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폰 아이히호른

Hermann von Eichhorn
독일 독일 1848–1918 ✕ 암살

1918년 점령지 우크라이나의 군정총독으로 있다가 키예프에서 좌파 사회혁명당원에게 암살된 독일 원수

1918년 점령지 우크라이나의 군정총독이 된 프로이센 원수 헤르만 폰 아이히호른은 키예프에서 좌파 사회혁명당원 보리스 돈스코이의 폭탄 공격으로 암살됐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1870–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전하고 제18군단장까지 오른 프로이센 장교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1915년 1월부터 제10군을 이끌며 코브노와 그로드노를 점령했고, 1916년부터는 아이히호른 집단군도 지휘했으며 1917년 12월 원수가 되었다. 1918년 4월 3일 키예프 집단군 사령관 겸 점령지 우크라이나의 군정총독이 되었고, 7월 30일 키예프에서 좌파 사회혁명당원 보리스 돈스코이가 마차에 던진 폭탄에 목숨을 잃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점령 통치와 우크라이나 정부와의 충돌

1918년 4월 3일 키예프 집단군 사령관 겸 우크라이나 군정총독에 취임한 뒤, 아이히호른은 독일군의 군사 지휘권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내정에 직접 개입했다. 4월 6일 그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사전 합의 없이 농민의 파종 의무를 정하는 명령을 내렸다. 중앙 라다는 이를 주권 침해로 항의했으나 명령을 막지 못했다. 4월 25일 독일군 야전군사법원을 도입하는 명령도 뒤따랐다.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동맹을 맺었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곡물과 원자재를 확보하려 했다. 4월 23일 체결된 경제협정에서 우크라이나는 7월 말까지 곡물 6천만 푸드와 달걀 4억 개 등을 공급하기로 했다. 독일군 지휘부는 라다가 이를 이행하고 국내 정세를 통제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내정 간섭을 확대했다. 독일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가 4월 29일 라다를 전복하고 파울로 스코로파드스키를 집권시킨 뒤에도 독일군 최고사령부는 중앙 및 지방 관료 교체에 관여했고, 아이히호른과 헤트만 정부의 협력은 농민 봉기 진압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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