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노조를 시작한 조선소 노동자
“파업을 준비한 지 7일이 지나고, 마침내 이곳 조선소에서 시작해야 할 날이 왔습니다.”
예지 보로프차크는 1980년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자유노조 운동의 문을 연 젊은 노동자였다. 그는 보그단 펠스키와 루트비크 프론지뉴스키와 함께 8월 14일 파업을 시작했고, 안나 발렌티노비치의 복직과 임금 인상, 1970년 희생자 추모비를 요구했다. 계엄령 뒤에도 저항을 이어 가다 수감과 해고를 겪었으며, 1989년 조선소로 돌아왔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80– 사회운동·조직 · 폴란드 연대노조
경력 연표
- 1977그단스크 조선소 건설기술학교 졸업
- 1979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 해안 자유노조 협력자
- 1980보그단 펠스키, 루트비크 프론지뉴스키와 8월 파업 시작
- 1980–1981연대 조선소 지부 창립위원, 부위원장
- 1981–1982계엄령 저항, 이와바 구금시설 수감
- 1982–1989해고 뒤 고소공포 작업협동조합에서 근무
- 1989–1993조선소 복귀, 직장 연대노조 위원장
- 2000–2023폴란드 하원의원, 그단스크 연대센터 재단 이사
관련 역사 사건
점화자: 1980년 8월 파업의 첫 시간들
보로프차크는 8월 파업을 두고 스스로를 '점화자(자팔니크)'라 불렀다. 자신은 단지 불을 붙였을 뿐이라고, 공적은 조선소 전체와 폴란드 국민의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 8월 10일 안나 발렌티노비치의 해고 소식이 전해진 자리에서, KSS KOR 활동가 보그단 보루세비치가 보로프차크·루드비크 프론지뉴스키·보그단 펠스키·레흐 바웬사와 함께 파업을 준비하기로 했다.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14일 새벽 정문에 나온 사람은 보로프차크와 프론지뉴스키뿐이었지만, 둘은 주저하지 않고 공장에 들어갔다. 보로프차크는 K-5 선각부에서 표식 없는 사물함에 숨겨 둔 유인물을 첫 출근 노동자들에게 나눠 주며 '오늘 조선소 전체가 파업한다'고 알리고, 약 30명을 모아 행진을 시작했다. 사람이 불어나 조립공장 앞에는 수백 명이 모였고, 감독들의 방해에도 문이 열리며 거의 이천 명이 쏟아져 나와 '만세'를 외쳤다. 이때 자신이 파업위원회 명단을 작성해 시작했다고 그는 기억한다. 오전 10시가 넘어 달려온 바웬사가 도착하자 보로프차크는 직감적으로 그를 명단 21번에 적어 넣었고, 이후 그는 2번 정문의 출입 통제를 맡아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브로니스와프 게레메크가 포함된 바르샤바 중재단조차 일단 들여보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