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전의 성과와 동부전선 범죄가 겹친 독일 장군
1942년 12월, 호트의 제4기갑군은 포위된 스탈린그라드의 제6군을 구출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헤르만 호트는 프로이센군과 제국군 전통을 이어받아 독일 국방군의 기갑 지휘관으로 성장한 장군이다. 프랑스 침공과 소련 침공에서 빠른 기동작전을 지휘했으며, 1942년 제4기갑군 사령관으로 블라우 작전의 남부 공세와 스탈린그라드 구출 시도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소련과의 전쟁을 절멸전으로 이해했고 정치위원 명령과 민간인에 대한 잔혹한 조치를 전달·집행했다. 전후 국방군 최고사령부 재판에서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한 죄로 15년형을 선고받았고 1954년 조기 석방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4프로이센군 장교로 복무 시작
- 1914–1918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모 및 야전 지휘
- 1935–1938제18보병사단 지휘
- 1939–1940제15군단 지휘, 폴란드와 프랑스 침공 참가
- 1941제3기갑집단 지휘, 민스크와 비테프스크 점령
- 1941–1942제17군 사령관
- 1942–1943제4기갑군 사령관, 스탈린그라드 구출 작전 지휘
- 1948–1954국방군 최고사령부 재판 유죄 판결과 란츠베르크 수감
- 1956『기갑작전』 출간
- 1971고슬라에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석방 이후: 회고록과 '깨끗한 국방군' 신화
호트는 1954년 가석방된 뒤 고슬라에 정착했다. 그는 할츠 산맥을 걷는 것을 취미로 삼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1956년 『기갑작전』(Panzer-Operationen)을 출간했다. 이 책은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자신이 지휘한 제3기갑집단을 다룬 것으로, 1961년 소련에서 러시아어로, 2015년에는 영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베어쿤데』지에 기고하면서 서독 연방군이 강력한 기갑사단을 편성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1950년대 말부터 호트의 활동은 나치 독일의 범죄를 연구하기 시작한 역사가들에 대한 반격으로 기울었다. 그는 전쟁 인식의 권리를 참전 군인들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패배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국방군의 '영웅적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연방군이 장교 후보를 모집하는 능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논리였다. 그는 언터넨 바르바로사(1963년 출간) 집필에 파울 카렐을 도우며 깨끗한 국방군 신화를 확산시키는 데 가담했고, 이 책에서 만슈타인의 스탈린그라드 전역 평가를 긍정적으로 그리도록 영향을 주었다. 그는 전후 연방군에 합류한 국방군 출신 장교들과도 연락을 유지했으며, 1965년부터는 연방군 총감독관 울리히 데 마지에르와 정기적으로 만나 기갑부대가 서독 군대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함께 했다. 말년에도 호트는 언론과 역사가들에게 인터뷰를 하며 독일 군대의 이미지를 유지하려 했다.
이 시기의 발언에서도 호트는 1948년 재판에서 주장한 결백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1941년 11월 명령이 '볼셰비키-유대인 저항' 제거만을 목적으로 했다고 설명했고,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아르툐몹스크 학살 등 그가 자신의 관할구역에서 벌어진 학살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호트는 1971년 1월 25일 고슬라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