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1940

혁명 세대 266명

10월 혁명을 만들고 초기 소비에트 국가를 세운 세대, 다수는 훗날 그 혁명의 이름으로 스러졌다.

아카키 코바히제

Акакий Кабахидзе
비소련 혁명가 소련 그루지야 생몰년 미상

강압적 통합에 맞선 그루지야 공산주의자

1922년 오르조니키제의 집에서 그는 세르고를 ‘스탈린의 당나귀’라고 불렀고, 곧 뺨을 맞았다.

아카키 코바히제는 1920년대 초 그루지야 공산당 지도부에서 활동한 그루지야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모스크바가 추진한 자캅카스 통합을 둘러싼 논쟁에서 지역 당 간부들의 자율성과 민족적 권리를 옹호하는 편에 섰다. 1922년 세르고 오르조니키제에게 ‘스탈린의 당나귀’라고 말한 뒤 뺨을 맞았고, 이 사건은 레닌이 그루지야 문제와 당내 강압을 비판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20년대 초그루지야 공산당 지도부
  • 1922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 1922그루지야 문제 논쟁의 지역 당 간부
  • 1922년 10월 20일오르조니키제와 충돌한 당 간부
  • 1922년 12월레닌의 민족문제 비판에 언급된 인물

파벨 드미트리예비치 바실리예프

Павел Дмитриевич Васильев
사회주의권 지도자 소련 러시아 1885–? ○ 행적과 최후 미상

혁명의 거점에서 권력의 역풍을 맞은 지방 소비에트 간부

1921년 3월 2일, 크론시타트 반란 세력은 그를 체포해 가두었다.

파벨 바실리예프는 러시아 내전 말기의 크론시타트 소비에트를 이끈 볼셰비키 지방 간부였다. 그는 전쟁공산주의와 당의 통치에 반발한 수병·노동자들의 요구가 공개 충돌로 번지는 현장에서 소비에트 권력을 대표했다. 1921년 3월 반란 세력은 그를 니콜라이 쿠즈민과 함께 체포했고, 이 사건은 혁명적 소비에트 민주주의와 당 독점 권력 사이의 긴장을 드러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9–1921크론시타트 소비에트 의장
  • 1919–1921크론시타트 소비에트 집행위원회 의장
  • 1921.3.1앵커 광장 집회에서 소비에트 권력 대표
  • 1921.3.2대표자 회의에서 발언, 반란 세력에 체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