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목적론적 계획 종합을 제안한 고스플란의 마흐주의 철학자-경제학자
1930년 OGPU 심문에서 "정치·경제의 모든 문제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그 어떤 정치적 경력을 가진 소비에트 시민에게도 금지될 수 없다"고 답하며 유죄를 부인했다.
철학자·경제학자·번역가. 스크보르초프-스테파노프와 마르크스 『자본론』을 러시아어로 처음 완역(1907–1909)했고, 마흐주의 경험비판론의 대표 논객으로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 정면 반박했다. 1921년부터 고스플란에서 그로만과 함께 보그다노프 텍톨로지에 기초한 유전적-목적론적 계획 방법론을 제창했으며, 소련 최초 15개년 종합계획을 제안했다. 1930년 체포·5년형 선고, 1935년 모스크바로 돌아와 번역에 전념하다 1939년 폐렴으로 사망. 1990년 복권.
경력 연표
- 1896–1904사회민주당 입당, 모스크바대학 물리수학부 중퇴 후 베를린대학 철학부 수학, 두 차례 체포·유배
- 1904–1907볼셰비키 당원, 제4차 당대회 대의원, 중앙기관지 『당 소식』 편집위원
- 1907–1909스크보르초프-스테파노프와 마르크스 『자본론』 전3권 러시아어 최초 완역 출간
- 1908–1911마흐주의 철학 논쟁 주도, 『현실주의 세계관 에세이』 등 출간; 레닌 비판에 공개 반박
- 1917『노바야 지즌』 편집자·주필, RSDLP(국제주의파) 공동 창립 이념가, 여름에 RSDLP 탈당
- 1921–1927고스플란 경제통계분과 부의장(1924), 노동문화분과 의장 겸 상임간부회 위원(1927)
- 1926–1929그로만과 유전-목적론적 계획 종합 제창, 산업성장 미분방정식 정식화, 최초 15개년 종합계획 제안
- 1930–1935스탈린 공개 비판 후 '멘셰비키 중앙국' 사건 체포·5년형; 1932년 조기 석방, 사라토프·캅카스 유형
- 1935–1939모스크바 귀환, 에커만·몽테뉴 번역; 1939년 폐렴 사망, 1990년 복권
관련 역사 사건
유전-목적론적 계획 종합
1920년대 소비에트 계획경제 논쟁에서 바자로프는 블라디미르 그로만과 함께 '유전적' 접근과 '목적론적' 접근의 변증법적 종합을 제창했다. 유전적 방법은 현재 경제의 객관적 추세를 통계적으로 외삽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이고, 목적론적 방법은 정치적으로 설정된 목표에서 출발하여 경제를 재편하는 방식이다. 바자로프는 보그다노프의 텍톨로지(일반조직과학)에 기초하여 두 접근을 통합하고자 했으며, 계획이란 살아있는 유기체적 체계의 자기조절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 종합 방법론에서 유전적 접근의 우위를 주장했는데, 당의 목표도 결국 경제적 현실의 제약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1926년에는 산업성장을 기술하는 미분방정식을 정식화·풀이했으며, 그 해는 성장률이 점차 둔화되는 S자 곡선을 그렸다. 같은 시기 소련 최초의 15개년 종합계획(일반계획) 수립을 제안했고, 행정명령 체계와 관료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했으며 사회주의 계획경제 안에서 시장과 독립채산제의 통합을 이론적으로 옹호했다. 이 입장은 스탈린의 초고속 공업화 노선 및 강제 집단화와 정면 충돌했고, 1929년 12월 스탈린의 공개 비난 이후 '멘셰비키 중앙국' 사건으로 체포되는 정치적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