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카 크지보노스

Henryka Krzywonos-Strycharska

도시의 파업을 멈춰 세운 전차 운전사

1980년 8월 15일, 그녀가 발티츠카 오페라 인근에서 전차를 세우자 그단스크 대중교통 파업이 시작됐다.

헨리카 크지보노스는 그단스크의 전차 운전사이자 노동조합 활동가로, 조선소 안팎의 노동자 행동을 연결한 인물이다. 1980년 8월 15일 전차를 세워 대중교통 파업을 촉발했고, 그 소식은 다른 사업장으로 퍼져 도시 전체의 연대 행동을 넓혔다. 그녀는 사업장 간 파업위원회에서 대중교통 노동자를 대표하고 8월 협정에 서명했으며, 이후 계엄 아래에서는 수감자 지원과 지하 출판물 배포에 참여했다. 훗날 가정위탁시설을 운영하고 국회의원이 된 경력은 거리의 노동자 행동과 돌봄·제도 정치가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80년 8월: 전차 정차에서 8월 협정까지

1980년 8월 15일, 그단스크 시내 15번 전차를 몰던 크지보노스는 발티츠카 오페라 인근에서 차를 세우고 승객들에게 "이 전차는 더 이상 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단스크 대중교통 파업의 출발점으로 자주 거론되는 이 정차에 대해, 일부 목격 증언은 이미 그날 아침 버스 운전사 일부가 운행을 거부해 그녀가 진행 중인 파업에 합류한 것이라고 본다. 폴란드어 위키백과는 이 정차가 파업의 '시작'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고 적으면서, 일부 증언이 이미 시작된 파업 합류설을 제기한다는 점을 함께 기록한다.

이튿날인 8월 16일, 레흐 바웬사가 조선소 측과의 합의를 발표하며 파업 종료를 알리자, 크지보노스는 알리나 피엔코프스카, 안나 발렌티노비치, 에바 오소프스카와 함께 3번 게이트에서 조선소를 빠져나가려는 노동자들을 막아섰다. 이 조치로 조선소 노동자 일부가 사업장에 남았고, 트루이마스토 다른 사업장과의 연대 파업이 계속되었다. IPN 그단스크 자료는 피엔코프스카의 활동으로 이 사건을 기록하며 3번 게이트에서 함께 행동한 인물로 발렌티노비치와 오소프스카를 들고, 여성들의 이 조치가 연대 파업 지속 결정에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크지보노스는 사업장 간 파업위원회(MKS)에 대중교통 대표로 참여해 프레지디움 위원이 되었다. 메트로폴리탄카 전기에 따르면 그녀는 안제이 그비아즈다와 함께 정치범 석방 협상에 나서 야체크 쿠로니 등이 풀려나는 데 기여했다. 엔치클로페디아 솔리다르노시치는 1980년 8월 그녀가 프레지디움 위원이자 8월 협정 서명자였으며 9월부터 '솔리다르노시치'에 참여했으나, 얼마 뒤 자기 사업장의 창립위원회에 의해 MKS 프레지디움에서 해임되었다고 기록한다. 1980년 9월 2일부터 1981년 3월 5일까지 그단스크 KW MO 제3A부가 암호명 '타보르' 사건으로 그녀를 감시했다.

이 국면은 파업이 대중교통과 조선소, 항만, 정유 공장을 잇는 공동 행동이었음을 보여준다. 8월 31일 크지보노스는 MKS 프레지디움 위원으로서 8월 협정에 서명했고, 이는 한 전차 운전사의 정차가 도시 규모의 노동자 조직으로 이어진 경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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