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요한 카우츠키

Karl Johann Kautsky
오스트리아 체코 1854–1938 ○ 자연사

제2인터내셔널의 정통 마르크스주의 수석 이론가,『신시대』창간 편집자, 마르크스『자본론』제4권 편집자

「우리에게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사회적 생산은 비민주적 체제에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수단으로서의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 『프롤레타리아 독재』(1918)

제2인터내셔널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에르푸르트 강령을 집필하고 베른슈타인 수정주의를 논박했으며, 혁명 후 볼셰비키 독재 비판으로 사회민주주의와 레닌주의의 분기점을 만들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베른슈타인 수정주의 논쟁 —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수호

1896년부터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은 『노이에 차이트』 지면과 『사회주의의 전제들』(1899)을 통해 마르크스의 가치론, 변증법, 자본주의 붕괴론을 공격하고 사회주의의 윤리적 기초와 점진적 개혁을 주장했다. 카우츠키는 이에 맞서 가장 체계적인 반론을 제출한 이론가였다. 그의 『베른슈타인과 사회민주당 강령』(1899)은 방법론, 강령, 전술의 세 측면에서 수정주의를 비판했다. 카우츠키는 베른슈타인이 변증법을 기계적 결정론과 혼동했으며, 자본주의 적응설로 계급대립의 심화를 은폐했다고 반박했다. 이 책은 독일어판 초판 2만 부가 단기간에 매진될 정도로 당내에서 광범위하게 읽혔고, 1899년 하노버 당대회에서 베벨의 6시간 보고로 시작된 4일간의 논쟁에서 정통파의 핵심 논거가 되었다. 레닌은 이 책을 "반수정주의 문헌 중 가장 방대한 저작"으로 평가하며 러시아어 번역을 추진했다. 그러나 카우츠키의 정통 수호에는 한계도 있었다. 그는 베른슈타인의 당내 잔류를 묵인했고, 제국주의와 대중파업 문제에서는 이후 룩셈부르크와 레닌으로부터 '중도파적 수동성'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이 논쟁은 제2인터내셔널 시기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정체성을 확립한 결정적 계기였으며, 이후 백년 넘게 사회민주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의 분기선을 이루는 준거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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