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모범 어머니로 내세워졌고 총통 벙커에서 여섯 자녀를 죽인 뒤 자살한 요제프 괴벨스의 아내
총통 벙커에서 트라우들 융게에게 털어놓았다. “아이들이 치욕과 조롱 속에 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 전쟁이 끝나면 독일에서 내 아이들에게는 아무 기회도 없다.”
베를린에서 태어나 유대인 상인인 양아버지 리하르트 프리들렌더 밑에서 자랐다. 1921년 산업가 귄터 크반트와 결혼해 아들 하랄트를 낳고 1929년 이혼했다. 1930년 9월 나치당에 들어가 지역 여성 조직을 이끌었고, 요제프 괴벨스의 개인 자료를 맡다가 1931년 12월 히틀러를 증인으로 그와 결혼했다. 히틀러의 가까운 측근이 되어 비공식적으로 정권을 대표했고 선전에서는 제3제국의 모범 어머니로 그려졌다. 1945년 4월 말 여섯 자녀와 총통 벙커로 들어갔고, 5월 1일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청산가리로 죽인 뒤 총리 관저 정원에서 자살했다.
다른 이름: 요하나 마리아 마그달레나 괴벨스 · 마그다 크반트 · 마그다 리첼 · 마그다 프리들렌더 · 마그다 베렌트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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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45
이념·선전
- 정권의 비공식 대표1931–1945
경력 연표
- 1921.01.04–1929귄터 크반트와 결혼, 이혼
- 1930.09.01나치당 입당, 지역 나치 여성 조직 지도자
- 1931.12.19요제프 괴벨스와 결혼
- 1945.05.01총통 벙커에서 자녀를 죽이고 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