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야 스피리도노바, 「볼셰비키 당 중앙위원회에 보내는 공개 편지」(1918)
인물마리야 스피리도노바,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펠릭스 제르진스키,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뱌체슬라프 알렉산드로비치, 야코프 블륨킨, 드미트리 포포프 (체카 전투부대), 그리고리 페트롭스키, 알렉산드르 추루파,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파울로 스코로파츠키, 니콜라이 압크센티예프, 표트르 크라스노프, 파니 카플란, 카를 리프크네히트, 필리프 샤이데만,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 빌헬름 폰 미르바흐, 헤르만 폰 아이히호른, 보리스 돈스코이, 니콜라이 2세 용어좌파 사회혁명당, 좌파 사회혁명당 봉기 (1918), 체카, 적색 테러, 콤베디(빈농위원회), 프로드라즈베르스트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제헌의회, 국가자본주의, 제5차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 나로드니키 공산당, 혁명적 공산주의당 사건좌파 사회혁명당 봉기와 미르바흐 암살, 내전과 열강의 개입, 브레스트 강화와 독일의 동방 점령
볼셰비키 당 중앙위원회 앞
나는 7월 6일 당신들에게 왔다. 당신들 곁에 우리 당 중앙위원 가운데 누군가가 있어서, 그에게 분풀이를 하고 그로써 독일에 보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이에 관해서는 같은 날짜로 써서 볼쇼이 극장에서 아바네소프에게 건넨 편지에 적었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고, 나는 우리 중앙위원회에 그렇게 말할 권리가 있다고 여겨 대표의 책임을 내가 맡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 당을, 그리고 당을 따르던 “이 작은 자들”, 곧 농민과 노동자와 수병과 병사를 더 잘 막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들이 홧김에 나를 처치하고 나면 곧 불편한 순간을 맞으리라고 확신했다. 뭐라 해도 당신들의 그 행위는 끔찍한 일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 뒤 당신들은 더 빨리 정신을 차려 그때 꼭 필요했던 냉정을 되찾았을 것이다.
우연이었는지, 당신들의 뜻이었는지, 다른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일은 내가 7월 6일 편지에서 제안한 대로 되지 않았다. 예멜랴노프와 알렉산드로비치와 다른 이들, 정말로 “이 작은 자들”의 무고한 피가 흘렀다(예멜랴노프는 어떤 일에도 끼지 않았고 아무것도 몰랐다. 얼마나 몰랐는지 포포프 부대원들에게 체카 위원으로 체포되어 그들의 본부로 끌려갔을 정도다. 알렉산드로비치는 그날에야 블륨킨을 보고 미르바흐에 대한 행동이 꾸며지고 있음을 짐작했고,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사건들이 그를 휩쓸었다. 우리는 미르바흐에 대한 행동 전체를 그에게 숨겼고, 다른 어떤 것도 준비되지 않았다. 그는 당의 병사로서 우리의 몇몇 심부름을 했을 뿐, 그 비밀스러운 내용을 알지 못했다. 총살당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뒤로 내가 스스로 당신들에게 온 일의 의미는 내 눈에 거의 영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재판을 연단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당신들은 그토록 파렴치하게 우리를 중상했고, 있지도 않은 일로 우리를 그토록 고발하고 싶어 했으며, 우리 언론을 완전히 질식시킨 가운데 우리 당에 가한 당신들의 박해는 그토록 듣도 보도 못하게 악랄하고 전례 없이 비열하고 추악했다. 그래서 몹시 비싼 대가, 곧 당신들의 거짓말에 가담하는(당신들의 재판을 인정하는) 타협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당신들과 공개적으로 싸울 이 기회를 얻어야 했다.
아무리 썩어 빠진 의회에서도, 매수된 저질 언론과 그 밖의 골수 부르주아 기관에서도, 상대를 박해하는 일이 이처럼 스스럼없는 지경에 이른 적은 없었다. 사회주의자이자 국제주의자라는 당신들에게서 나온 그 박해는 당신들의 가까운 동지와 전우들을 향한 것이었고, 그들이 어긴 것은 당신들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독일 제국주의에 대한 충성이었으며, 어쨌든 혁명과 인터내셔널에 대해서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
내가 셰인크만에게 한 진술과, 세계 반혁명의 모든 비밀 참모부를(독일의 것만이 아니라) 국제 사회주의 혁명의 심장이자 화덕인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몰아내려는 우리의 뜻을 밝힌 중앙위원회의 선언이 있은 뒤, 아르한겔스크 지방에서는 어느 장군이 우리 좌파 사회혁명당원들을 총살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미르바흐와 아이히호른[1] 때문에 좌파 사회혁명당원들을 일부러 찾아내 고문한 뒤 죽이기 시작했다. 우리 좌파 사회혁명당원들이 체코슬로바키아 전선과 다른 전선에서 소비에트군의 대열에 서서 죽어 가고, 야로슬라블과 카잔의 백위대에게 학살당하고, 제국주의자마다 우리를 박해하는 데 각별한 관심을 쏟던 그때, 국제주의자인 당신들도 무자비하게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좌파 사회혁명당을 따르는 수많은 대중이 소비에트 권리를 빼앗겼고, 소비에트와 대회들은 주마다 수십 개씩 해산되었다(비텝스크, 스몰렌스크, 보로네시, 쿠르스크, 모길료프, 니즈니노브고로드 등등). 소비에트의(당시에는 아직 다른 것이 없었다) 농민 대중 전체가 짓밟히고 내몰리고 쫓기며, 군사혁명위원회와 (볼셰비키 공산당원으로 임명된) 집행위원회와 체카의 지휘 아래 놓였다.
체카에서는 좌파 사회혁명당원들을 죽였다(《중앙집행위원회 소식》과 체카 《주보》의 보고). 제5차 소비에트 대회의 결정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죽였고, 단지 좌파 사회혁명당원이고 그 입장을 “고집하며” 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였으며(“고집하는 자들”에 관한 페트롭스키의 회람), 죽이고 고문하고 능욕했다. 예컨대 코텔니치에서는 오직 좌파 사회혁명당원이라는 이유로 우리 동지 두 사람, 마흐네프와 미수노(농민부 위원이자 여러 기의 중앙집행위원, 여러 전러시아 농민 소비에트의 간부회 위원)를 죽였다. 우리는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들은 지금의 인민 혁명의 참된 자식들이었고, 그 혁명의 품에서 나와 곧게 일어서서 일했으며, 미수노가 나타나는 고장마다 그에 관한 전설이 돌았다. 우리와 당신들이 그들의 등에 얹어 10월 혁명 전체를 끌고 온, 눈에 띄지 않는 영웅들이다. 미수노는 볼셰비키 사형 집행인들을 위해 제 손으로 자기 무덤을 파기를 거부한 대가를 죽기 전에 비싸게 치렀다. 마흐네프는 죽기 전에 말을 하게 해 준다는 조건으로 자기 무덤을 파기로 했다. 그는 말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세계 사회주의 혁명 만세”였다. 그 자리에서 당신들의 사형 집행인들이 그를 끝장냈다. 지금 소비에트 러시아 곳곳에서 죽어 간 그런 미수노와 마흐네프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름도 없고 알려지지도 않았으나, 그 굳건함과 영웅심은 위대한 사람들이다.
우리 당을 짓밟는 일은 소비에트 혁명을 짓밟는 일이다. 이 몇 달의 역사 전체가 그것을 말해 준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끝내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당신들은 얼마나 둔해졌는지 대중의 모든 동요를 오직 선동이나 부추김으로만 설명한다.
당신들은 현상을 분석하는 데서 사회주의자이기를 그만두었다. 당신들은 어디서나 선동가를 찾아내 모든 동요를 그들의 활동으로 설명하던 차르 정부를 그대로 닮았다. 그리고 당신들이 옳은 정도는 그 정부와 똑같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모든 주에서 농민들이 선동가에 관해 내게 무엇이라고 쓰는지 보라. “친애하는 선생님(맞춤법은 어디서나 내가 고친다), 놈들은 볼로스트의 꼬박 3분의 1을 한 줄로 나란히 세워 놓고, 나머지 3분의 2가 보는 앞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주먹으로 후려갈겼습니다. 빠져나가려 하는 자는 채찍으로 맞이했습니다.” (소비에트의 볼셰비키가 이끈 징발대의 일이다.)
또 다른 편지에서는 이렇다. “볼셰비키 부대가 다가오면 몸에 오는 아픔을 막으려고 셔츠를 있는 대로 다 입고 여자 저고리까지 껴입었지만, 붉은 군대 병사들은 어찌나 손에 익었는지 셔츠 두 벌이 단번에 일하는 농사꾼의 살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나중에 목욕탕이나 그냥 연못에서 불려 떼어 냈고, 어떤 사람들은 몇 주씩 등을 대고 눕지 못했습니다. 우리 것을 몽땅 가져갔습니다. 아낙들에게서는 옷과 삼베를 전부, 사내들에게서는 윗도리와 시계와 신발을 빼앗았고, 곡식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또 세 번째 편지에서는 이렇다. “우리 어머니, 말씀해 주십시오, 이제 누구에게 가야 합니까? 우리 마을에는 모두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뿐이고, 씨앗이 모자라 파종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쿨라크가 셋 있었는데 우리가 벌써 오래전에 털었습니다. 우리에게 ‘부르주아지’는 없습니다. 분여지는 1인당 2/4~1/2이고 사들인 땅도 없는데, 우리에게 기부금과 벌금이 매겨졌습니다. 우리는 우리 볼셰비키 인민위원을 때렸습니다. 그자가 우리를 몹시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호되게 매를 맞았는데, 어떻게 맞았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공산당 당원증이 있는 사람들은 맞지 않았습니다. 이제 누가 우리 편을 들어 주겠습니까. 온 마을 사람이 땅에 엎드려 절을 올립니다.”
네 번째 편지에서는 이렇다. “놈들은 우리를 묶어 놓고 때렸습니다. 한 사람은 도무지 진정시키지 못하자 죽였는데, 그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편지에서는 또 이렇다. “놈들은 전단과 소책자를 많이 두고 갔는데, 우리는 그것을 불살랐습니다. 전부 속임수와 입에 발린 말뿐입니다.”
다섯 번째 편지에서는 이렇다. “빈농위원회에 볼셰비키를 뽑아 넣으라고 명령했는데, 우리 고장의 볼셰비키는 다들 군대에서 빠져나온 쓸모없는 자들로, 터놓고 말해 똥보다 못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들이 군에서 붉은 군대를 불러 자기들을 도우라고 했을 때 눈물깨나 흘렸지요. 쿨라크들은 돈을 주고 빠져나갔고, ‘농민들’은 등짝이 온통 찢겼으며 많은 사람이 끌려갔습니다. 네 마을에서 두세 사람씩 죽었고, 그곳 농민들이 볼셰비키를 쇠스랑으로 찌르자 그 일로 총을 맞았습니다.”
또 여섯 번째 편지에서는 이렇다. “군에 소문이 돌았습니다. 선생님이 우리를 속이고 볼셰비키와 또 손잡으며[2], 그 덕분에 그들이 선생님을 풀어 준다고요. 아닙니다, 이제 우리를 그들 쪽으로 꾀어내지 못합니다. 우리 군에서 그들은 바람에 날린 듯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우리 사람을 얼마나 많이 괴롭혀 죽였는데, 우리는 죽일 것입니다. 막심 V...가 돌아와 선생님이 아직 감옥에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귀한 분, 낙심하지 마시고 우리 농민의 깃발을 더 꽉 쥐고 우리를 위해 빌어 주시고, 굳게 버티십시오. 우리 고장에는 ‘제헌의회’ 편이 아무도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좌파를 따릅니다.”
또 6월 15일 자의 일곱 번째 편지에서는 이렇다. “1) 그리고리 쿨라코프. 마지막 2푸드에서 1푸드를 빼앗겼습니다. 가족 3명. 2) 세르게이 아가신. 가족 7명. 밀가루 5푸드, 감자 7푸드를 빼앗기고 각각 1푸드씩 남았습니다. 3) 병사의 아내 마르파 스테파노바. 가족 6명. 밀가루 전부인 3푸드와 엿기름 1/2푸드, 곡물 1/2푸드[3]를 빼앗겼습니다. 4) 이사크 하리토노프. 가족 5명. 사들인 밀가루 8푸드를 전부 실어 갔습니다. 5) 교사 울랴나 스테파노브나 호댜키나. 손풍금을 값도 치르지 않고 가져갔습니다. 6) 소바키노 마을. 트리폰 마르탸닌. 양복 한 벌을 빼앗겼습니다. 7) 라브렌티 아골로프. 가족 7명. 4푸드를 가져가고 두 달 치로 3푸드를 남겼습니다. 8) 일린카 마을. 알렉세이 이바노프. 은시계와 뇌관식 엽총을 빼앗겼습니다. 9) 이반 아르테모프. 구리 지팡이를 빼앗겼습니다. 10) 페도트 자이체프. 가족 8명. 귀리 가루 2푸드에서 1푸드 반을 가져가고 호밀 가루 30푼트를 남겼습니다. 11) 텔랴토보 마을. 숲으로 달아나는 아이들에게 총을 쏘았습니다. 다 옮겨 적을 수가 없습니다. 볼셰비키 징발대는 주먹으로 사람을 다스리는데, 얼굴이 몹시 피투성이가 되면 정중하게 술 한 잔을 권하고 다시 때립니다.”
또 여덟 번째 편지에서는 이렇다. “좌파 사회혁명당 조직을 때려 부쉈고, 아이를 총검에 꿰려 했는데, 그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나선 어느 여인의 용감한 개입 덕분에 겨우 살렸습니다. 옷을 빼앗고 가축을 잡고 그릇을 깨며, 카로토야크 군 전역에서 듣도 보도 못한 온갖 행패를 부립니다. 일곱 볼로스트의 협의회에서 한 달 전에 우리는 곡물 잉여분을 모두 내놓는 데 찬성한다고, 다만 부대를 보내지 말고 곡물을 가지러 사람 몇 명만 보내 달라고 결의했습니다. 도착한 부대는 정직한 징발 대신 다른 짓을 벌였음을 서명으로 증언합니다. (카로토야크 군 플라토보 마을의 서명)”...
아홉 번째 편지에서는 이렇다. “빈농위원회에는 쿨라크들과 가장 질 나쁜 불량배들이 들어갑니다. 우리 말을 타고 돌아다니고, 집집마다 차례로 점심을 차리라고 명령하며, 돈을 빼앗아 자기들끼리 나누고 극히 일부만 카잔으로 보내고, 농민의 가축을 빼앗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가족이 4명이 안 되는 집은 마지막 소까지 빼앗습니다. 양 한 마리에 세금이 15루블입니다. 농민들은 가축을 잡고 있습니다. 1년이 지나면 파멸은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가축 없는 마을은 죽은 마을입니다.”
열 번째 편지에서는 이렇다. “우리는 곡물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법령이 명령한 대로 1인당 1년에 9푸드를 남겼습니다. 그러자 7푸드를 남기고 2푸드를 내놓으라는 법령이 왔습니다. 내놓았습니다. 볼셰비키가 부대를 이끌고 왔습니다. 우리를 완전히 거덜 냈습니다. 우리는 일어났습니다. 유흐노프 군의 사정이 나쁩니다. 포병에게 얻어맞았습니다. 마을들이 불타고 있습니다. 집들을 땅과 똑같이 밀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다 내놓았고 좋게 해결하려 했습니다. 지독한 굶주림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좌파 사회혁명당원들은 줄곧 돌아다니며 숨기지 말고 내놓으라고 가르쳤습니다.”
또 열한 번째 편지(어느 지식인의 것)에서는 이렇다. “징발대와 독일인 민병 등은 일하는 농사꾼들을 완전히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약탈하고 때리고 채찍질하고 폭행하고 모든 것을 빼앗았습니다. 언제나 무장했고, 술에 취했고, 기관총을 끌고 다녔습니다. 내 앞에서 역에 있는 아낙들에게 기관총을 겨누고 약탈했습니다. 그들에게서 딸기와 치즈와 비계를 빼앗고, 더듬었습니다... 어느 동지와 내가 끼어들었더니 하마터면 우리를 총살할 뻔했습니다. 역의 인민위원도 하마터면 맞을 뻔했는데, 놈들은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할 권리를 준다고 소리치는 종이쪽지로 그를 위협했습니다. 쪽지에는 추루파와 또 누군가, 어쩌면 레닌 본인이 서명했습니다. 부대는 모스크바에서 왔습니다. 나는 노동자들을 그렇게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부대는 볼셰비키 노동자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그들은 주정을 징발해서 잔뜩 마셨습니다. 나는 그들이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특징적인 것은 그들이 이 모든 추태를 부리면서 알아들을 수 없게 울부짖었다는 것입니다. ‘뭐야!!! 반혁명을 꾸며... 안 돼, 어림없어... 쿨라크 놈들, 너희 모두... 이렇게... 벽에 세워... 끝이야.’ 보시다시피 객관적으로는 혁명적인데 다만 술에 취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 아낙과 승객과 농사꾼의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기관총을 사방으로 돌려 모든 사람에게 겨누었으니까요.
농사꾼들은 독이 올랐습니다. 물론 우파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봉기’는 심리적으로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농사꾼들이 우리에게 달려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좌파’들은 이랬습니다. ‘우리에게 무기가 있다’고 그들은 말했고, 우리는 더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농민들은 우리 없이 떠날 것이고, 그들에게는 더 나쁠 것입니다. 말해 보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했고 무슨 말을 해야 했습니까. ‘기다리라’고 말하거나 물러나야 했을까요. 우리는 ‘자신을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며칠 뒤 나는 신문에서 ‘좌파 사회혁명당의 쿨라크 봉기’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진압될 것이고 농민들이 정의를 찾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농사꾼들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라면 뭐라고 말했겠습니까. ‘소비에트로 가라’고요? 그러나 그 일은 소비에트에서 나온 것입니다. 놈들에게는 ‘윗분들’의 문서가 있으니까요. ‘윗분들’에게 호소하라고요? 그러나 레닌 자신이 ‘부대들’의 손안에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했겠습니까. 이제 우리에게는 파멸과 테러와 침울함뿐입니다.”
또 이런 일도 있다... 군 대회가 열리고 있다. 볼셰비키인 의장이 결의안을 내놓는다. 농민 한 사람이 발언을 청한다. “무엇 때문이오?” “나는 찬성하지 않소.” “무엇에 찬성하지 않는단 말이오?” “당신은 빈농위원회에 모든 권력을 준다고 하는데, 나는 찬성하지 않소.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 가야 하오. 당신의 결의안은 잘못되었으니 표결에 부칠 수 없소.” “뭐라고... 이건 집권당의 결의안이오.” “집권당의 것이면 어떻다는 거요.” 의장은 권총을 꺼내 농민을 그 자리에서 쏘아 죽이고, 회의는 계속된다. 표결은 만장일치였다.
우리에게는 여러 주에서 농민을 채찍질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대낮에, 마을 회의에서, 고요한 밤에, 재판도 없이 고문실에서, “반혁명적” 행동을 했다고, “쿨라크” 봉기를 했다고 저지른 총살과 살인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런 봉기에는 1만 5천 명에 이르는 마을들이 온통 벽처럼 일어선다. 어림잡은 수치만 해도 1905~1906년 진압의 희생자 수를 넘은 지 오래다.
누가 선동가이고 누가 부추기는 자인가?! 대답하라! 당신들이야말로 반혁명가이고, 백위대 가운데서도 최악의 자들이다!!!
“붉은 군대 병사들이 우리더러 흩어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파산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생각하려고 모였습니다. 우리는 법대로 전부 역으로 실어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또 왔습니다. 마을 회의에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제발 우리를 내버려 두라고 정직하게 부탁했습니다. 점심을 차려 주고 모든 것을 날라다 대접했으며, 원하는 것은 뭐든 가져가게 하고 돈도 받지 않고 내주었으며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점심을 먹고 나서 온갖 수로 우리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붉은 군대 병사 한 명이 얻어맞았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기관총을 쏘았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농사꾼들이 나섰습니다. 여섯 볼로스트가 모두 25베르스타에 걸쳐 사방에서 벽처럼 나아갔습니다. 아내와 어머니들은 모두 울며 곡을 했고, 쇠스랑과 쇠삽과 도끼를 들었습니다. 소비에트로 갔습니다.” 이렇게 쓴 사람은 좌파 사회혁명당원이자 농민부 위원인데, 그는 이 “쿨라크 반란”에서 농민들에게 맞아 반쯤 죽었고, 정직한 소비에트 일꾼이던 아들을 잃었다. “농사꾼들이 그를 괴롭힐 때 그는 한 마디 소리도 내지 않았고, 용감하게 고문을 견디다 그 고문 아래 죽었습니다.” 아버지는 불평하지 않는다. 이 반쯤 글을 아는 농민은, 궁핍에 시달리고(그는 이 군의 재산 상태를 수치로 든다. 말 없는 농가가 41% 등등) “가난”하고 1917~1918년 내내 절망적으로 굶주렸으며 더없이 정당한 요구를 모욕당해 분노한 농사꾼들이 “일어설”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한다. 그는 반혁명이란 이 농민의 봉기이자 자기방어가 아니라 이 봉기를 불러온 행동과 그 뒤에 따른 잔혹한 진압임을 이해한다.
“볼셰비키 선동가 1000명이라도 그들 스스로 해낸 것만큼의 선전은 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그들은 우리 앞에 얼굴도 내밀지 못합니다.”
인용은 여기서 마친다. 여러 주에서 같은 보고가 오기 때문이다. 페트로그라드의 수병 사건은 근로자들이 충직하게 드러낸 불만을 무의미한 잔혹함으로 처치한, 참으로 끔찍한 사실이다. 어떻게 이토록 눈이 멀고 제 살 궁리의 공포에 빠져, 갑자기 솟아오른 가장 순수한 혁명의 자연력을 이렇게 처치할 수 있는가? 우리가 무엇보다 그들의 지지로 10월 혁명을 쟁취한 그 수병들에게 어떻게 손을 들 수 있었는가? 전선에서 사형을 시행한 케렌스키를 두고 그토록 소리 높이던 당신들이 어떻게 이곳 후방에서 재판도 조사도 없이 혁명의 가장 훌륭한 아들들을 죽일 수 있는가?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에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좌파 사회혁명당 분파의 위임을 받아 그 선언문을 낭독했다는 이유만으로 하스켈리스를 죽이고도 부끄럽지 않았는가? 그에게서 그가 자기 손으로 쓴 수병 집회의 결의문이 발견되었다는 당신들의 고발이 거짓임은 증명할 필요도 없다. 당신들이 죽인 하스켈리스는 당신들이 그를 잡았을 때 어깨부터 두 팔이 모두 없었다.
당신들은 이 피를 씻어 내지 못한다. 가장 “높은” 구호의 이름으로도 그 피에서 깨끗해지지 못한다.
영국과 프랑스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에서 온 세계에 대고, 영불 제국주의 음모의 공범이라도 우연히 노동자이면 인질로 잡지도 체포하지도 않겠다고, 근로자의 불가침을 어기고 싶지 않다고 위선적으로 외치는 당신들이, 러시아의 근로자들은 한꺼번에 수백, 수천 명씩 죽인다(스몰렌스크 주, 리브니, 뱌트카 주, 펜자 주 등).
그렇다면 당신들이 페트로그라드에서 총살한 수병 샤시코프의 피는 똑같이 붉지 않단 말인가, 그에게도 목숨은 하나뿐이지 않은가?
삶의 온갖 어려움에도 대중은 주위의 위험을 이해하기에 듣도 보도 못한 고난을 견딜 줄 안다. 그러나 대중은 혁명적이고, 자기 권리를 깨달았으며, 자치를 원하고, 소비에트 권력을 원한다. (당신들이 그렇게 부르는) “쿨라크” 봉기들의 구호는 방데의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혁명적이고 사회주의적이다. 근로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기는커녕 어찌 감히 이 봉기들을 피로 진압하는가?! 당신들은 농민과 노동자들을 죽인다. 소비에트 재선거를 요구했다고, 차르 시대에도 없던 끔찍한 자의가 판치는 당신들의 고문실 체카에게서 자신을 지켰다고, 임명받은 볼셰비키의 자의에서 자신을 지켰다고, 징발대의 모욕과 폭력에서 자신을 지켰다고, 혁명적이고 정당한 불만을 조금이라도 드러냈다고 죽인다.
대중의 요구가 우리의 구호와 비슷한 것은 대중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인민에게 가르쳤고, 인민이 피의 경험으로 배운 듯한 모든 것, 곧 노예가 되지 말고 자신을 지키라는 것을 당신들은 고문과 총살로 인민의 영혼에서 뿌리 뽑으려는 것 같다.
우리 당이 살아 있고, 《노동의 의지》와 “나로드니키 공산주의자들”[4]의 그 모든 뚜쟁이들처럼 무릎을 꿇거나 사면 청원서를 내지 않았으며, 우리 대중이 우리를 떠나지 않은 것을 보았을 때, 당신들은 당과 국가의 압착기를 총동원해 우리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당신들의 예전 수단인 거짓말과 중상은 더는 먹히지 않는다. “군주제주의자, 우파 사회혁명당원과 함께한 좌파 사회혁명당의 페트로그라드 협의회”라는, 지노비예프의 체카가 내놓은 “절대적으로 검증된” 자료는 거짓말을 넘어 무식한 허풍이어서, 이제 누구도 좌파 사회혁명당에 관한 당신들의 소식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거기서 받아들이는 것은 다만 당신들이 없애 버린 소비에트 권력, 당신들이 고려하기를 그만둔 근로자의 권력을 우리가 지키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당신들에게 남은 수단은 하나, 우리를 물리적으로 절멸시키는 것이고, 당신들은 그것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당신들은 승리해 가는 반혁명의 길에서, 패배하고 환멸에 빠진 대중이 기댈 수 있고 달려갈 수 있었을 마지막 힘을 치워 버리고 있다.
그리하여 이미 반혁명의 구호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소요 속에서 벌써 제헌의회가 고개를 들며, 전적으로 당신들 손으로 만들어 낸 부르주아 민주 공화국이라는 이 공포가 벌써 다가오고 있다.
결코, 결코 러시아는, 대중의 심리에서 그토록 다행스럽게 막시말리즘의 원초적 형식으로 나아가는 길에 들어선 러시아는(가장 깊은 혁명적 폭발의 때에는 그것만이 옳고 논리적이다), 당신들의 당이 없었다면 결코 사회주의 배신자들과 반동의 품에 안기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들의 당에는 위대한 과제가 있었고, 당은 영광스럽게 시작했다. 우리가 당신들과 함께 걸은 10월 혁명은 승리로 끝나야 했다. 그 토대와 구호는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서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필연적이었고, 모든 근로 대중의 한결같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으로 근로 대중의 혁명이었고, 소비에트 권력은 말 그대로 그 품속에 놓여 있었다. 소비에트 권력은 흔들리지 않았고, 어떤 음모와 봉기도 그것을 흔들 수 없었다. 우파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가 철저히 패한 것은 드물게 있었던 탄압과 부끄러워하는 압박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전 타협 정책 때문이었다. 대중은 참으로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주와 군의 대회들은 자연발생적으로 모였다. 거기에는 해산도 체포도 없었고, 자유로운 의견 투쟁과 정당들의 논쟁이 있었으며, 선거 결과는 어디서나 우파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라는 타협 정당들을 향한 대중의 완전한 경멸을 드러냈다.
그들은 허공에서 꺼져 가고 있었다. 그들을 겨눈 테러는 필요 없었다. 당신들의 정책 노선이 옳았다면, 당신들이 사회주의와 국제주의의 원칙을 배반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의 정책은 객관적으로 근로자들을 내리 속이는 일이 되었다.
사회화된 공업 대신 국가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국가 체제가 들어섰다. 강제 착취 체제는 그대로 남고, 이윤 분배에서 작은 차이만 있을 뿐이다. 작다고 하는 것은 이 체제에서 당신들의 수많은 관료층이 부르주아지 한 줌보다 더 많이 먹어 치울 것이기 때문이다.
제3차 노동자·농민 소비에트 대회가 온통 환호하는 가운데 승인한 토지 사회화 대신, 당신들은 그것을 사보타주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좌파 사회혁명당과 갈라서 손이 자유로워지자, 은밀하게 또 공공연하게, 속임수와 폭력으로 토지 국유화를, 곧 공업에서와 똑같은 국가 소유를 농민에게 슬그머니 떠넘기고 있다. 마치 일부러 그러는 듯 당신들은 농민들이 수만 데샤티나의 지주 영지를 사회화하지 못하게 막고 그것을 “소비에트 영지”로 고스란히 보전하고 있다. 반동이 닥치면 지주들이 우크라이나에서처럼 차려진 밥상으로 들어오도록 말이다.
토지의 이동과 변경, 경영 전체의 재분배, 현지의 점유는 토지 사회화법에 대한 당신들의 사보타주와 사회화를 둘러싼 술책 때문에 극도로 어려워졌고, 이는 농민들에게 쓰라린 결과를 안겨 줄 것이다.
전쟁과 평화 문제에서 당신들은 브레스트 강화 조인이라는 “해결책”을 택했다. 그 강화는 어쩌면 이미 제 할 일을 끝내, 우리 혁명을 질식시켰다. 그런데 당신들은 독일 제국주의와 타협한 당신들의 “숨 돌리기”가 우리에게 풍성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인민에게 우기는 놀라운 뻔뻔함까지 지녔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대체 무엇을 주었는가?! 그것은 우리 혁명을 왜곡했고 독일 혁명을 반년 늦추었으며, 우리가 풀어 놓은 독일의 군사력이 모두 서부 전선으로 쏟아져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 가자 영국과 프랑스 노동자들의 우리에 대한 태도를 나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수 근로 인민의 암묵적인 도덕적 승인과 소수의 미지근한 항의 속에 영불 정부가 우리 일에 개입할 토양과 가능성을 만들어 주었다. 브레스트는 우리를 경제적 영양의 원천, 곧 석유와 석탄과 곡물에서 끊어 놓았고, 바로 이것 때문에 무엇보다 우리 혁명이 죽어 가고 있다.
브레스트는 변경의 우크라이나 혁명 전체를 독일의 진압에 넘겨준 배신이다. 핀란드 노동자들이 학살당하고,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채찍에 맞아 죽고,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가 질식하는 동안, 우리는 굶주림과 추위 속에 안으로부터 썩어 가며 “숨을 돌리고” 있었다. “숨 돌리기”의 원칙은 당신들을 그토록 타락시켜, 스코로파츠키처럼 당신들도 독일 군사령부와 함께 봉기한 벨라루스인들을 진압하기에 이르렀다(센노 군과 국경 지대 전체). 그리고 무엇보다 브레스트를 통해 우리는 영불 전선을 얻었고, 봄의 전쟁을 얻었다. 그 전쟁은 새로운 군사 기술의 온갖 공포, 곧 폭풍 같은 포화와 벌레처럼 사람들을 수천 명씩 깔아 뭉개는 탱크를 앞세우고 무시무시하게, 가차 없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브레스트를 파기하려는 우리 좌파 사회혁명당의 시도는 우리 공동의 10월을 역사의 혁명적 계기에 호소하는 필사의 시도였다. 그러나 당신들은 당신들을 겁먹게 한 독일 제국주의에 대한 부끄러운 종속에 희망 없이 빠져 있었다. 당신들은 물질적·기술적 계기에만 호소할 수 있다. 당신들은 재빨리 조직된 거대한 군사력과 혁명적 열정을 북부 방어에 쏟아 없앴다. 그리고 당신들의 강화, 곧 독일과의 동맹 시기에 우랄 전선은 노골적으로 제국주의적이었고, 영국인들과 싸우면서 당신들은 객관적으로 독일 제국주의를 위해 싸운 것이다. 아무리 둘러대도 사실이 그렇다.
독일 제국주의 정책의 궤도에 끌려든 당신들은, 당신들을 남쪽으로 끌어당기던 우리와 줄곧 싸웠다. 우리 생각에는, 그리고 이제 당신들도 직접 보았듯이 오직 그곳에 우리 10월의 구원이 있었고, 그곳에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결정적 전투의 매듭이 있었다. 그러나 당신들은 이미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의 금 보유고를 독일에 넘겨준 일, 우리가 미르바흐를 상대로 벌인 방첩 활동에서 드러난 당신들의 비밀 외교, 반혁명적 독일 대사관의 온갖 추잡함을 두고 당신들이 벌인 굴욕과 얼버무림과 감싸기(이것을 당신들은 이제 조금 시인하고 있다. 페트로그라드, 마우저 권총 상자), 이 모든 것이 당신들의 타협의 단계들이다. 이제 당신들은 킬의 수병들과 리프크네히트에게 브레스트 거부라는 좌파 사회혁명당의 전술을 권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왜 독일 제국주의 앞에서 배로 기었으며, 지금 샤이데만이 독일 함대를 넘겨주었다고 낙인을 찍으면서 이로써 흑해 함대에 대한 당신들 자신의 배신을 자인하는가. 좌파 사회혁명당은 국제 혁명의 승리를 위해 거대한 국민적 희생의 위험을 무릅썼고, 그들에게는 독일도 같은 위업으로 부를 권리가 있다. 그러나 타협주의자 샤이데만과 똑같이 행동했고, 이제 자기 국민의 이익을 위해 독일에 국민적 희생을 요구하는 당신들이 여기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당신들의 군대, 그 구조, 케렌스키처럼 전선에 사형을 도입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끔찍한 규모로 집행하는(케렌스키는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일이다) 트로츠키의 통솔 체계, 군대의 낡은 기계적 규율, 사회주의 군대의 병사를 채찍질하는 데까지 이르는 징계, 윗선과 트로츠키를 향해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증오, 이 모든 것이 니콜라이 시대로의 복귀가 아니고 무엇인가? 당신들 손으로 옛 군대를 준비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것은 다시 제헌의회파와 온갖 토박이 보나파르트들이 군대를 쉽게 독재할 길을 약속한다. 당신들은 군대를, 반혁명과의 싸움에서 대중을 대신할 기계적인 힘으로 만들고 있지만, 그 군대는 당신들이 혁명에서 밀어낸 바로 그 대중에게서 뽑는 것이다.
소비에트 권력에 대한 냉소적 태도, 백위대식의 대회와 소비에트 해산, 임명받은 볼셰비키의 처벌받지 않는 자의로 당신들은 자신을 소비에트 권력에 맞선 반란자의 진영에 세웠고, 그 힘으로는 러시아에서 유일한 반란자가 되었다. 소비에트 권력은 그 모든 혼돈에도 불구하고 제헌의회와 두마와 젬스트보 전부보다 더 크고 더 나은 선출 제도다. 소비에트 권력은 근로 대중의 자치 기구이며, 그들의 의지와 기분과 필요를 민감하게 비춘다. 각 공장과 공방과 마을이 자기 소비에트 대의원을 재선출함으로써 국가 기구의 일에 영향을 미치고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 자신을 지킬 권리를 가졌을 때, 그것은 참으로 자치였다. 모든 자의와 폭력, 대중이 처음으로 통치하고 통치받으려 할 때 자연스레 생기는 모든 죄는 쉽게 고칠 수 있다. 어떤 기한에도 제한받지 않는 선출 원칙과 주민이 자기 선출자 위에 갖는 권력이, 자기 대의원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을 가능성, 곧 온 마을과 공장이 아는 가장 정직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바꿀 가능성을 주기 때문이다. 근로 인민이 속임수와 도둑질을 한 자기 소비에트 대의원을 두들겨 패면 그 대의원은 그래도 싸다. 설령 그가 볼셰비키라 해도 그렇다. 그런 파렴치한을 지키겠다고 당신들이 부르주아적 권력 권위 개념에 따라 마을로 포병을 보낸다는 것은, 당신들이 근로자 권력의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농사꾼이 임명받은 폭력배들을 쫓아내거나 죽일 때, 바로 그것이 붉은 테러, 권리 침해와 억압과 폭력에 맞선 인민의 자기방어다. 어느 마을이나 공장의 대중이 우파 사회주의자를 보낸다면 보내게 두어라. 그것은 대중의 권리이고, 그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은 우리의 불행이다. 소비에트 권력이 기압계처럼 민감하고 인민과 하나로 결합되려면, 끝없는 선거의 자유, 인민의 자연력의 놀이가 필요하다. 그럴 때에야 창조와 새로운 삶, 새로운 건설과 투쟁이 태어난다. 그럴 때에야 대중은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이라고 느낄 것이다. 대중 스스로 자기 운명의 창조자이고, 제헌의회와 다른 의회 기관에서처럼 누군가가 대중을 후견하고 베풀고 대신 변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고 느낄 것이다. 오직 그럴 때에야 대중은 끝없는 위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들이 우파 사회주의자들을 소비에트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쫓아낼 때 당신들과 싸웠다. 소비에트는 근로자의 전투적인 정치·경제 조직일 뿐 아니라 일정한 강령이기도 하다. 부르주아·농노제 체제의 모든 토대를 없애는 강령이다. 우파 대의원들이 소비에트에서 이 체제를 보존하거나 옹호하려 했다면, 이 조직의 본성 자체가 그들을 꺾었을 것이고, 당신들의 체카가 아니라 인민 스스로 그들을 자기 이익의 배신자로 내던졌을 것이다.
10월 혁명의 강령은 근로자의 의식 속에 대략적으로 그려진 그대로 지금까지 그들의 영혼에 살아 있다. 대중은 자신을 배반하지 않으며, 배반당하고 있을 뿐이다. 근로자가 자기 대의원과 소비에트 일꾼을 뽑는 일에 대한 불경은 더없이 거친 기관총의 자의로 드러난다. 그 자의는 7월 반동 이전에도 있었다. 우리 세력이 커지는 것을 보며 당신들이 벌써 소비에트 대회 해산을 자주 연습하던 때다. 이것은 우파 정당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안겨 줄 것이다. 당신들은 인민을 무권리에 그토록 길들이고 온갖 습격에 말없이 복종하는 습관을 그토록 들여 놓아서, 압크센티예프식, 미국식, 크라스노프식 독재가 기름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갈 수 있다. 소비에트와 대회에서 교체와 투쟁을 거쳐 빛처럼 공기처럼 넘쳐흐르는 인민의 자유로운 창조 대신, 당신들에게는 임명받은 자들과 공산당 출신의 경찰서장과 헌병이 있다.
오, 당신들은 얼마나 악의에 찬, 악의에 찬 공산주의 혁명의 배신자인가!
자, 이제 무슨 얼굴로, 무슨 얼굴로 근로자들에게 가서 계급 권력을 설교할 것인가?! 그들은 물을 것이다. “어느 계급의 권력입니까?” 농민을 두고, 빈농위원회를 두고 벌인 당신들의 수작... 이제 당신들은 이 분야에서 우리가 [평생] 주장해 온 모든 것을 말로는 받아들였다. 그러나 당신들은 빼앗은 곡물의 50퍼센트로 매수해 당신들에게 충성하게 만든 당신네 계급의 무리를 가지고 온 농민 러시아에 무슨 헌병대 같은 것을 만들려던 수작을 버리기까지 다섯 달이나 농사꾼들을 괴롭혔다. 노동자·농민 정부가 서약서를 받아 내어 그들의 복종을 보장한다. 계급 권력을 이 얼마나 악랄하게 왜곡한 것인가!
노동자에 대한 당신들의 정치적 직장 폐쇄는 체계가 되어 가고 있다. 고집스럽게 나를 자기네 소비에트 대의원으로 뽑은 쿠르스크 철도 공작창을 당신들은 무슨 죄로 해산했는가?
그리고 탐욕과 부패와 출세주의에 대한 당신들의 방조, 16호[5], 볼셰비키에게 맨 먼저 내주는 신발, 고무 덧신, 따뜻한 아파트 등등의 배급표, 《프라우다》와 《중앙집행위원회 소식》에 이를 뻔뻔하게 싣는 일... (“어느 건물을 비운다. 공산당원 노동자가 맨 먼저 입주한다.”)
멘셰비키 노동자를 쫓아내고 볼셰비키 노동자를 그 집에 넣는 것, 이것이 계급 권력을 뜻하는가?
식구 많은 좌파 사회혁명당원 노동자를 해고하고 그 자리에 미혼의 공산당원을 앉히는 것... 이런 노동자 총살, 농민과 병사에 대한 채찍질과 살인, 이것이 계급 권력을 뜻하는가? “좌파 사회혁명당에 공감하는 정직한 농사꾼을 소비에트에 보내면 우리에게는 농기구 대출도 씨앗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볼셰비키를 소비에트에 보냅니다. 그들을 모두 ‘모르구엠’(경멸합니다, 말 그대로 ‘역겨워합니다’) 하지만요.” 어느 농민은 이렇게 쓴다. “볼셰비키를 통하면 집행위원회에서 뭐라도 얻어 낼 수 있으니까요.”
근로자의 이익을 당신들의 당에 투표하기로 동의하는 자들의 이익으로 이렇게 바꿔치기하는 것, 일종의 로마 플렙스를 만들어 내는 것은 물론 혁명의 살아 있는 창조적 힘을 썩게 한다. 대중은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이해하며 우리보다 더 잘 본다. 모든 사회적 힘이 이토록 소진된 적은 없었고, 소시민적 이기주의와 제 한 몸 구하기, 탐욕스러운 치부의 정신, 투기, 개인을 보호하고 사람에 의한 사람의 착취를 막는 법률을 피해 가는 일이 이처럼 판친 적이 없었다. 지금 당신들의 당파적 분파주의 아래에서처럼 말이다. 당신들은 계급투쟁이라는 이 역사철학적 교리의 개념을, 두 경제적 범주의 투쟁일 뿐이라는 마르크스주의 개념으로 바꿔치기했을 뿐 아니라, 그저 늑대의 싸움이라는 개념으로 바꿔치기했다.
노동자들은 굶어 죽지 않으려고 농민들에게 가서 마지막 빵 조각을 빼앗는다. 지금 우리 사회주의 오아시스의 영토는 결코 곡창이었던 적이 없고, 전쟁의 온갖 파멸적 결과가 있는 가운데 이 섬 안에서 식량 문제를 푸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좌파 사회혁명당은 이를 충분히 큰 소리로 말했다. 땅을 가는 사람들과 공장 사람들이라는 친형제 사이에 거대한 불화의 씨가 뿌려졌고, 그 불화는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국민적 규모의 계급투쟁은 유토피아다, 브레스트의 민족주의자 나리들. 계급투쟁은 오직 국제적 규모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자기만 구하려 들 때, 일종의 사회주의적 쇼비니즘 아래에서는 계급투쟁은 타락한다. 당신들에게서 타락했듯이 말이다.
독일인 민병을 통해 식량 독재를 시행함으로써 민족 간 불화의 씨가 뿌려졌다. 독일인 전쟁 포로 부대(국제주의자들이라고 당신들은 덧붙인다)가 다른 징발대와 나란히 활동했다. 나는 펜자 주의 일을 안다.
펜자 주에서는 농민을 채찍질하고 총살했으며, 마땅히 할 일을 전부 정해진 형식과 규정된 절차대로 했다. 먼저 그들에게서 징발하고 채찍질하고 총살했다. 그러자 농민들이 벽처럼 일어섰고(쿨라크 봉기라고 당신들은 말했다), 그들을 진압하고 다시 채찍질하고 총살했다. 우리 좌파 사회혁명당원들은 농민을 채찍질한 이 “국제주의자들” 수십 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러시아 농사꾼의 어리석음과 그에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얼마나 경멸하며 말했는지, 이 “국제주의자” 부대가 마을에 얼마나 야만적인 쇼비니즘을 불러일으켰는지 전하기 어렵다. “콤베디”의 역사는 오랫동안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벌거벗은 강제와 폭력으로 쪼그라든 정치적 요인만이 계급 분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가 당신들에게 가르쳐야 하는가. 분화 과정에는 그 나름의 경제적, 문화적, 정치·법적 토대가 있다.
바로 분화의 원칙을 그렇게 이해하고, 농민부는 겨우내 봄내 선동원과 위원들을 통해 활동했으며, 그 결과는 어디서나 긍정적이었다.
쿨라크와의 싸움과 그들의 경제적 무력화는 군 전체의 문화·경제 건설을 위한 재원을 마련해 주었다. 당신들의 당은 10월 기념행사 하루에 2500만을 내놓았으면서, 정작 8개월 내내 농민의 정치·사회 계몽 조직에 필요한 수억 대신 내게 겨우 300만을 주었고, 계몽은 국가의 도움 없이 저희 마을과 부락에서 스스로 조직해야 했다.
농민에 대한 당신들의 잔인하고 거친 정책 전체는, 특히 우리가 감옥과 체카의 고객이 된 때부터 펼쳐진 것으로, 참된 반혁명의 정책이다. 그리고 당신들의 경찰이란!… 그것은 옛 순경과 파출소장을 본뜬 것으로, 어린 좀도둑까지 두들겨 팬다.
그리고 당신들의 체카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름으로, 농민의 이름으로 당신들은 우리 혁명의 모든 도덕적 성과를 영으로 만들었다. 당신들 안에서 그 방종에 맞서 감히 소심한 목소리를 내어 적어도 공산당 위원회 위원과 중앙집행위원만이라도 신체의 불가침을 보장받으려 했을 때, 당신들은 체카에 의심스러운 분자가 없다고, 전부 공산당원이라고 증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당신들과 체카로서는 그만큼 더 나쁘다. 우리는 그들에 관해, 전러시아 체카와 주·군 체카에 관해 참으로 끔찍하고 듣도 보도 못하게 끔찍한 사실들을 알고 있다. 사람의 영혼과 육체를 능욕한 사실, 고문과 기만, 모든 것을 삼키는 뇌물, 벌거벗은 약탈과 살인, 무수한 살인의 사실들이다. 조사도 없이, 말 한마디와 밀고와 중상으로,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고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채로 저지른 살인이다. 노동계급의 이름으로 바로 그 노동자와 농민, 수병과 겁에 질린 시민에게 듣도 보도 못한 만행이 저질러지고 있다. 노동계급의 진짜 적은 체카에 좀처럼 걸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들 자신이 그토록 끔찍하게 반혁명과 한 핏줄이 되지 않았다면, 당신들의 반혁명 음모라는 것이 누구에게 무서울 수 있었겠는가. 소비에트 권력이 볼셰비키와 좌파 사회혁명당과 다른 정당들로 이루어져 인민의 품속에 놓여 있었을 때, 제르진스키는 그 기간 내내 믿기 어려울 만큼 악질인 강도와 살인자 몇 명만 총살했고, 그것도 죽은 사람 같은 얼굴로, 망설임의 고통 속에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소비에트 권력이 소비에트의 것이 아니라 볼셰비키만의 것이 되고, 그 사회적 기반과 정치적 영향력이 점점 좁아지자, 예전에 차르에게 카자크, 술탄에게 예니체리가 필요했듯이 레닌에게 라트비아인들의 삼엄한 경호가 필요해졌다. 이른바 붉은 테러가 필요해졌다. 온 인민과 우리 사회주의자들의 끝없는 고통에도 정치적 고려 때문에 니콜라이 로마노프와 다른 차르와 부차르들에게 손을 들지 않고 그들을 온갖 우크라이나와 크림과 외국으로 풀어 놓았으며, 혁명가들의 고집 때문에야 겨우 니콜라이에게 손을 든 바로 그 사람들이, 레닌의 왼팔이 다쳤다고 대번에 모든 판단력을 잃고 수천 명을 죽였다. 히스테리 속에서 죽였다(그들 스스로 시인한다). 재판도 조사도 없이, 확인도 없이, 법적 의미는 물론 도덕적 의미라고는 비슷한 것조차 없이 죽였다. 그렇다, 레닌은 살았다. 다음번에는 아무의 외롭고 광신적인 손도 그에게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 볼셰비키가 이끄는 혁명에서 마지막 살아 있는 정신이 날아가 버렸다. 혁명은 아직 죽지 않았지만 이미 당신들의 것이 아니고 당신들이 만드는 것도 아니다. 이제 당신들은 그것을 꺼뜨리는 자일 뿐이다. 레닌은 더 불안하게 살더라도 이 살아 있는 정신을 지키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정말로, 정말로 당신은 그 큰 지성과 사심 없음과 인간적 선량함을 가지고도 카플란을 죽이지 않을 생각을 못 했단 말입니까. 그랬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고결했겠으며, 차르의 틀을 벗어났겠습니까. 그리고 이빨 부딪는 소리, 고통과 증오와 공포의 울부짖음만 들리고 사랑의 소리는 한 음도, 한 화음도 없는 우리 모두의 광란과 악에 받친 이때, 그것은 우리 혁명에 얼마나 필요한 일이었겠습니까.
체카에서 처음으로 드물게 총살이 있었을 때, 제르진스키는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사나운 약탈에서 지키면서도 사형 집행인이 되지 않을 방법을 찾느라 머리를 싸맸고, 알렉산드로비치는 오늘 당장 자기를 체카에서 빼 달라고 애원하며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져 뛰쳐나왔다.
수병 예멜랴노프는 “나를 죽이시오, 술을 마시기 시작했소, 못 하겠소, 거기서는 사람을 죽이오, 나를 체카에서 내보내 주시오, 나는 못 하겠소”라고 말하며 폭음을 했다... 이것이 테러 행위를 처음 시도할 때의 분위기였다. 좌파 사회혁명당원들이 체카의 “삼인위원회”에서 총살에 반대표를 던지자 그들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했고,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테러에서 어려운 것은 시작뿐이었듯이, 러시아에서도 볼셰비키의 체카가 펼쳐 나간 일은 우리가 품었던 모든 우려를 넘어섰다.
묶이고 무장하지 않았고 무력해진 사람들을 호딘카에서 밤에 슬그머니 나강 권총으로 뒤통수를 쏘아 죽이고, 그 자리에서 (흔히 벌거벗을 때까지) 약탈한 시체를, 때로는 숨이 끊어지지 않아 신음하는 시체를 바로 그 호딘카에 여럿을 [위한] 한 구덩이에 묻는 일은 테러라고 불릴 수 없다. 이것이 무슨 테러인가!…
이 말에는 러시아 혁명사 내내 보복이나 위협의 개념(이는 거기서 맨 끝의 일이다)만이 아니라, 어느 인민의 사형 집행인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려는 소망이나 필요만이 결부되어 있던 것이 아니다. 그 첫째이자 결정적인 요소는 억압과 폭력에 대한 항의라는 요소이고, (감수성에 대한 정신적 압력을 통해) 짓밟힌 근로자의 영혼에 명예와 존엄을, 이 짓밟힘을 보고도 침묵하는 자들의 영혼에 양심을 일깨우는 요소다. 그것은 행동에 의한 선동과 선전의 수단이고, 대중에 대한 눈에 보이는 교육이다. 바로 그렇게, 어떤 결과도 두려워하지 않고 떨림 없이 당당하게 적을 쳐야 한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독일 대사 미르바흐와 우크라이나의 독일 장군 아이히호른에 대한 행동은 무엇보다 이런 사명을 띠었다.
그리고 테러에는 거의 떼어 놓을 수 없게, 공격하는 쪽의 목숨과 자유 따위의 희생이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테러 행위의 정당화는 오직 여기에만 있는 듯하다.
체카에 이 요소들이 어디 있는가?!! 신문에 실린 체카 이데올로그들의 서신 교환은 그들의 믿기 어려운 지적·도덕적 빈곤을 증언한다. 그들이 자기네의 완전한 자립을 열렬히 옹호하는 일은 바로 당신들의 공산당에 더없이 흥미로운 분란을 예고한다. 당신들은 곧 당신들의 체카 손안에 들어갈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 손안에 있다. 당신들에게는 그것이 어울린다. 그러나 이 기관을 통해 자신을, 노동계급이 아니라 자신을 미친 듯이 지키면서, 그러면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머지않아 당신들에게는 압크센티예프나 스코로파츠키만큼의 권리밖에 없을 것이다. 혁명은, 당신들이 고무 덧신 배급표처럼 거기 참여할 위임장을 발급하더라도, 당신들의 독점물일 수 없다. 혁명은 [낱말 판독 불가] 당신들을 제쳐 놓고 나아갔다. 혁명이 당신들의 반동과 당신들 때문에 자기 안에 생긴 심리적 반동을 아직 이겨 낼 수 있다면, 혁명은 자기방어의 방법을 찾아내고, 당신들과 우파 사회주의자들이 더럽힌 사회주의의 깃발을 깨끗이 할 것이다. 대중 봉기의 본질 자체가, 당신들이 그것에 들이민 것과 완전히 다른 투쟁 법칙을 그 안에 미리 담고 있다. 150년 전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일어난 프랑스 혁명 시기의 로베스피에르식 문구를 쓰는 것은 논거도 정당화도 아니다. 오히려 로베스피에르는 당신들이 러시아 혁명을 그렇게 하듯이 자기 테러로 프랑스 혁명을 쓰러뜨리고 잔인하게 해쳤다. 그리고 이렇게 제멋대로 이해된 독재의 대가를 당신들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이 목숨과 명예로 어떻게 치를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만약 제헌의회가 일시적으로 승리하여 사회주의 배신자들과 부르주아지의 테러가 시작된다면, 패배하고 묶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짓누르는 반동의 힘에 자비를 비는 것 말고 무엇을, 대체 무엇을 맞세울 수 있겠는가? 프롤레타리아트가 무엇에, 어떤 절대적인 것에, 도덕과 인간성의 어떤 이념에 호소할 수 있겠는가. 그에게는 당신들의 물리적 힘이 우세할 때 당신들이,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당신들이 신문과 집회에서 하는 바로 그 복수심에 찬, 제 살 궁리의 야비한, 의기양양한 말이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일시적인(혁명은 그래도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승리의 때에 근로자의 적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모든 것을 백배로 갚을 것이고, 그 승인을 자신의 잔인함만이 아니라 당신들의 사례에서도 얻을 것이다. 체카 위원 한 사람에 150명을 총살한 일과 당신들의 그 밖의 “도덕적 대담함”의 위업까지, 전부 더 진하게 더 세게 갚아 줄 것이다.
노동계급은 지금까지 자기 자신의 피로 물든 깨끗한 붉은 깃발 아래 혁명을 이루어 왔고, 거기에 그 혁명의 위대한 도덕적 권위, 인류의 가장 훌륭한 이념을 위한 투쟁과 고난의 꺼지지 않는 빛이 있었다. 혁명 자체는 그 일시적이고 현재적인 변화들과 떼어 놓고 보면, 본질에서 삶의 위대하고 밝은 변모이자 정화이고 고양이며 성화다.
노동계급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위대하고 거룩한 개념으로 이 붉은 도살 공방의 솜씨를 가리면서 자기 이름으로 투기하는 것을 당신들에게 금지해야 한다. 노동계급과 농민은 자기 말을 해야 한다. “체카를 타도하라.” 그들은 말만 하지 않고 체카를 때려 부술 것이다. 사회주의는 실현되어야 한다. 근로자의 압도적 다수의 이익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고, 자본주의 발전이 토양을 마련하고 사회주의에 직접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지금의 역사적 파국 전체의 불가피한 결과로서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 신념의 이 과학적 근거는 어떤 실패로도 흔들릴 수 없으나, 그 신념에는 관념적이고 비합리적인 뿌리도 있다.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은 동시에 인류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 선과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 모든 형태의 억압과 폭력의 종식에 대한 믿음, 땅 위에서 형제애와 평등이 실현되리라는 믿음이다.
그런데 인민의 영혼에서 일찍이 없이 불꽃의 횃불처럼 환하게 타오른 이 믿음을, 당신들은 그 뿌리부터 쳤다. 아이의 영혼에 침을 뱉은 듯이.
근로자의 그토록 믿기 어려운 고통으로 거룩해진 우리의 위대한 혁명을 당신들은 어떻게, 어떻게 해 놓았는가?!!
나는 묻는다, 당신들에게 묻는다...
근로자들이 당신들에게 품었던 그 끝없는 믿음을, 당신들이 우리와 동맹하여 세상의 어떤 정부도 가져 본 적이 없을 만큼 다행스럽게 지녔던 그 믿음을 어떻게 해 놓았는가. 우리에게 위험해 보였던 제헌의회 해산 뒤의 제3차 소비에트 대회를 떠올려 보라. 근로자들은 믿는 자의 더없는 평온으로 의회주의의 초라한 실험을 내던졌다. 그들은 아이가 어머니에게 그러듯 우리에게 자신을 맡겼다.
당신들 가운데는 큰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밝은 신념과 이상을 지닌 평당원들이 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대중의 심리를 상대로 세계에 하나뿐인 도발 같은 것을 벌였고, 거대한 규모로 독이 든 예방 주사를 놓았다. 사회주의 이념의 이름으로, 이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향한 혐오와 불신과 공포를 접종한 것이다. 당신들이 인민에게 보여 주고 실현을 도운 그 작은 진실 조각을 앞세워 당신들은 자기 분수를 넘었고, 대심문관처럼 근로자의 영혼과 육체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요구했다. 그리고 근로자들이 당신들을 떨쳐 내기 시작하자, 당신들은 “반혁명”과의 싸움이라며 고문실로 그들을 짓눌렀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당신들 손에는 근로자의 불만을 달랠 수단이 많이 있다. 통일 노동 학교, 주택의 사회화, 상업의 국유화, 이 개혁들 하나하나가 사회 생활의 거대한 요인이고 10월의 연속이다. 근로 대중은 거의 언제나 반혁명적이지 않다. 그들은 다만 굶주리거나 모욕을 당할 뿐이다. 그들의 운동의 비합리적 뿌리까지 고려되었다면, 지금도 그들은 영웅적으로 굶주리고 추위를 견디며, 제국주의와 백위대의 봉쇄가 주는 더 큰 공포까지 참으면서 더 밝은 날까지 버텼을 것이다.
10월 뒤에는 특히 그것이 느껴졌다. 대담한 인민의 자연력이 일으킨 파괴적인 행동이 국가 체제의 모든 장벽을 부수었고, 근로자의 해방 운동에서는 참으로 거의 눈앞의 “태고의 혼돈”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온 세계에 숨어 있듯 지하의 샘들이 터져 나왔고, 봉기의 불길 속에서 인민 심리의 깊은 원천이 드러났다. 그 원천은 배만 채우는 것을 찾지 않았다. 당신들은 그 위에 모든 것을 세우는, 별난 형이상학적 절대주의자들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 파국적 격변과 세계적 고통이 팽팽해지는 시대에 그렇듯, 역사 과정의 가장 깊고 근본적인 경향들이 작용하기 시작하는데, 그것들은(어쩌면 당신들도 이제 보았겠지만) 당신들의 경제적 유물론 공식으로 덮이지 않는다.
참으로 우리에게서 힘과 자유 속에 인류의 새로운 탄생이 시작되었다. 근로자들은 진리를 지키며 그 진리가 빛날 날[까지] 살아남으려고 배의 온갖 고통을 견딜 것이고, 또 견디려 한다. 우리 앞에는 끝없는 가능성이 열렸고, 그 빛은 근로자들 자신에게서 나온 붉은 테러의 불길도, 그들의 포그롬적 표출의 어두운 면도 흐리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물론 이 해방의 파토스에, 우리 혁명 시대의 이 열정에 당신들의 교조주의와 독재적 중앙집권, 대중의 창조에 대한 불신, 광신적이고 좁은 당파성, 이 나라의 모든 두뇌로부터 스스로 도취해 선을 그은 태도를 들여와서는 안 되었다. 대중에 대한 사랑과 존경 대신 선동만 들여와서는 안 되었고, 무엇보다 이 위대한, 기적에 가까운 운동에 새 세계를 창조하는 자의 심리가 아니라 망명자의 심리를 들여와서는 안 되었다.
우리 당은 당신들과 블록을, 동맹을 맺었고, 당신들이 10월 혁명의 유훈과 근로자들과 동맹하고 있는 동안에는 10월부터 함께 걸었다. 당신들이 대외·대내 정책의 새 노선을 시작하자 우리 당은 당신들에게서 점점 더 멀어졌다. 당신들은 기만이나 배신을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 당 중앙은 3월부터, 브레스트 뒤부터 이미 당신들과 아무 관계가 없었다. 유일한 연결 고리는 나였지만, 나도 다른 이들보다 늦게 당신들을 떠나면서, 나는 이제 당신들과 함께하지 않으며 농민을 위해 싸움을 시작한다고 당신들 가운데 몇 사람에게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7월 6일은 당신들을 겨눈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신들도 우리만큼 잘 안다. 그것은 당의 전술 전체와 혁명적 소수의 권리에 관한 당의 가르침에서 나온, 당이 취한 입장을 일관되게 관철한 일이었다. 당신들의 수치스러운 잘못은 독일 제국주의에 맞선 작은 봉기의 시도를 우리가 당신들을 전복하려 했다는 이른바 의도와 혼동한 데 있다... 당신들은 독일 대사관과 지나치게 자신을 동일시했다.
당신들을 떠난 뒤 당은 혁명과 근로자들과 더욱 깊이 결합했고, 7월에 정부의 야만적인 반동이 시작되자 당은 거의 대중 속으로 녹아들었다.
카토르가와 당신들의 감옥 사이의 틈에 나는 (특히 지난해 10월부터) 농민의 정당 구성에 관한 자료를 모았다. 농민부로 날마다 농민 30, 40, 50명이 나를 찾아왔고, 그들 말고도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의 우리 모든 분파와, 전러시아 농민 대회의 볼셰비키와 좌파 사회혁명당 모든 분파에서 정보를 모았다. 그리고 나는 좌파 사회혁명당 쪽 농민이 당신들의 농민보다 경제적으로 비할 수 없이 더 가난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쿨라크와 그 추종자들은 모두 볼셰비키라고 불렸다. 이는 이해할 만하다. 힘은 힘을 끌어당기거나 힘 곁에 자리를 잡는 법이다. 그리고 좌파 사회혁명당 뒤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과 중농 말고도 온갖 분파 신자들이 온 마을째 따른다. 보로네시 주, 트베리 주, 스타브로폴 주, 쿠반 지방, 캅카스 등에서 그렇다. 이는 매우 징후적인 사실이다.
인류의 역사와 사회적 격변의 실제 내용 전체는 인간 개인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다. 인민 가운데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자기 양심과 개인의 자유를 지켜 온 사람들이 지금 혁명의 능동적 참여자이고 바로 우리 당을 따르는 것은 까닭 없는 일이 아니다.
이 당을 당신들은 온갖 방법으로 죽이려 하고, 그 일에 성공하리라고 계산한다. 다만 우리가 달리 생각한다는 이유로, 대중을 공산당에 강제로 끌어넣기를 거부하고 다르게 생각할 대중의 권리를 지킨다는 이유로, 오직 그 때문에 당신들은 우리가 혁명을 위해 일하지 못하게 하고, 근로자들에게 말하는 우리 연사들을 (10월 기념행사 때에도) 체포하며, 볼셰비키가 독일과 스코로파츠키의 첩자들과 협력해 일하는 스몰렌스크와 국경 지대 체카에서 구타하고 고문한다. (그리고 당신들은 이를 덮어 준다. 그럼에도 우리가 정보와 증거를 들고 당신들에게 찾아가면 받기를 거부한다.)
반혁명이 오라지, 봉쇄가 그 고리를 죄라지, 크라스노프와 압크센티예프가 오라지, 당신들에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당신들은 당파의 앙갚음을 할 것이고, “자기 사람들”을 좁히고 또 좁힐 것이며, “당신들 기준으로” 더욱 믿을 만한 자들을 찾고, 당신들의 도덕적 둔감함과 무관하되 사회주의 혁명과 근로자의 이익에 피로 맺어지고 결합된 모든 것을 없앨 것이다. 반혁명 무리가 기뻐하게도 당신들은 마지막 힘을 그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쏟는다. 바로 지금 당신들은 루가에서 백위대가 조직되어 나선 그 눈앞에서 벨리키예루키의 좌파 사회혁명당 농민 유격대를 무장 해제하고, 그렇게 해서 그들을 지주·부르주아 패거리의 손에 넘기고 있다.
바로 지금, 어쩌면 동방과 서방, 북방과 남방,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서 무겁거나 반대로 정신이 아찔하도록 기쁜 사건들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일 텐데, 당신들은 좌파 사회혁명당 중앙위원회와 나를 재판하는 문제를 의사일정에 올렸다.
이제 나는 연단으로라도 그 재판을 원하지 않는다.
그동안 당신들은 온 힘을 다해 또렷하게 제 모습을 펼쳐 보였다. 당신들의 당이 우리 당과 자기 자신을 재판하는 것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재판을 받아야 한다면 제3인터내셔널과 역사가 우리를 재판해야 하며, 그때 누가 고발당하고, 누가 유죄 판결을 받고, 누가 무죄가 될지는 이제 의심할 것이 없다.
당신들의 재판부는 당파의 사람들로 짜였다. 그 재판부는 당의 규율이라는 이름으로 당신들의 당이 이미 7월에 결정한 것을 확인해야 한다. 이 몇 달 동안 이 결정을 집행한다며 당신들은 우리 당을 처치했고, “반란”을 이유로, “음모”를 이유로, “중앙위원회의 입장”을 이유로, 그것을 부인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사형까지 모든 것을 적용했다. 이 반란과 음모가 있었는지, 그 입장이 정확히 무엇인지 재판이 아직 밝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 입장 때문에 우리의 미수노들은 죽기 전에 자기 무덤을 파라는 명령을 받는다. 혁명재판소가 이 “중앙위원회의 입장”에 당신들을 전복하려는 반란도 음모도 없음을 밝힌다면, 그로써 재판소는 자기 중앙위원회에 유죄 판결을 내리는 셈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느니 강물이 거꾸로 흐를 것이다.
당의 규율이라는 이름으로 당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것을 안다. 당의 규율은 우리를 유죄로 판결하고 법 밖에 두는 것을 허용했다. 우리를 몰래 죽이는 것도 허용되었다. 그렇게 우리 좌파 사회혁명당의 어느 뛰어난 일꾼을 당신들의 전러시아 체카 요원 하나가 노리고 있다. 그에게는 체포하지 말고 그냥 “치워 버리라”는 허가가 주어졌다. 내게는 다만 우스티노프를 통해, 나를 풀어 주면 바로 그 체카가 나를 총살할 수 있다고 넌지시 알렸고, 내가 정치 활동을 그만둘 의향이 없는지 떠보았다.
괴물 같지만 사실이다.
도발(밀정 공작)도 허용되었다. 알렉산드로비치는 당신들 손에 처형되기 얼마 전, 우파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에 대한 도발 문제가 제기되자 동원 가능한 좌파 사회혁명당의 모든 표로 그것을 부결시켰다. 물론 우리가 없는 지금 당신들에게서는 이 수치,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울 수 없는 수치가 쓰이고 있다. 죽은 규율에 복종하며 당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모든 논리와 진실과 증거를 거슬러서도 볼셰비키와 혁명재판소의 규율이 잘 지켜질 것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때가 오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그때는 머지않았다. 당신들의 당 안에서, 혁명의 살아 있는 정신을 질식시키는 당신들의 당의 정책에 맞서 항의가 일어날 때가. 우리 사회주의 혁명의 유훈이 정신 속에 생생한, 이상을 지닌 대중 활동가들이 와야 한다. 우리에게 우파와 중도파 사회혁명당과의 사이에 그랬듯이 당 안에서 투쟁이 있어야 한다. 썩어 빠지고 통제받지 않는 권력과 지배 속에서 분수를 모르게 된 우두머리들에 대한 폭발과 타도가 있어야 한다. 정화와 재검토와 고양이 있어야 한다. 볼셰비키 당의 부활, 지금의 파멸적인 형식과 차르·부르주아적 정책의 의미를 버리는 일이 있어야 하고, 소비에트 권력으로, 10월로 돌아가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런 볼셰비키 당과 우리는 다시 조건 없이 온 마음으로 나란히 손잡고 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농민과 노동자의 총살과 모든 마을을 뿌리째 짓밟으라는 지령 아래 우리의 도장과 서명이 찍히느니, 차라리 우리를 죽이고 감옥에 가두어 두라. 당신들이 수만의 근로자들을 재판하고 처벌하듯이 재판하고 처벌하라.
우리 당에 대한 당신들의 재판은 상징적이다. 그 재판은 볼셰비키 당이 이른 타락을 논리적으로 종착점 가까이로 끌고 간다. 당원들의 분파적 왜곡과 규율로만, 당신들이 이 사건을 스스로 거두지 않고 끝내 재판이라는 허구로, 이 다섯 달 동안 우리에게 저지른 모든 일에 도장을 찍는 일로 끌고 온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당신들에게는 자신이 한 일을 부인할 근거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나는 안다. 우리는 7월에 볼셰비키를 전복하지 않았고, 우리의 의도는 오직 국제적 의미를 가진 테러 행위, 우리 혁명의 질식에 온 세계를 향해 항의하는 행위였을 뿐이다. 나는 안다. 있었던 것은 반란이 아니라, 미르바흐 일로 분노에 눈이 먼 볼셰비키의 보복에 맞선 절반은 자연발생적인 자기방어였고, 정부의 체포에 맞선 혁명가들의 무장 저항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당의 규율에 묶인 당신들의 재판부는 이 모든 것을 믿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당신들이 꾸미는 재판 희극에 참여하겠는가? 무엇 때문에 내 참여로 우리를 재판하고 처벌할 당신들 당의 권리를 승인하고, 혁명재판소가 마땅히 그러해야 했을 인민의 양심과 명예의 재판인 양 꾸민 당신들의 셰먀카 재판[6]의 사기 모방을 승인하겠는가.
소비에트 법전에는 제국주의 첩자에 대한 테러의 경우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 당신들의 혁명의 뜻에 따르면 그런 테러는 허용되어야 했다. 우리 혁명의 뜻에 따르면, 누구든 네게 달려들어 네 멱살을 잡으면, 네가 양도 진창도 아니라면 지켜라, 네 목숨과 자유를, 동지들의 목숨과 자유를 지켜라.
이 점에서 모든 부르주아 국가와 법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지금 시대의 혁명 재판은, 우리에게 “미르바흐의 머리를 대가로 [좌파 사회혁명당] 중앙위원회를 총살한다”고 선언한 라진스키로 대표되는 당신들의 중앙위원회에 맞선 우리의 혁명적 무장 저항을 허용해야 했을 것이다.
혁명의 정신으로는, 당신들이 이미 주인이 아닌 그 정신으로는, 우리가 피고인석에 앉혀졌을 리가 없다.
좌파 사회혁명당 중앙위원회가 그 행동으로 [독일과의] 전쟁에 끌어들이려 했다는 고발은 근거가 없다. 그 행동은 이런 종류의 일련의 행동 가운데 첫 사례이고, 당이 내건 [좌파 사회혁명당의 과제], 곧 브레스트 조약 파기를 이루기 위한 격렬한 캠페인의 시작이다.
당신들이 나를 당신들의 재판에 세울 어떤 방법을 찾아내더라도, 내가 거기 참여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신들의 체카조차 여기서는 무력할 것이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삶의 맨 밑바닥에 있었고, 온 생각과 마음으로 혁명을 너무 강하게 사랑하기에, 어떤 시련도 죽음도 두렵지 않다. 여기 크렘린에서 당신들의 경비병이 재미 삼아 대여섯 번 나를 “조준”한 일도 그렇다. 오직 살해로만 당신들은 나를 혁명에서, 나와 선동을 떼어 낼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고 우리는 그것의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태어나 살고 일하는 곳 말고 다른 집이 없듯이, 우리에게도 사회주의 혁명 밖에는 자리가 없다. 유대인들에게 침을 뱉고 박해했듯이 당신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한다. 그리고 지침과 박해로 때때로 그들의 존재와 존엄과 권리에 대한 감각이 흐려질 수 있듯이, 7월에 우리 당의 많은 사람이 그랬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유대인들의 영혼 속에서 “인류의 미래”가 준비되었듯이, 우리 당 안에서는 혁명적 사회주의 부흥의 힘이 무르익고 있다.
우리 좌파 사회혁명당-국제주의자 당은 유일하게 일관되고 굳건한 국제주의 정당이다. 농민과 노동자의 당, 근로자가 자유롭게 선출한 소비에트 권력의 당, 모든 나라의 부자와 압제자와 비타협적으로 싸우는 당, 어떤 부르주아지와도 어떤 제국주의와도 타협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당, 부르주아 국가의 낡은 수사와 폭력 기구를 이용해 제 손을 더럽히지 않은 당, 사회주의와 인터내셔널에 대한 밝고 힘찬 믿음의 당에는 거대한 미래가 있다.
당신들도 일시적인 반동도 이 당을 절멸할 수 없다. 이 당과 그 이념은 대중 속에 살아 있고 그들 심리의 깊은 곳에 뿌리박고 있으며, 온 인류의 혁명적 세계 부흥은 반드시 이 당의 이념, 인간 개인의 해방이라는 이념의 기치 아래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M. 스피리도노바
크렘린. 1918년 11월.
주석
- 옮긴이: 헤르만 폰 아이히호른.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독일군 사령관으로, 1918년 7월 30일 키예프에서 좌파 사회혁명당원 보리스 돈스코이에게 암살되었다. ↩
- 저본의 발표자 주: 대괄호 안은 발표자 유리 펠시틴스키의 교정이다. 저본은 이 자리의 「сталкиваешься」(부딪친다)를 「столковываешься」(손잡는다)로 바로잡았다. ↩
- 옮긴이: 저본의 「V/г 푸드」는 1/2의 인쇄 오류로 보고 옮겼다. ↩
- 옮긴이: 1918년 9월 좌파 사회혁명당에서 갈라져 볼셰비키와 협력한 두 정파. 《노동의 의지》는 혁명적 공산주의당의 신문이고, 나로드니키 공산주의자들은 나로드니키 공산당을 가리킨다. ↩
- 저본의 발표자 주: 16호로는 ‘동조자 공산당원’이 등록된다. 유리 펠시틴스키. ↩
- 옮긴이: 셰먀카의 재판(Шемякин суд)은 불공정하고 뇌물이 통하는 재판을 뜻하는 러시아 관용구로, 17세기 풍자 이야기의 재판관 셰먀카에서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