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1949

구체제와 국민당 9명

청 왕조 말기의 관료와 군벌, 중화민국을 세우고 다스린 국민당의 정치가와 장군들 — 공산당이 맞서 싸운 상대.

위안스카이

袁世凯
반혁명 세력 중국 중국 1859–1916 ○ 병사

신해혁명의 성과를 가로채 황제가 되려 한 북양군벌의 총수

청 말 북양신군을 키운 군인·관료였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청 조정과 혁명파 사이에서 양쪽을 압박해 1912년 청 황제의 퇴위와 자신의 중화민국 임시대총통 취임을 함께 얻어냈다. 이후 국회를 무력화하고 국민당을 해산했으며, 1915년 말 스스로 황제를 칭했다가 각 성의 반발로 이듬해 제정을 취소하고 곧 병사했다. 그의 죽음 뒤 북양군은 분열해 군벌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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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1–1907직례총독 겸 북양대신
  • 1912–1916중화민국 대총통
  • 1915.12–1916.03「중화제국」 황제 자칭

쭤린 위팅 장

张作霖
외국 정치가 중국 중국인 1875–1928 ✕ 암살

만주를 지배한 군벌 정치가

1928년 6월 4일, 베이징에서 돌아오던 그의 열차가 황고둔에서 폭발했다.

장쭤린은 청 말의 군인에서 출발해 중국 군벌시대 동북 지역의 독자적 권력자로 성장한 중국 정치가였다. 그는 봉천군벌을 이끌며 만주를 사실상 자치적으로 통치했고, 군사력과 산업·재정 정비를 결합해 자신의 기반을 강화했다. 일본의 지원과 만주 이권을 둘러싼 협력은 그의 권력을 키웠지만, 동시에 일본군과 충돌할 여지도 남겼다. 국민당의 북벌로 베이징에서 철수하던 중 관동군 장교들이 설치한 폭탄에 중상을 입고 사망했으며, 이 황고둔 사건은 일본군의 독단적 만주 개입이 심화되는 전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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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4–1895청군 기병으로 청일전쟁 참전
  • 1905봉천성 정규군 연대 지휘관
  • 1916봉천성 군무독판
  • 1918동삼성 순열사, 만주 군정 장악
  • 1924베이징 장악, 중화민국 군사독재자
  • 1927–1928중화민국 육해군 대원수
  • 1928황고둔 사건으로 관동군에 암살됨

왕징웨이

汪精卫
반혁명 세력 중국 중국 1883–1944 ○ 병사 · 나고야

쑨원의 후계자에서 일본 점령하 난징 정권의 수반이 된 국민당 좌파

청 섭정왕 암살 미수로 이름을 얻은 동맹회 혁명가로, 쑨원의 유촉을 받아쓴 측근이었다. 1927년 우한 국민정부를 이끌며 한때 공산당과의 합작을 유지했으나 그해 7월 분공(分共)으로 돌아섰다. 이후 장제스와 경쟁·협력을 반복하다 1938년 충칭을 떠나 일본과의 「평화」를 주장했고, 1940년 일본이 세운 난징 국민정부의 주석이 되었다. 1944년 나고야에서 병사했으며 중국에서는 대표적 한간(漢奸)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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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7우한 국민정부 주석
  • 1932–1935국민정부 행정원장
  • 1940–1944난징 국민정부(일본 후원) 주석

장제스

蔣介石
외국 정치가 중국 중국계 1887–1975 ○ 자연사

항일전쟁과 반공 통치를 함께 이끈 국민당 지도자

1937년 소련과 조약을 맺은 뒤에도 그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일본과 공산당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장제스는 중국 국민당의 군사·정치 지도자로서 1920년대 북벌을 이끌어 난립한 중국을 국민정부 아래 통합했다. 그는 공산당과의 내전을 우선시했지만, 1936년 서안사변 뒤 일본에 맞선 제2차 국공합작을 받아들였고 1937년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바탕으로 무기와 항공기 지원을 확보했다. 항일전쟁에서 중국의 저항을 지휘한 뒤 국공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으로 정부를 옮겼으며, 그곳에서 장기간의 계엄과 권위주의 통치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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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중국동맹회 가입
  • 1924–1927황푸군관학교 교장
  • 1926–1928국민혁명군 총사령관, 북벌 지휘
  • 1928–1931국민정부 주석, 행정원장
  • 1937–1945중국 전구 항일전쟁 최고지휘관
  • 1948–1975중화민국 총통
  • 1950–1975대만에서 국민정부 통치

후스

胡适
이론가 중국 중국 1891–1962 ○ 심장마비

백화문 운동을 이끈 신문화운동의 자유주의자, 뒤에 국민정부의 외교관

미국에서 존 듀이에게 배운 철학자로 1917년 『신청년』에 문학개량을 제안해 백화문 운동을 열었다. 5·4 시기 「문제를 많이 연구하고 주의(主義)를 적게 말하라」며 마르크스주의로 기운 리다자오·천두슈와 갈라섰다. 베이징대 교수와 총장을 지냈고 항일전쟁기 주미대사로 일했다. 1949년 뒤 미국과 대만에서 활동했으며 대륙에서는 1950년대 그의 사상을 겨냥한 대규모 비판운동이 벌어졌다. 타이베이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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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7–1926베이징대학 교수
  • 1938–1942주미 중화민국 대사
  • 1946–1948베이징대학 총장

쑹쯔원

宋子文
외국 정치가 중국 중국인 1894–1971 ○ 자연사

재정과 외교를 잇댄 국민정부 실무가

1945년 8월 7일, 쑹쯔원은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중소 협상을 재개했다.

쑹쯔원은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재정가이자 외교관으로, 국가 재정과 대외 원조를 연결해 전쟁기 국민당 국가의 운영을 뒷받침했다. 그는 재정 통합과 관세 자주권을 추진했지만, 중앙집권적 전쟁 재정과 가족·금융 네트워크의 결합이라는 긴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1945년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중소조약을 협상하며 만주 철도와 뤼순의 처리, 외몽골의 지위를 둘러싼 중국의 양보를 조율했고, 그 합의는 일본 패전 뒤 동북아 질서를 규정했다. 전후 행정원장으로서 인플레이션과 내전 재정 위기를 수습하지 못한 뒤 미국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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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5하버드대학교 경제학 졸업
  • 1923–1924광저우 중앙은행 설립 실무, 쑨원의 영어 비서·세무국장
  • 1925–1927광둥 혁명정부 재정부장
  • 1928–1933국민정부 재정부장, 중앙은행 총재
  • 1940–1942워싱턴 주재 장제스 특사, 대미 전시 원조 교섭
  • 1942–1945중화민국 외교부장
  • 1945–1947행정원장, 1945년 모스크바 중소조약 협상 대표
  • 1947–1949광둥성 정부 주석·광저우 행영 주임

장팅푸

蒋廷黻
외국 정치가 중화민국 중국 (한족) 1895–1965 ○ 자연사

소련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게 만든, 안보리 의장석의 국민당 외교관

1950년 1월, 의장석에 앉은 장팅푸를 향해 말리크가 '이것은 회의가 아니라 회의의 패러디'라고 외치고 퇴장했다.

청나라 외교문서를 실증적으로 연구한 역사가에서 중화민국 외교관으로 전환한 인물이다. 컬럼비아대에서 박사를 마치고 난카이·칭화대에서 중국 근대외교사 연구를 개척했으며, 1935년 학계를 떠나 국민정부에 합류해 주소대사와 상임 유엔대표를 지냈다. 1950년 1월 안보리 의장으로 회의를 주재할 때 소련 대표 말리크가 중공이 아닌 국민당 대표와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며 퇴장했고, 이 공백은 6월 한국전쟁 유엔군 결의가 거부권 없이 통과되는 결정적 조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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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3–1929난카이대학 역사학과 교수·주임
  • 1929–1935칭화대학 역사학과 주임·문학원장
  • 1935–1936국민정부 행정원 정무처장
  • 1936–1938주소 중화민국 대사
  • 1944–1946UNRRA 중국 대표·행정원 선후구제총서 서장
  • 1947–1962중화민국 상임 유엔대표·안보리 대표
  • 1961–1965주미 중화민국 대사 (유엔대표 겸임)

장쉐량

张学良
군 지휘관 중국 중국 1901–2001 ↓ 체포 1936 · 자연사

시안에서 장제스를 감금해 제2차 국공합작의 길을 연 「젊은 원수」

만주 군벌 장쭤린의 아들로 1928년 아버지가 일본군에 폭살되자 동북을 물려받았고, 그해 말 난징 국민정부에 귀순했다. 1931년 만주사변으로 근거지를 잃은 뒤 공산당 토벌에 투입되었으나, 1936년 12월 시안에서 양후청과 함께 장제스를 감금해 내전 중지와 항일을 요구했다. 사건은 저우언라이의 중재로 풀렸지만 그는 장제스와 함께 난징으로 돌아가 이후 반세기 넘게 연금되었다. 1990년대 풀려나 하와이에서 100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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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8–1931동북 변방군 사령관
  • 1936.12시안 사변 주도

푸이

溥仪
반혁명 세력 중국 중국 1906–1967 ↓ 퇴위 1912 · 자연사

청의 마지막 황제이자 만주국의 꼭두각시 황제, 인민공화국의 「개조된」 시민

세 살에 청의 선통제로 즉위해 1912년 신해혁명으로 퇴위했다. 자금성에 머물다 1924년 쫓겨나 톈진의 일본 조계로 갔고, 1932년 일본이 세운 만주국의 집정, 1934년부터 황제가 되었다. 1945년 소련군에 붙잡혀 억류된 뒤 1950년 중국에 송환되어 푸순 전범관리소에서 개조 교육을 받았고 1959년 특사로 풀려났다. 베이징 식물원 정원사와 정협 위원으로 살다 문화대혁명 초기인 1967년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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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1912청 선통제
  • 1934–1945만주국 황제
  • 1950–1959푸순 전범관리소 수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