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사모일로비치 하잔

Александр Самойлович Хазан
소련 러시아 1906–1955 ✕ 처형

1938년 풀려나 1955년 총살된 수사관

1937년, 하잔은 17세기 그루지야의 민족 영웅 기오르기 사아카제에 대해 '연계를 파악하고 체포하라'는 지령과 함께 수사 파일을 개설했다. 수감자가 그의 이름을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오데사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1933년 OGPU 고등학교에서 퇴교당한 뒤 그루지야 NKVD 비밀정치부(SPO) 수사관이 되어 베리야-고글리제 체제 아래 사건 조작과 고문을 일삼았다. 대숙청기에는 동료까지 체포·처형으로 몰아넣었고, 1938년 체포됐다가 베리야의 지시로 석방돼 전역 처리에 그쳤다. 전쟁기 NKVD 중앙기구에서 복무했으며, 1948년에는 역설적이게도 『소비에트 인간의 도덕적 모습』을 출간했다. 1955년 베리야 몰락 후 체포되어 트빌리시에서 재판받고 총살됐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55년 트빌리시 재판

1953년 12월 라브렌티 베리야가 처형된 후, 소련 검찰은 베리야의 측근들이 그루지야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1955년 1월 10일, KGB 의장 이반 세로프라파바, 루하제, 체레텔리, 사비츠키, 크리먄, 하잔, 파라모노프, 나다라야 등 8명에 대한 기소 의견서를 중앙위원회에 제출했다. 루덴코 검찰총장이 서명한 이 문서는 피고인들이 베리야·고글리제·코불로프의 지시를 받아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타협된' 인물들이라고 규정하고, 반역(58-1조 'b'), 테러(58-8조), 반소비에트 조직 활동(58-11조) 혐의를 적용했다.

재판은 1955년 11월 트빌리시에서 공개리로 열렸다. 이는 스탈린 사후 NKVD 자체의 범죄를 법정에서 다룬 최초의 주요 재판 중 하나로, 피고인들은 대숙청기 자행한 고문·조작·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검찰은 하잔을 비롯한 수사관들이 피의자들을 고무 곤봉·밧줄·쇠막대로 구타하고, 발바닥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때렸으며, 이른바 '뜨거운 방'과 '차가운 방'이라는 고문실을 운영했다는 증언을 제시했다. 교도소 의사와 간수들은 구타로 의식을 잃고 실려 나온 수감자들, 고문 중 사망한 이들, 그리고 표준 진단명 '심장마비'로 위장된 죽음에 대해 증언했다.

재판부는 하잔을 포함한 6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베리야의 경호원 나다라야와 통역관 파라모노프는 징역형을 받았다. 형은 1955년 11월 22일 집행되었다. 그루지야 공산당 기관지 『자랴 보스토카』는 처형 사실을 보도했고, 『뉴욕 타임스』도 이를 보도했다. 한때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가했던 공포의 도구였던 소비에트 국가는 이제 그를 자신의 희생자 명단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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