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사랑』과 영국 첫 산아 제한 진료소로 피임을 대중화한 고식물학자
1918년 성 지침서 『결혼한 사랑』으로 피임을 공론에 올렸고, 1921년 런던에 영국 첫 산아 제한 진료소를 열었다. 동시에 「부적격자」의 강제 불임을 주장했다.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영국의 고식물학자·저술가·운동가. 석탄 분류와 식물 화석 연구로 이름을 얻었고 맨체스터 대학 첫 여성 교수진이 되었다. 1918년 성 지침서 『결혼한 사랑』으로 피임을 공론의 장에 올렸고, 1921년 남편 험프리 버던 로와 런던에 영국 첫 산아 제한 진료소를 열었다. 우생학을 열렬히 지지해 「부적격자」의 강제 불임을 주장했고, 공개적으로는 낙태에 반대했다. 가톨릭과 오래 다투었고 1958년 유방암으로 숨졌다.
다른 이름: 마리 샬럿 카마이클 스톱스
주요 활동과 소속
관련 역사 사건
『결혼한 사랑』, 진료소, 우생학
그는 런던 대학에서 식물학과 지질학을 공부해 2년 만에 학위를 받았고, 영국 최연소로 이학 박사가 되었다. 1911년 유전학자 레지널드 러글스 게이츠와 결혼했으나, 1913년 혼인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혼을 청구했다. 이 무렵 결혼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룬 책을 쓰기 시작했고, 1913년 7월 페이비언 협회에서 피임 강연을 마친 마거릿 생어에게 피임 장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출판사들이 거절하던 원고는 맬서스 연맹 서기의 소개로 만난 험프리 버던 로의 후원으로 1918년 3월 26일 『결혼한 사랑』으로 나와 첫해에만 다섯 판을 찍었고, 그는 곧 로와 결혼했다. 이어 낸 피임 지침서 『현명한 부모 노릇』도 열 판을 찍었다.
1920년 말 대학 강사직을 그만두고 「건설적 산아 제한과 인종 진보 협회」를 세웠고, 1921년 3월 17일 런던 홀러웨이에 「어머니들의 진료소」를 열었다. 조산사가 운영하는 이 무료 진료소는 기혼 여성 모두에게 피임법을 알려 주고 자신이 이름 붙인 「프로레이스」 자궁경부 캡을 나눠 주었으며, 1925년 런던 중심가로 옮겨 각지에 진료소망을 넓혔다. 노먼 헤어와는 《랜싯》 지면에서 경쟁했고, 가톨릭 의사 핼리데이 서덜랜드와의 명예훼손 소송은 1924년 상원에서 그의 패소로 끝났다.
그는 협회의 목적을 「검소하고 현명하고 건전한」 계층의 출생률이 떨어지는 반면 「C.3 등급」과 「반쯤 정신박약인」 계층이 무분별하게 번식하는 위험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밝혔다. 1912년 우생학 교육 협회에 들어갔고, 1918년과 1920년 부모가 될 자격이 없다고 본 사람들의 강제 불임을 주장했다. 공개적으로는 낙태에 반대해 낙태 시술자들을 경찰과 법정에 고발했지만, 실제 행동은 공식 발언과 어긋났다. 1939년 8월 히틀러에게 자신의 연애 시집을 보내 독일 산아 제한 진료소에서 나눠 주기를 바랐다. 1958년 도킹에서 유방암으로 숨지며 진료소를 우생학회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