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운동에서 시작해 겨울전쟁 외무장관으로 스탈린과 마주한 핀란드 사민당의 현실주의 지도자
1939년 11월 9일, 핀란드가 축소된 요구를 거부하자 '맞은편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탈린이 물었다: '이노마저도 내주지 않겠다는 말인가?'
핀란드 사회민주당을 1918년 내전의 잿더미에서 의회 민주주의 정당으로 재건한 정치가다. 1926년 핀란드 최초의 좌파 정부 수반이 되었고, 겨울전쟁 직전 모스크바 협상에서는 파시키비와 함께 실무 대표로 나서 영토 교환에 응하라고 헬싱키를 설득했다. 1939년 11월 9일 마지막 회담에서 핀란드가 축소된 요구마저 거부하자 스탈린과 몰로토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훗날 기록한 이도 탄네르였다. 전후 소련의 압력으로 5년 6개월의 실형을 살았으나, 출옥 뒤 의회로 돌아와 1960년대 초까지 당을 이끌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7의회 의원 (사회민주당)
- 1917재무 담당 상원의원
- 1926–1927총리
- 1927–1945국제협동조합연맹 의장
- 1937–1939재무장관
- 1939–1940외무장관
- 1942–1944재무장관
- 1957–1963사회민주당 당수
관련 역사 사건
협동조합 경영과 사회민주당의 재건
탄네르의 정치적 기반은 협동조합 운동에서 형성되었다. 독일 함부르크의 협동조합 구매조직 GEG에서 수습 경험을 쌓은 뒤 핀란드로 돌아온 그는 스물두 살 무렵 투르쿠의 소비자협동조합 경영자가 되었다. 1917년에는 헬싱키의 엘란토 총지배인이자 소비자협동조합 중앙조직의 주요 인물이었다. 그는 엘란토를 대규모 사업체로 성장시켰고, 1927년 국제협동조합연맹 집행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1945년까지 그 직을 맡았다.
1918년 내전기에 엘란토 경영자로서 적위대 지도부와 대처해야 했던 탄네르는 혁명을 노동계급과 민주주의에 대한 범죄로 보며 반대했다. 내전 뒤 그는 새 사회민주당을 세우는 지도자로 부상했고, 정당이 의회정치에 복귀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전략은 노동자 운동 내부에서도 논쟁의 대상이었다. 핀란드 전기 사전은 그가 1918년 뒤 정통 사회민주주의자였는지는 해석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경제 영역에서 여러 사회 세력과 협력했고 민주주의와 입헌주의를 일관되게 옹호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협동조합 경영과 의회주의는 그의 영향력의 토대였지만, 이를 노동운동 내부의 이견이나 그의 정치적 선택에 대한 논쟁과 분리해서 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