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트 바실리예비치 스미르노프

Леонид Васильевич Смирн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16–2001 ○ 자연사

22년간 소련 군산복합체를 조율한 VPK 의장, 군수공업의 숨은 설계자

R-12를 살피던 흐루쇼프가 설계자 얀겔에게 "뭘 만든 거요, 소시지인가?" 하고 소리치자, 스미르노프가 나서 조용히 말했다.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이게 바로 쿠바에서 미국을 겨눌 물건입니다."

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로켓공장(유즈마시) 사장 시절 R-12·R-16 대륙간탄도미사일 양산을 지휘하며 전략로켓군의 산업 기반을 구축한 공병 출신 군수 행정가. 1963년부터 22년간 군사산업위원회(VPK) 의장 겸 각료회의 부의장으로 미사일·핵·우주·전자 분야 군산복합체 전체를 조율했고 SALT-I 준비에도 참여했다. 드미트리 우스티노프와 함께 브레즈네프기 소련 군사력의 정점을 관리했으며, 군수 영역을 넘어 면역학 연구소 설립을 정부에 설득한 개방적 기술 관료이기도 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네델린 참사: R-16 폭발과 목격자

1960년 10월 24일, 스미르노프가 사장으로 있던 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제586공장(유즈마시)에서 제작한 최초의 대륙간탄도미사일 R-16이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발사대에서 시험 발사를 준비하던 중 폭발했다. 2단 로켓 엔진이 예정보다 30분 먼저 점화되면서 120톤 이상의 연료가 유출·발화하여 발사대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 사고로 전략로켓군 총사령관 미트로판 네델린 원수를 포함해 최소 74명(일부 자료는 100명 이상)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스미르노프는 현장에 있었고, 참사 직후 콘스탄틴 루드네프 국가위원장 및 수석 설계자 바실리 부드니크와 함께 사고 경위를 재구성하고 조사 자료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소련 당국은 1989년까지 이 참사를 은폐했으며, 공식적으로는 네델린이 항공 사고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R-16은 이후 문제를 수정하여 1961년 2월 발사에 성공했고 소련 전략로켓군의 주력이 되었지만, 스미르노프는 죽을 때까지 현장의 광경을 잊지 못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