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리프시츠

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Лифшиц
소련 러시아 1905–1983 ○ 자연사

절대적 진리와 미를 옹호한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건설자

「우리 시대의 유행어와 달리 절대적 아름다움은 절대적 진리만큼이나 존재한다」 — 1927년 브후테인 학보

멜리토폴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 브후테마스에서 아방가르드와 결별한 후 마르크스 미학의 체계적 재구성에 평생을 바쳤다. 1930년대 루카치와 함께 '저속사회학'을 논박하며 변증법적 유물론 예술론을 정립했고, 『마르크스·엥겔스 예술론』과 『레닌 예술론』이라는 기념비적 선집을 편찬했다. 전후에는 반세계주의 캠페인의 표적이 되었고, 1960년대 모더니즘 비판으로 논쟁의 중심에 섰으며, 말년에는 '존재인식론' 개념으로 독자적 철학을 전개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루카치와 『리테라투르니 크리틱』 서클: 저속사회학 논박

1930년 리프시츠는 IMEL에서 죄르지 루카치를 만났다. 두 사람은 즉시 지적 동지가 되었고, 이후 40년간 이어진 이 우정은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궤적을 바꾸었다. 리프시츠는 루카치를 마르크스주의 미학과 레닌의 반영론으로 이끌었고, 루카치의 1930년대 저작들, 특히 『젊은 헤겔』(1948, 리프시츠에게 헌정됨)에는 리프시츠의 사상이 깊이 새겨졌다. 하지만 리프시츠는 루카치가 결코 자신의 결론을 완전히 수용하지 않았다고 보았고, 루카치의 후기 '주관주의적' 선회를 신칸트주의의 잔재라 비판했다.

리프시츠를 중심으로 비평가 V. 그리프, E. 우시예비치, I. 사츠 등이 모여 '테체니예(흐름)'라 불린 서클을 형성했고,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도 여기에 가까웠다. 그들의 기관지는 『리테라투르니 크리틱』(1933–1940)이었다. 이 그룹의 핵심 과제는 1920년대 소비에트 문예 이론을 지배했던 '저속사회학'의 논박이었다. 저속사회학은 예술을 계급 심리의 단순 반영으로 환원하고 고전 유산을 봉건-부르주아적 산물로 폐기했다. 리프시츠는 레닌의 「톨스토이는 러시아 혁명의 거울」을 독해하며,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가 결정론적 환원이 아니라 의식이 세계의 객관적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변증법적 통찰임을 논증했다. 그의 결정적 논문 「레닌주의와 예술비평」(1936)은 반영 이론을 단순한 모사가 아니라 실재가 인간 의식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반영하는 과정으로 재정식화했다. 이 논문은 광범위한 논쟁을 촉발했고, 1936년 8월 『프라우다』 사설은 사실상 리프시츠의 입장을 수용하여 '리얼리즘'과 '인민성'을 공식 미학 어휘로 복원시켰다.

이 승리와 함께 리프시츠는 두 권의 기념비적 선집을 편찬했다. 『마르크스·엥겔스 예술론』(1937)과 『레닌 예술론』(1938)이다. 이 선집들은 소비에트 독자들에게 마르크스의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와 초기 저작들을 처음으로 소개했고,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결정적 참고서가 되었다. 리프시츠는 스스로 이 선집을 자신의 독창적 저작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1939년 가을, 정치적 비난의 물결이 '리테라투르니 크리틱' 그룹을 덮쳤다. 경쟁 문학 관료들은 그들을 '반당 집단'이라 고발했고, 1940년 중앙위원회의 특별 결정으로 잡지는 폐간되었다. 루카치는 체포 구금되었고, 리프시츠는 사실상의 출판 금지 상태에 놓였다.

일리옌코프 논쟁과 존재인식론: '이상적인 것'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리프시츠 말년의 가장 심오한 철학적 개입은 에발트 일리옌코프와의 '이상적인 것(идеальное)' 논쟁이었다. 일리옌코프는 소비에트 철학의 가장 독창적인 전후 사상가로, 리프시츠와 루카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리프시츠가 '가장 가까웠던' 인물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갈라섰다. 일리옌코프에게 이상적인 것은 오직 인간의 사회적 활동과 그 산물(도구, 언어, 예술 작품 속에 구현된 집단적 의식) 속에만 존재한다. '자연 그 자체 속에는,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포함하여, 이상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리옌코프의 정식은 리프시츠에게서 격렬한 반박을 불러일으켰다.

리프시츠는 이상적인 것이 인간 의식의 반대편, 즉 객관적 세계 자체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적인 것은 모든 것 속에 있다. 물질적 존재 속에도, 의식 속에도, 사회 속에도, 자연 속에도. 그렇지 않으면 어디에도 없다.' 그의 '존재인식론(онтогносеология)'은 존재론과 인식론의 인위적 분리를 깨뜨리고, 세계가 인간 의식 속에서 스스로를 반영할 수 있는 능력(레닌의 반영론을 급진화한 개념)을 세계 자체의 객관적 속성으로 정식화하려는 시도였다. 이 관점에서 관념론의 진짜 오류는 이상적인 것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이상적 가능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데 있다. 리프시츠는 이렇게 썼다: '오늘날 오직 유물론만이 정신의 이상적 생명과 보편적 진리의 존재를 여전히 옹호할 수 있다.'

이 논쟁은 소비에트 철학의 가장 깊은 분수령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일리옌코프의 지지자들은 리프시츠의 존재인식론을 전통적인 '디아마트'의 도식주의로의 회귀로 보는 반면, 리프시츠의 옹호자들은 그가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진정한 변증법적 유물론을 추구했다고 주장한다. 1984년 유고로 출판된 『에발트 일리옌코프와의 대화』는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의 내적 긴장에 대한 가장 훌륭한 증언 중 하나이며,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텍스트는 포스트소비에트 철학계에서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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