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시대의 수사반장, 소비에트 탐정소설의 개척자
카밀 이크라모프의 회고에 따르면, 셰이닌은 흐루쇼프 시기에도 비신스키가 살던 집을 차로 지나칠 때마다 진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소련 검찰청 수사국장(1935, 1939~1949)으로서 키로프 암살, 지노비예프·카메네프, 부하린·리코프·야고다 사건 등 스탈린 시대 주요 정치 수사를 지휘한 2급 국가법률고문이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로만 루덴코 수석검사의 보좌관으로 소련 검찰단에 참여했다. 동시에 《수사관의 수기》(1938)로 소비에트 탐정소설 장르를 개척했고, 영화 《엘베 강의 만남》(1949) 시나리오로 스탈린상을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1936년과 1951년 두 차례 체포·투옥되었으나 모두 생환했으며, 해빙기에는 《옥탸브리》 부편집장과 모스필름 편집장을 지내다 1967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문학·예술
- 1929– 사회운동·조직 · 소련공산당·볼셰비키
경력 연표
- 1923–1927소련 검찰청 근무, 모스크바
- 1927–1931레닌그라드 지방법원 수사관
- 1931–1935소련 검찰청 특별중요사건 수사관
- 1935, 1939–1949소련 검찰청 수사국장, 2급 국가법률고문
- 1945–1946뉘른베르크 재판 소련 수석검사 보좌관
- 1953–1960《옥탸브리》 편집위원·부편집장
- 1960–1964모스필름 편집장, 소련 문화부 예술위원회 위원
관련 역사 사건
초기 생애와 1933년 콧라스 사건
레프 셰이닌은 1906년 브루사노프카 마을(현 스몰렌스크주 벨리시구)에서 태어났고, 가족은 1908년 토로페츠로 이주했다. 1919년 콤소몰에 가입해 토로페츠 지역 콤소몰 위원회에서 일했고, 지역 신문 《스베토치》에서 처음 기자를 시작했다. 1921년 모스크바로 가 브류소프 문학예술고등연구소에서 공부하며 작가를 꿈꾸었으나, 1923년 콤소몰 분배로 소련 검찰청에 배치되면서 길이 갈렸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학을 병행했고, 1927년 레닌그라드로 옮겨 지방법원 수사관으로 일하다 1929년 당에 입당했다. 1931년 모스크바로 돌아와 소련 검찰청 특별중요사건 수사관이 되었고, 이 무렵 《수사관의 수기》의 여러 이야기와 1931년 범죄수사학 교과서가 나왔다. 초기 경력에서 가장 널리 기록된 사건은 1933년 콧라스 사건이다. 5월부터 9월까지 콧라스에서 야렌스크로 이어지는 특별이주민 호송 구간에서 일어난 대규모 사망을 수사한 것이다. 인도된 2,680명 가운데 야렌스크까지 도달한 사람은 880명에 불과했고, 정확한 사망자 수는 추정조차 불가능하다고 셰이닌 자신이 적었다. 이 사건은 수사관과 보안기관을 함께 처벌하는 이례적 결과로 이어져,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스캔들을 일으키고 경찰과 OGPU 직원을 포함한 약 20명이 법정에 섰다. 정치적 대사건에 앞서 셰이닌이 실제로 어떤 종류의 사건을 맡았는지 보여주는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