운데 카탈루냐만 치료·우생·윤리적 사유의 낙태를 받아들여 자치정부의 의료 서비스에 넣었다. 그는 성매매 여성을 위한 해방 시설, 청년 성 정보 센터, 성과학 연구소도 추진했고, 「자유여성」의 성매매 여성 해방 사업을 도왔다. 1937년 공화국 보건 차관이 되었으며, 보건장관 페데리카 몬세니는 이 법령을 스페인 전체로 넓히려 했으나 공화국 정부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공군 의무 부대 지휘관으로 에브로 전투에서 다쳤고, 1939년 1월 바르셀로나가 프랑코군에 떨어지자 시골로 숨었다가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 시민이 되었다. 맨해튼에서 MD 출판사를 세워 1957년부터 죽을 때까지 의학 잡지 《MD》를 펴냈고, 뉴욕 의과대학에서 의학사를 가르쳤다. 1972년 5월 24일 맨해튼에서 갑자기 숨졌다. 근래에는 그가 새클러 가문의 직원으로 미국 마약성 진통제 위기의 연결 고리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