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뉴레프트리뷰》를 이끌고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쓴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1976)에서 서구 마르크스주의를 정치 실천과의 「구조적 분리」로 규정하고, 서방 사회주의 운동의 오랜 패배가 낳은 이론 전통으로 보았다.
런던에서 태어난 영국의 역사가·평론가로,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의 동생이다. 옥스퍼드를 나와 1962년부터 20년 동안 《뉴레프트리뷰》 편집장을 맡아 이른바 「둘째 신좌파」를 이끌었다. 1964년 「현재 위기의 기원」에서 톰 네언과 함께 영국 자본주의가 너무 일찍 성공한 탓에 귀족 지배 같은 낡은 구조를 끝내 청산하지 못했다는 「네언-앤더슨 테제」를 내놓아 E. P. 톰슨과 논쟁했다. 1974년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과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로 유럽사를 역사유물론으로 종합했고, 1976년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냈다. 뒤에 UCLA에서 역사학·사회학을 가르쳤고 2000~2003년 다시 《뉴레프트리뷰》 편집장을 지냈다.
다른 이름: 프랜시스 로리 페러그린 앤더슨 · 리처드 머턴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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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학술·연구대표
《뉴레프트리뷰》와 네언-앤더슨 테제
1938년 9월 11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제임스 앤더슨은 영국-아일랜드계 집안 출신으로 중국 해관에서 일한 관리였고, 형은 뒷날 『상상의 공동체』를 쓴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이다. 이튼과 옥스퍼드 우스터 칼리지에서 공부했고, 젊은 시절 리처드 머턴이라는 필명으로 록 비평을 쓰기도 했다.
1962년 《뉴레프트리뷰》 편집장이 되어 20년 동안 잡지를 이끌었다. 톰슨 등 「첫 신좌파」와 갈라선 앤더슨 그룹은 1968년 무렵 타리크 알리와 여러 트로츠키주의자를 끌어안아 「둘째 신좌파」로 불렸다. 1964년 1~2월호에 실은 「현재 위기의 기원」에서 앤더슨은 영국 좌파에게 자기 사회에 관한 구조적 연구도, 20세기 영국 사회의 총체적 역사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위기는 17세기 이래 영국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달리 형성되고 발전했는지, 곧 계급 구조의 전체 궤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사회주의 전략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톰 네언과 함께 다듬은 이 「네언-앤더슨 테제」에 따르면, 영국은 너무 일찍, 너무 성공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된 탓에 귀족 권력 같은 낡은 사회 구조와 제도를 뒤엎지 못했다. 독일 같은 대륙 국가들이 「두 번째」 부르주아 혁명으로 효율적 행정과 교육 제도를 갖춘 것과 달리, 영국에서는 앤더슨의 말대로 「과거의 승리가 현재의 재앙」이 되었다는 것이다. E. P. 톰슨은 1965년 「영국인의 특이성」에서 두 사람이 영국 좌파에 대한 공산주의의 영향을 빠뜨리고 영국사를 계급 범주로 환원한다고 반박했고, 앤더슨은 1966년 「사회주의와 사이비 경험주의」로 응수했다.
역사 사회학과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
1974년 앤더슨은 두 권의 역사서를 함께 냈다.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은 봉건적 사회구성체가 생겨나 지속된 과정을,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는 군주 절대주의를 다루며 고전 고대부터 19세기까지 유럽사 전체를 훑었다. 앞의 책 서문에서 그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저작을 비판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마르크스주의 연구가 교조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마르크스주의 학문의 성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썼다.
1974년에 쓰고 1976년에 낸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는 루카치·코르시·그람시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사르트르·알튀세르로 이어진 전통을 정치 실천과의 「구조적 분리」로 규정했다. 마르크스·엥겔스·카우츠키·레닌·룩셈부르크·트로츠키의 고전 전통에서는 이론이 노동계급 조직의 지도자·활동가 역할과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1918~1923년 러시아 밖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실패와 그 뒤 스탈린주의·파시즘의 대두가 이론과 대중 투쟁의 연결을 끊었다. 그 결과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경제 법칙과 정치 전략이라는 고전적 관심에서 물러나 철학·방법론·문화로 옮겨 갔고, 노동계급에게서 멀어진 대학 안에서 난해한 언어와 은근한 비관주의를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앤더슨은 그 대척점에 망명자들이 이론과 실천의 고전적 통일을 지키려 한 트로츠키주의 전통을 두었고, 1968년 5월 이후의 학생·노동자 봉기가 이론과 대중 실천을 다시 잇는 새 시대를 열었으며 그렇게 되면 서구 마르크스주의라는 전통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톰슨이 『이론의 빈곤』(1978)에서 알튀세르와 그 영국 추종자들을 공격하자, 앤더슨은 1980년 『영국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으로 한결 화해적이면서도 폭넓은 응답을 내놓았다. 대륙 이론가를 편애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는 『역사유물론의 궤적』(1983)에서 파리를 지적 반동의 새 수도로 그리며 포스트모더니즘 조류를 비판했다. 1980년대 뉴욕 뉴스쿨 교수를 거쳐 UCLA 역사학·사회학 석좌교수가 되었고, 2000년 《뉴레프트리뷰》 재창간 때 다시 편집장을 맡아 2003년까지 일한 뒤 편집위원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