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국가화를 주도한 노동인민위원
영국 언론인 아서 랜섬이 1919년 슈미트의 인민위원부를 방문했을 때의 인상: "면도를 깔끔히 한 총명한 젊은이로, 사무 처리에 대한 관심이 그의 인민위원부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극도로 깨끗하고 아주 잘 정돈되어 있었다."
페테르부르크의 독일계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1905년 볼셰비키에 입당한 노동운동 조직가였다. 1917년 2월 혁명 후 페트로그라드 당 위원회 서기와 노동조합 중앙평의회 서기를 맡았고, 10월 봉기 당시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으로 무장봉기를 지원했다. 1918년부터 1928년까지 소비에트 노동인민위원으로 재임하며 전시공산주의부터 네프까지 소련 노동 정책의 제도적 기틀을 수립했고,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을 독립된 계급 조직에서 국가 기구로 편입시키는 국가화를 주도했다. 1928년부터 1930년까지 인민위원회의 부의장을 지냈으나, 우익 편향에 가담했다가 곧 이탈하였고, 대숙청 시기 체포되어 1938년 총살되었다.
경력 연표
- 1905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입당, 철도 정비공
- 1907–1911독일 망명, 도장공 노동
- 1912–1914페테르부르크 금속노동자조합 비서
- 1915–1916페트로그라드 당 위원회 서기 (수차례 체포)
- 1917.2–10페트로그라드 당 위원회 서기, 노동조합 중앙평의회 서기, 군사혁명위원회 위원
- 1917–1918노동부인민위원
- 1918–1928노동인민위원 (RSFSR, 1923년부터 소련), 전연방 중앙노동조합평의회 간부
- 1928–1930소련 인민위원회의 부의장 겸 노동국방평의회 부의장
- 1930–1931농업부인민위원
- 1931–1933소련 인민위원회의 수석중재관
- 1933–1937프리모리예 변경주 계획위원회 의장 등 지방 경제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