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야 알렉산드로브나 포티예바

Лидия Александровна Фотиева
소련 러시아 1881–1975 ○ 자연사

레닌의 개인비서, 마지막 정치투쟁의 전달자

1923년 3월 5일, 레닌은 포티예바에게 스탈린과의 관계 단절 편지를 받아쓰게 한 뒤 카메네프에게 '그루지야 문제에서 트로츠키 편에 섰다'고 전하라고 지시했다. 글랏세르는 트로츠키에게 말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가 스탈린을 향한 폭탄을 준비 중입니다."

레닌의 개인비서(1918~1924)로, 1922년 「당대회에 보내는 편지」(유언)를 구술받아 30년간 보관, 1956년 공개로 이끌었다. 1923년 병상의 레닌을 대신해 트로츠키와의 연락을 중개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유언장: 30년의 침묵과 공개

1922년 12월부터 1923년 1월까지, 뇌졸중으로 요양 중이던 레닌은 포티예바에게 「당대회에 보내는 편지」를 구술했다. 이 문서에서 레닌은 스탈린이 총서기직에 '무한한 권력을 집중시켰다'고 비판하고 그를 해임할 것을 권고했으며, 트로츠키·지노비예프·카메네프·부하린·퍄타코프 등 지도부 전원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1923년 3월 세 번째 뇌졸중으로 레닌이 언어 능력을 상실하자, 크룹스카야는 레닌의 회복을 기다리며 사본 4부를 보관했고 레닌의 여동생 마리야 울리야노바도 1부를 소지했다.

1924년 1월 레닌이 사망한 후 크룹스카야는 중앙위원회에 문서를 넘기며 제13차 당대회 대표단에게 공개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탈린·지노비예프·카메네프 3두파는 지역별 대표단에게 비공개 낭독만 허용하고 필기를 금지했으며 전체회의에서는 언급조차 막았다. 이후 스탈린이 권력을 공고히 하면서 이 문서의 존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반소비에트 선동으로 간주되어 처벌 대상이 되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상황은 급변했다. 1956년 2월 흐루쇼프는 제20차 당대회 '비밀연설'에서 레닌의 유언을 인용하며 스탈린 격하의 핵심 근거로 삼았고, 같은 해 7월 소련 공산당 기관지 『콤무니스트』에 전문이 실렸다. 포티예바 자신도 1956년 회고록 『레닌의 생애에서』를 출간하며 30년 넘게 지켜온 레닌의 마지막 정치적 유산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해 그녀는 7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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