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니키티치 스미르노프

Иван Никитич Смирнов
소련 러시아 1881–1936 ✕ 처형

좌익 반대파의 시베리아 볼셰비키

1927년 인민위원직에서 물러난 스미르노프는 무일푼으로 노동교환소에 실업 등록을 하러 갔다. 서류의 '마지막 직위'란에 '우편·전신 인민위원'이라고 적자, 창구의 하급 관리가 눈앞에 서 있는 이 백발의 고매한 거한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1899년 RSDLP에 입당한 볼셰비키로, 일곱 차례 체포와 유배를 겪으며 혁명운동에 헌신했다. 내전기 우랄·시베리아의 당 조직가이자 시브레프콤 의장으로 콜차크 백군 분쇄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1920년대에는 좌익 반대파의 주요 지도자가 되었다. 1927년 제명 후에도 1931년부터 비밀 반대파 조직을 이끌며 베를린을 통해 트로츠키와 연락을 재개했고, 1933년 체포되어 1936년 첫 모스크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시베리아의 레닌

내전기 시베리아에서 이반 스미르노프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1919년 8월부터 1921년 9월까지 시베리아혁명위원회(시브레프콤) 의장으로서 그는 우랄에서 바이칼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의 민정·군정·경제를 총괄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시베리아의 레닌'으로 불렸다. 그에 앞서 스미르노프는 동부전선과 제5군 혁명군사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콜차크 백군의 분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20년 2월 6일, 그는 이르쿠츠크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에 전보를 보내 알렉산드르 콜차크와 빅토르 페펠랴예프, 그리고 '징벌 원정에 가담한 모든 자, 방첩 및 보안부 요원 전원'을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이 전보는 '콜차크 처형'의 직접적 근거가 되었다. 동료 볼셰비키였던 라리사 레이스네르는 스미르노프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당원이든 무소속 병사든 그를 처음 본 사람들조차 이반 니키티치에게서 놀라운 청렴함과 품위를 즉시 인정했다. 그는 결코 누구에게도 소리치지 않았고 그저 침착하고 용감하게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가장 두려워했고 가장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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