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내각의 첫 법무인민위원: 체카에 맞서 혁명적 합법성을 옹호한 좌파 에스에르
"그렇다면 차라리 솔직히 '사회적 절멸 인민위원부'라고 부르는 게 어떻겠습니까?" — 체카 즉결처형 조항에 항의하며 레닌에게, 1918년 2월
레닌 연정의 초대 법무인민위원을 지낸 좌파 사회혁명당 변호사. 체카에 맞서 혁명적 합법성을 옹호했고 브레스트 조약에 반대해 사임했다. 망명 후 이디시어 문필가·영토주의 운동가로 활동.
경력 연표
- 1906모스크바대학 재학 중 사회혁명당 가입
- 1908체포되어 토볼스크 현으로 2년 유배; 이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법학 석사
- 1915반전 활동으로 체포, 우파 현 유배; 변호사·좌파 에스에르 지도자로 활동
- 1917제헌의회 의원 (우파), 좌파 에스에르 중앙위원, 전러시아 농민대표 소비에트 집행위원
- 1917.12–1918.3RSFSR 법무인민위원: 체카 권한 제한, 정치범 석방, 혁명재판소 지침 제정; 브레스트 조약 반대로 사임
- 1918쿠르스크·타간로크에서 당파 부대 조직; 1919년 체카에 4.5개월 구금
- 1923베를린 망명, 소비에트 시민권 박탈; 출판사 '스키피' 설립, 빈 인터내셔널 참여
- 1933–1957런던에서 자유토지연맹 설립, 킴벌리 계획 추진; 이디시어 잡지 '아픈 슈벨' 편집; 미국에서 생애 마감
관련 역사 사건
권력의 결정체 — 국가 없는 사회에도 도사리는 위험
시테인베르크의 정치사상은 아나키즘에 가까운 좌파 나로드니키적 비전으로서, 노동자 신디케이트·소비에트·협동조합이 직접민주주의와 즉시 소환 가능한 대의제로 연방을 이루는 급진적 분권 사회를 구상했다. 그러나 그를 독창적으로 만든 것은 국가 없는 사회에서조차 권력이 자연스럽게 재생산된다는 통찰이었다. 그가 '권력의 결정체(кристаллы власти)'라 부른 개념은, 의사-환자, 교사-학생, 숙련자-초심자 같은 비공식적 위계가 아무리 자발적으로 형성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권력 피라미드로 굳어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는 자유사회를 작은 결정들이 떠도는 용액에 비유하며, 용액 전체가 결정화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휘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도적 해법으로는 정치 소비에트(방위·질서)와 경제 소비에트(생산·소비를 관장하는 신디케이트)로 권력을 분할해 상호 견제하게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그는 대부분의 아나키스트와 달리, 국가를 내부에서 파괴하는 임무를 띤 정치정당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나키즘'을 고정된 최종 목표가 아니라 혁명적 사회주의를 추동하는 영속적 정신·원리로 이해했기에, 자신의 신디칼리즘적 구상을 '아나키즘'이라는 이름으로 굳히는 것조차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