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소련 군산복합체를 조율한 VPK 의장, 군수공업의 숨은 설계자
R-12를 살피던 흐루쇼프가 설계자 얀겔에게 "뭘 만든 거요, 소시지인가?" 하고 소리치자, 스미르노프가 나서 조용히 말했다.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이게 바로 쿠바에서 미국을 겨눌 물건입니다."
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로켓공장(유즈마시) 사장 시절 R-12·R-16 대륙간탄도미사일 양산을 지휘하며 전략로켓군의 산업 기반을 구축한 공병 출신 군수 행정가. 1963년부터 22년간 군사산업위원회(VPK) 의장 겸 각료회의 부의장으로 미사일·핵·우주·전자 분야 군산복합체 전체를 조율했고 SALT-I 준비에도 참여했다. 드미트리 우스티노프와 함께 브레즈네프기 소련 군사력의 정점을 관리했으며, 군수 영역을 넘어 면역학 연구소 설립을 정부에 설득한 개방적 기술 관료이기도 했다.
경력 연표
- 1942–1948노보체르카스크 광산장비 공장에서 부생산책임자→화력발전소장→수석 에너지 엔지니어로 승진
- 1949–1951중앙자동화·유압연구소(TSNII-173) 소장, 무기성 산하
- 1951–1952소련 무기성 로켓·우주기술 총괄국장
- 1952–1957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기계제작공장(유즈마시) 사장, R-1·R-12·R-16 미사일 양산 지휘
- 1957–1961국방기술 국가위원회(GKOT) 총괄국장
- 1961–1963소련 각료회의 국방기술 국가위원회 의장 (장관급)
- 1963–1985소련 각료회의 부의장 겸 군사산업위원회(VPK) 의장, 군수 전 분야 총괄
관련 역사 사건
네델린 참사: R-16 폭발과 목격자
1960년 10월 24일, 스미르노프가 사장으로 있던 드네프로페트로우스크 제586공장(유즈마시)에서 제작한 최초의 대륙간탄도미사일 R-16이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발사대에서 시험 발사를 준비하던 중 폭발했다. 2단 로켓 엔진이 예정보다 30분 먼저 점화되면서 120톤 이상의 연료가 유출·발화하여 발사대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 사고로 전략로켓군 총사령관 미트로판 네델린 원수를 포함해 최소 74명(일부 자료는 100명 이상)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스미르노프는 현장에 있었고, 참사 직후 콘스탄틴 루드네프 국가위원장 및 수석 설계자 바실리 부드니크와 함께 사고 경위를 재구성하고 조사 자료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소련 당국은 1989년까지 이 참사를 은폐했으며, 공식적으로는 네델린이 항공 사고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R-16은 이후 문제를 수정하여 1961년 2월 발사에 성공했고 소련 전략로켓군의 주력이 되었지만, 스미르노프는 죽을 때까지 현장의 광경을 잊지 못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