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센스키 게저

Jeszenszky Géza
헝가리 헝가리 헝가리인 1941–

1956년의 기억을 외교로 옮긴 역사가

열다섯 살에 무장하지 않은 채 1956년 혁명에 참여했다.

예센스키 게저는 1956년 혁명을 경험한 역사학자이자 헝가리의 체제전환기 외교를 이끈 정치가다. 그는 혁명 뒤 처형된 사람을 약 350명으로 추산해 진압의 규모를 기억하는 데 기여했다. 학자로서 국제관계사와 헝가리의 대외 이미지를 연구했고, 민주 헝가리 포럼 창립 세대로서 서방과의 새로운 관계를 추진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외무장관 시절과 비셰그라드의 탄생

예센스키는 1990년 첫 자유선거에서 승리한 헝가리 민주 포럼(MDF) 정부의 외무장관으로 취임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역사 교사였던 안탈 요제프 총리의 제자였고, 이 인연으로 초대 민주 정부의 외교 수장 자리에 올랐다. 그의 재임 기간 헝가리의 대외 관계는 전면적으로 재편되었다.

제1 임무는 소련에 대한 정치·군사·경제적 의존을 상징하는 기구들의 해체였다. 바르샤바 조약 기구는 1991년 7월 1일 공식 해체되었고, 소련군의 철수 협상과 이행이 그의 재임 중에 이루어졌다. 헝가리는 유럽 평의회와 중앙유럽 구상에 가입했고, 유럽공동체와의 연합협정 당사국이 되었으며, 1994년에는 예센스키가 직접 헝가리의 유럽연합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가 외교장관으로서 가장 각별히 몰두한 것은 '비셰그라드'였다. 1991년 2월 15일, 체코슬로바키아의 하벨 대통령, 폴란드의 바웬사 대통령, 헝가리의 안탈 총리가 비셰그라드 왕궁에서 협력 선언에 서명했다. 예센스키는 가장 가까운 증인으로서 이 구상의 실제 기원을 증언했다. 1335년 폴란드·보헤미아·헝가리 왕들이 정책을 조율했던 고성에서, 세 나라 지도자들은 '서방'으로의 재정렬과 과거 민족적 비극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함께 일하기로 독자적으로 결단했다. 이는 모스크바나 워싱턴, 브뤼셀이 지시하거나 제안하지 않은, 소련 궤도를 떠나 유럽-대서양 구조로 향하는 중부유럽의 자발적 구상이었다.

비셰그라드의 궁극 목표는 바르샤바 조약 기구와 코메콘의 해체였고, 1991년 10월 크라쿠프 정상회의에서는 유고슬라비아 분쟁에 대해 민족자결권과 소수민족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공동 경고를 발표했다. 유럽공동체가 1991년 12월 세 나라와 유럽협정을 공동 서명한 것은 비셰그라드 모델에 대한 가시적 지지였다. 예센스키는 이 협력을 '마음속의 동맹(in pectore)'이라고 불렀다. 그는 후일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부유럽 협력이 자신의 재임기에 정점에 달했음을 회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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