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벤베르크 서클을 이끈 빌헬름 2세의 가장 가까운 벗이자 외교관
1906년부터 하르덴에게 동성애자로 공격받았고, 1908년 위증죄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병으로 재판이 멈춘 채 황제에게 버림받았다.
쾨니히스베르크의 귀족 오일렌부르크 가문에서 태어난 프로이센 외교관. 1886년 젊은 빌헬름 왕자와 친해져 그가 황제가 된 뒤 가장 가까운 벗이 되었고, 브란덴부르크의 리벤베르크 성에 모인 측근 모임 「리벤베르크 서클」을 이끌었다. 1894~1902년 빈 주재 대사를 지냈고 1900년 후작이 되었다. 1906년부터 막시밀리안 하르덴이 그를 동성애자이자 황제를 그르치는 「카마릴라」의 우두머리로 공격하면서 오일렌부르크 사건이 벌어졌다. 위증죄 재판은 그의 병으로 멈췄고, 황제에게 버림받아 1921년 리벤베르크에서 숨졌다.
다른 이름: 필리프 추 오일렌부르크헤르테펠트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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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1903
독일 국가기관대표
외교·국제활동
관련 역사 사건
외교관이자 황제의 총신
프로이센 장교의 맏아들로 근위 연대에 들어가 보불전쟁에 참전했고, 법학 박사가 된 뒤 1875년 스웨덴 귀족 아우구스타 산델스와 결혼했다. 비스마르크 집안을 드나들었고, 「스칼드의 노래」와 「장미의 노래」를 지어 부른 작곡가이기도 했다. 1877년 외교관이 되어 뮌헨·올덴부르크·슈투트가르트를 거쳐 1894년 빈 주재 대사가 되었다. 1886년 사냥 모임에서 열두 살 아래의 빌헬름 왕자를 만나 동성애적 기운이 감도는 우정을 맺었고, 부모와 불화하던 왕자에게 정서적 안식처가 되었다. 1890년 비스마르크의 실각에 큰 역할을 했고, 1894년 카프리비 후임으로 호엔로에를 강하게 추천했으며, 뷜로 총리는 그가 밀어준 인물이었다. 외교에서는 평화와 타협을 지향해 외무부 노선과 부딪쳤고 「나약한 자」라는 평을 들었다. 1900년 황제가 그를 후작으로 올렸다. 1902년 대사직을 내놓고 리벤베르크로 물러났으나 여론은 그를 여전히 황제를 둘러싼 「카마릴라」의 우두머리로 보았다. 1906년 하르덴의 공격으로 시작된 재판들에서 1908년 6월 29일 위증 혐의로 재판에 섰지만, 병으로 중단된 재판은 1909년 무기한 연기되었다. 황제는 그를 버렸고, 그는 리벤베르크에서 친구들에게 외면당한 채 정치 서신을 정리하며 지내다 1921년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