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로 남성 간 사랑을 공개적으로 쓴 은시대 시인
러시아 은시대의 시인·소설가·작곡가. 『날개』(1906)에서 남성 간 사랑을 공개적으로 다루었고, 『그물』과 「아름다운 명료성에 관하여」로 근대 러시아 시에 영향을 주었다. 1926년 히르슈펠트와 만났으며, 1933년 OGPU의 동성애자 수사에서 이름이 나왔으나 체포되지는 않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6『날개』와 시적 명료성
- 1926히르슈펠트와의 교류와 1933년 수사
관련 역사 사건
『날개』와 시적 명료성
음악을 공부하고 작곡가로 출발한 쿠즈민은 1906년 『알렉산드리아의 노래』와 소설 『날개』로 주목받았다. 『날개』는 남성 간 사랑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으로 논쟁을 일으켰다. 1908년 첫 시집 『그물』을 냈고, 1910년 《아폴론》의 「아름다운 명료성에 관하여」는 시적 구성과 명료성을 강조하여 아크메이즘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1929년 『송어가 얼음을 깨다』는 그의 마지막 생전 시집이 되었다.
그의 성적 개방성을 특정한 진보 정당의 정치 노선과 곧바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전기 사전은 그가 1905년 우익 군주주의 단체 러시아 인민연맹에 가입했다고 기록한다. 혁명 뒤에는 출판 활동이 위축되어 번역과 평론으로 생계를 이어 갔다.
히르슈펠트와의 교류와 1933년 수사
롤두기나에 따르면 쿠즈민의 미간행 일기에는 1926년 소련을 찾은 마그누스 히르슈펠트와 두 차례 만난 기록이 있다. 이는 독일의 성개혁 운동과 소련 동성애자들의 접촉을 보여 주는 사료다.
1933년 레닌그라드 동성애자 사건의 심문 기록에는 쿠즈민과 리우리크 이브네프의 이름이 나왔지만, 둘 다 체포되지 않았다. 쿠즈민은 1936년 사망했다. 롤두기나는 이 사례를 비밀경찰이 파악한 모든 동성애자를 일률적으로 체포한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근거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