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파블로비치 푸호프

Николай Павлович Пух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895–1958 ○ 자연사

세미나리 출신 교관에서 13군을 유럽 중부까지 이끈 육군대장

"겉으로는 부드럽고 조용했으나, 복잡한 정세 속에서 결단력을 발휘하고 확고한 손으로 군을 통제할 수 있는 사령관이었다." — 이반 코네프 원수

제1차 세계대전에 하사관으로 참전하고 내전에서는 여단·사단 참모장을 지낸 니콜라이 푸호프는, 전간기 대부분을 군사학교 교관으로 보내 현장 지휘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로 독소전을 맞았다. 1942년 1월 13군 사령관에 임명된 그는 쿠르스크 북측면에서 모델의 9군을 6일간 저지하고, 드네프르 강 도하 작전에서 세 개 전선군 중 가장 먼저 강을 건너 체르니고프를 해방하여 영웅칭호를 받았다. 이후 비스와-오데르, 베를린, 프라하 작전까지 13군을 이끌며 중부 유럽을 관통했고, 13군은 최고사령관 명령에 26회 거명되었다. 전후에는 오데사·북캅카스·서시베리아·시베리아 군관구 사령관을 거쳐 루마니아 인민군 최고군사고문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교관에서 야전군 사령관으로

푸호프는 전간기 거의 전부를 군사교육 기관에서 보냈다. 1924년부터 1930년까지 34-34 오룀스크 소총연대를 지휘하고 1925~1926년 제3코민테른 사격전술고등과정을 마친 뒤, 1930년 3월부터 같은 과정의 전술 지도원·과정장·수석 전술지도원을 맡았다. 1932~1934년에는 적군 자동장갑차관리부 제1국 부국장, 1935년에는 스탈린 기갑·기계화 군사아카데미 전술학과 선임지도원을 거쳐 1936년 7월부터 교무·부대담당 부책임자, 1938년 3월부터 하리코프 기갑학교 교장을 지냈다. 1939년 4월에는 몰로토프 군사경제아카데미 교수진으로 옮겼고 1940년에는 '전술학과 조교' 학술칭호를 받았으며, 1941년 1월에는 적군 병참아카데미 교무부장이 되었다. 이 때문에 독소전 발발 당시 그에게는 부대 지휘 경험이 거의 없었다.

1941년 8월 그는 304소총사단장으로 처음 전선에 나섰다. 38군 소속으로 9월 폴타바 방어전, 10월 수미-하리코프 방어작전에 참가하며 큰 손실을 겪으면서도 부대의 패닉과 무단 후퇴를 바로잡았다.

성과는 곧바로 이어졌다. 1942년 1월 사단장에서 바로 13군 부사령관으로 전임되었고, 사령관이 임명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 직무를 대행하다 1942년 5월 정식 사령관이 되었다. 1942년 6~7월 카스토르노예 방어작전에서는 독일군 사령부가 주력을 다른 군 구역으로 돌릴 만큼 완강하게 방어했고, 1943년 1~2월 보로네시-카스토르노예 작전에서는 반년에 걸쳐 구축된 독일군 방어선을 신속히 무너뜨리고 북쪽에서 공격해 카스토르노예 독일군 집단의 포위 고리를 닫았다. 같은 해 2월 말로르한겔스크 작전에서는 오룔 집단 포위를 시도했으나 10~20km 진출에 그쳤다. 교관 출신이 최전선 야전군의 지휘관으로 자리 잡은 이 경로가 이후 모든 성과의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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