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봉기 포병 지휘관에서 좌파 공산주의자·민주중앙집권파로
러시아 단독 사회주의는 '유럽 사회주의라는 간선도로에서 갈라져 나온 곁길이며 실패할 운명'이라고 보았다.
1907년 볼셰비키에 입당한 모스크바 법대생으로, 니콜라이 부하린·오신스키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트리오를 이루었다. 1917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중포병을 지휘했고 1918년 초 RSFSR 상업·공업 인민위원을 지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반대한 좌파 공산주의자로 물러난 뒤, 민주중앙집권파·46인 선언·통합 야당을 거치며 당내 민주주의를 일관되게 주장했다. 1921~1927년 고스플란 상임위원, 최고경제회의 금융위원회 의장, 노동국방회의 이사로 중앙계획 기구에서 활동했다. 러시아 단독 사회주의를 '유럽 사회주의의 곁길'로 보았고, 제명 후에는 '혁명과 볼셰비즘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경력 연표
- 1907볼셰비키 입당
- 1909–1914모스크바 대학 법학부, 모스크바위원회 선동가
- 1914–1917러시아 제국군 포병 준위, 서부전선
- 1917모스크바 볼셰비키 신문 《소치알-데모크라트》 편집, 10월 봉기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중포병 지휘
- 1918.02–1918.04RSFSR 상업·공업 인민위원
- 1918–1921좌파 공산주의자, '군사야당' 지도자, 최고경제회의(VSNKh) 근무
- 1920–1923민주중앙집권파('데치스트') 지도자
- 1921–1927고스플란 상임위원, 노동국방회의 이사, 최고경제회의 금융위원회 의장, 중앙통계국 이사
- 192346인 선언 서명
- 1924–1926《프라우다》 및 《에코노미체스카야 지즌》 편집위원 겸직
- 1926–1927사프로노프와 '15인 그룹' 결성, 통합 야당 참여
- 1927.12제15차 당대회에서 제명, 우랄 유형 3년형
- 1930–1937수감·유형 반복, 수즈달 정치격리소 수감 중 모스크바로 이송
- 1937.05.26군사최고재판소에서 사형 선고, 당일 총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