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이만토비치 알크스니스

Виктор Имантович Алкснис
소련 공산주의 소련 → 러시아 라트비아계 1950–2025 ○ 뇌졸중

의회 표결을 헌정 쿠데타로 몰고 간 소유즈파의 지도자

1991년 6월 17일, 회의의 마지막 연사로 나선 알크스니스는 신연방조약이 위헌이며 파블로프 내각을 지지해야 한다고 의원들에게 호소했다. '내각은 소련을 위해, 이 국가의 보존을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트비아계 소련 공군 대령으로, 소련 인민대표대회에서 가장 노골적인 강경파였다. 소유즈파 공동의장으로서 계엄령을 요구하고 고르바초프의 퇴진을 촉구했으며, 1991년 6월 17일에는 파블로프 총리의 비상권한 결의안을 즉각 표결에 부치자고 밀어붙여 '헌정 쿠데타 기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 하원의원을 두 차례 지냈고, 1993년 옐친에 맞서 의회를 방어하다 진압경찰에 구타당했으며, 끝까지 타협 없는 소비에트 애국자로 살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소련 해체에 맞선 연방 보존 정치

알크스니스는 1988년 라트비아 인민전선의 소련 탈퇴 지향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소련 인민대표로 선출된 뒤, 1990년에는 연방 유지와 러시아어 사용 주민의 권리 보호를 주장했다. 그는 공화국의 탈퇴 절차와 비토착 주민의 권리, 연방 소유 재산과 국방 문제를 규정한 소련 법률의 발의자였다. 비판자들은 이 법이 사실상 탈퇴를 막으려는 것이라고 불렀다. 그는 고르바초프의 노선을 비판하고 소련 보존을 위해 비상조치를 주장했으며, 1991년 8월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지지했다. 쿠데타 실패 뒤에도 소련 인민대표대회 해산에 반대했고, 연방의 긴급 인민대표대회를 다시 소집하려는 시도에 참여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성사되지 않았다. 그의 정치는 연방 국가의 지속과 연방 중심의 권한을 옹호했지만, 공화국의 이탈 요구와 정치적 대립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강압적 해법도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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