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르 넬슨 브래들리

Omar Nelson Bradley
미국 국가기관 미국 미국계 1893–1981 ○ 자연사

노르망디를 지휘한 미국 육군 지휘관

1951년 5월 15일 의회 증언에서 브래들리는 전쟁 확대를 주장한 맥아더를 향해 '이 전략은 잘못된 전쟁을,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적을 상대로 치르게 할 것입니다'라고 일갈했다.

오마르 브래들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미국 육군 고위 지휘관으로, 북아프리카와 시칠리아를 거쳐 노르망디 상륙과 서유럽 공세를 지휘했다. 그는 기존의 제1미군집단 본부가 연합군의 기만작전에서 허구의 지휘부로 활용되는 과정을 거쳤고, 실제 전선에서는 제1군과 제12군집단을 이끌었다. 전후에는 육군참모총장과 초대 합동참모의장을 지내며 한국전쟁 초기 미국의 군사정책을 조정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합동참모의장과 한국전쟁기 정책 조정

브래들리는 1948년 미 육군참모총장이 되었고, 1949년 8월 11일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초대 합동참모의장으로 임명되었다. 취임 당시 그는 재조직과 장비, 훈련이 모두 부족한 군대를 물려받았고, 스스로 “1948년의 육군은 종이봉투에서도 싸워 나올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1948년의 육군 확장·장비 현대화 계획이 행정부에서 거부된 뒤, 그는 국방장관 루이스 존슨의 예산 삭감 기조에 공개적으로 동조하며 의회에서 더 큰 군사력을 요구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해악”이 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1948~1949년에 충분한 국방예산을 더 강하게 주장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으며, 아마 워싱턴에서 보낸 전후 시절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였다고 밝혔다.

1950년 6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브래들리는 최고위 군사 책임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력에 크게 못 미치는 병력을 재편해 투입해야 했고, 탱크와 대전차화기, 포병이 부족한 미군은 부산까지 밀리는 후퇴전을 치러야 했다. 그는 처음에는 북조선 전역을 점령해 공산주의 침략을 ‘밀어내는’(롤백) 트루먼 행정부의 계획을 지지했으나, 1950년 말 중국군이 참전해 미군을 다시 밀어내자 롤백을 포기하고 북조선에 대한 봉쇄 전략으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다. 이 봉쇄 전략은 이후 트루먼 행정부가 세계적 차원의 공산주의 확장에 적용하는 노선이 되었다.

브래들리는 맥아더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맥아더가 전쟁 목표 축소에 저항하자 트루먼이 그를 해임하도록 설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51년 4월 해임 직후 의회 증언에서 그는 “이 전략은 우리를 잘못된 전쟁,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기, 잘못된 적과의 싸움에 끌어들일 것”이라고 맥아더의 전면 승리론을 비판했다. 같은 시기 그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군사 원조와 관계 개선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한편 브래들리는 1948년 7월 트루먼이 군 내 인종·피부색·종교·출신국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제9981호 행정명령을 발표했을 때 이에 반대하며 “육군은 사회 개혁을 하러 나선 것이 아니다”라고 발언했고, 트루먼의 요구로 공개 사과문을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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