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쿠바 쿠바 1926–2016 ○ 자연사

서반구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고 47년간 제국주의에 맞선 지도자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다.” — 몬카다 재판 변론(1953)

서반구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쿠바 혁명가. 몬카다 병영 습격으로 바티스타 독재에 맞서 투쟁을 시작했고, 1959년 게릴라전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 47년간 미국의 봉쇄와 압력 속에서도 사회주의 쿠바를 지켜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53년 7월 26일, 몬카다의 새벽

1953년 7월 26일 새벽, 스물여섯 살의 변호사 피델 카스트로는 백여 명의 청년들을 이끌고 산티아고데쿠바의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 바티스타의 쿠데타 정권을 무너뜨릴 봉기의 신호탄이 될 계획이었으나 습격은 실패했고, 붙잡힌 동지 다수가 고문 끝에 살해되었다. 그해 10월 16일 법정에서 카스트로는 스스로를 변호하는 긴 연설을 남겼다. 「나를 단죄하라.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1955년 사면으로 풀려난 그는 멕시코로 건너가 「7월 26일 운동」을 조직했고, 그곳에서 체 게바라를 만났다. 1956년 12월 2일, 82명의 대원이 요트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에 상륙했다. 상륙 직후의 궤멸을 딛고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 뿌리내린 게릴라는 농민의 지지 속에 자라났고, 2년 만에 바티스타의 군대를 무너뜨렸다.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는 국외로 도주했고, 1월 8일 카스트로는 아바나에 입성했다.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리던 섬에서 민중 혁명이 승리한 순간이었다.

1961년, 피그스만과 문맹퇴치의 해

1961년 4월, 미국이 조직한 망명자 부대가 피그스만의 히론 해변에 상륙했다. 침공은 사흘 만에 분쇄되었고, 카스트로는 전선에서 직접 방어를 지휘했다. 침공 전야, 공습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 연설에서 그는 혁명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처음으로 공식 선언했다. 이후 반세기 동안 쿠바는 미국의 봉쇄와 수백 차례의 암살 기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같은 해 쿠바는 다른 종류의 동원도 벌였다. 십만 명이 넘는 청년 교사와 학생이 등불을 들고 농촌으로 들어가 글을 가르쳤고, 1961년 12월 쿠바는 문맹 없는 영토임을 선언했다. 유네스코가 현지 조사로 확인한 이 문맹퇴치운동은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 체계의 출발점이 되었다. 쿠바의 영아사망률과 기대수명은 훨씬 부유한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카스트로의 국제주의는 말에 그치지 않았다. 쿠바 의사들은 세계 곳곳의 재난과 전염병 현장으로 파견되었고, 1975년부터 앙골라에 파병된 쿠바군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군대의 침공을 저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만델라는 석방 후 쿠바를 찾아 감사를 표했다. 소련 해체 이후 「특별시기」의 극한 위기도 혁명을 무너뜨리지 못했고, 카스트로는 2016년 11월 25일 아흔 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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