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이바노비치 크릴로프

Николай Иванович Крылов
소련 러시아 1903–1972 ○ 자연사

스탈린그라드에서 전략로켓군까지, 핵 3축의 세 번째 기둥을 세운 원수

1966년, 드골의 노보시비르스크 미사일 사단 시찰 중 브레즈네프의 신호에 지하 사일로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불쑥 솟아올랐다. "파리도 겨냥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브레즈네프는 연기나는 발사대를 가리켰다. "걱정 마십시오. 이건 아닙니다."

16세에 붉은군대에 자원입대한 크릴로프는 내전부터 만주 작전까지 소련의 모든 주요 분쟁을 관통한 군인이었다. 스탈린그라드에서는 추이코프의 제62군 참모장으로서 시가전을 지휘했고, 바그라티온 작전과 만주 공세에서 제5군을 이끌어 두 차례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았다. 1962년 원수로 진급한 뒤 전략로켓군 총사령관에 올라, 쿠바 위기 이후 열세였던 소련 핵전력을 지하 사일로 기반의 전투태세를 갖춘 군종으로 탈바꿈시켰다. 9년간의 재임기는 전략로켓군의 창설기이자 가장 집중적인 성장기로서, 소련 핵 3축의 한 기둥을 완성한 시기였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략로켓군의 건설자

1963년 3월 크릴로프가 전략로켓군 총사령관에 취임했을 때, 창설 4년밖에 되지 않은 이 군종은 이미 네 번째 사령관을 맞고 있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1962년)는 소련 핵전력의 열세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965년 로버트 맥나마라 미국 국방장관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은 650기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반면 소련은 200기에 불과했다.

크릴로프는 미하일 얀겔과 긴밀히 협력하여 지하 사일로 발사대(ШПУ) 건설을 전략의 중심에 놓았다. 얀겔의 설계국은 R-12를 훨씬 능가하는 사거리의 신형 미사일(R-36 등)을 개발했고, 크릴로프는 이를 수용할 경화 사일로 네트워크를 전국에 구축했다. 이 노선은 니키타 흐루쇼프가 선호하던 지상 발사 위주의 구식 R-12 체계에서 결정적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었다.

크릴로프는 직접 모든 미사일 부대와 사단을 시찰했으며, 장교 숙소와 군인 가족을 위한 주택, 학교, 병원, 문화시설까지 점검했다. 그의 지휘 아래 거의 모든 군사 도시가 그가 승인한 설계도에 따라 건설되었다. 1965년에는 전략로켓군 전투규정이 제정되어 군종의 작전 교리가 문서화되었다. 9년간의 재임 기간 동안 전략로켓군은 소련 핵 3축 체계에서 지상 기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담당하는 견고한 기둥으로 자리잡았으며, 크릴로프는 실질적인 창설자로 평가된다.

크릴로프는 매년 장교 임관식 후 신임 장교들을 본부로 초청해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그 해결을 직접 챙겼다. 한 부대 점검 후 그가 남긴 메모는 그의 성격을 드러낸다: "부대 전투태세 점검 후 참모장이 당직 근무표를 보여주었다. 모든 것이 알록달록하고 아름다웠다. 병영 내무실을 확인하고 나니 그 화려한 도표 뒤가 암울해졌다." 전략로켓군 내 크릴로프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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