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 피셔

Ruth Fischer
독일 공산당 공산주의 독일 오스트리아 1895–1961 ○ 자연사

유럽 대중공산당의 첫 여성 지도자,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반스탈린주의 전향자

“우리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레닌그라드에는 테러가 지배하고 있다.” — 마슬로프에게 보낸 편지가 소련 검열에 적발되며 공개 낭독되었고, 이것이 스탈린과의 결정적 단절이 되었다 (1926년 2월, 코민테른 특별회의).

독일공산당(KPD) 공동의장(1924–1925)으로 유럽 주요 공산당을 이끈 최초의 여성. 빈 철학 교수의 딸로 태어나 1918년 오스트리아 공산당을 공동 창립했고, 베를린에서 마슬로프와 함께 KPD 극좌파를 이끌며 1923년 봉기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 코민테른 제5차 대회에서 트로츠키를 공개 비난할 만큼 치열한 파벌 투사였으나, 1926년 스탈린에게 복종을 거부하며 축출된 뒤 평생 반스탈린주의 좌파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망명지 미국에서 정보기관 협력자로 전락했다가 말년에 다시 공산주의로 회귀하는 극적인 궤적을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KPD 지도부와 ‘볼셰비키화’

1924년 4월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열린 독일공산당(KPD) 제9차 대회는 루트 피셔, 아르카디 마슬로프, 베르너 숄렘이 참여하는 정치서기국을 구성했다. 공식 당의장은 함부르크 봉기 지도자 에른스트 텔만이 맡았지만, 피셔와 마슬로프는 집행서기로 당을 이끌었다. 1924년 5월 총선에서 KPD는 약 370만 표, 득표율 12.6퍼센트를 얻어 62석을 차지했고 피셔도 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12월 선거에서는 270만 표, 8.9퍼센트, 45석으로 후퇴했다. 피셔는 의회에서 이를 ‘그림자 극장’이라 부르며 정부와 도스 계획에 반대하는 당의 노선을 대변했다.

피셔는 코민테른 제5차 대회에서 공산당을 중앙집권적이고 단일한 조직으로 만들자는 볼셰비키화 노선을 지지했다. 그녀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이 여러 경향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볼셰비키 세계당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노선은 반대파와 분파를 금지하고 당내 이견을 억누르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1925년에는 KPD 지도부가 사회민주당에 협력을 제안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는 등 극좌 노선에서 일부 물러섰다. 모스크바의 코민테른 지도부는 피셔와 마슬로프의 지도력을 신뢰하지 않았고, 1925년 10~11월 당 회의에서 두 사람을 당 지도부에서 밀어냈다. 피셔는 모스크바에서 공개서한에 서명했으나, 훗날 이를 자신의 정치적 사형선고에 서명한 일이라고 회고했다. 1926년 두 사람은 KPD에서 제명됐다. 피셔의 지도 아래 볼셰비키화에 동참했던 당내 권력 집중은 결국 그녀 자신의 파벌도 제거하는 정세 속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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