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명으로 페겔라인을 재판할 군사법정을 열었으나 피고가 만취해 울고 토하자 재판을 닫고 그를 경호대에 넘겼다. 몽케는 뒤에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을 다시 보지 못했다.”
뤼베크의 가구 장인 집안에서 태어나 1931년 나치당과 친위대에 들어갔고, 1933년 히틀러 경호부대인 친위대 베를린 참모경비대의 첫 대원이 되었다. 라이프슈탄다르테 아돌프 히틀러에서 폴란드·프랑스·발칸 전역에 나섰고, 1940년 프랑스에서 영국군 포로 학살의 책임자로 지목되었다. 노르망디에서 제12친위기갑사단 연대를, 아르덴 공세에서 라이프슈탄다르테 사단을 지휘했다. 1945년 4월 히틀러가 그를 정부 구역 방어 사령관에 임명했다. 5월 탈출에 실패해 소련군에 항복했고 1955년까지 억류되었다. 전쟁범죄 혐의로 조사받았으나 기소되지 않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31.09.01나치당 입당, 11월 친위대 입대
- 1933.03친위대 베를린 참모경비대 대원
- 1939.09–1941.04라이프슈탄다르테 중대장·대대장, 폴란드·프랑스·발칸 전역
- 1943.09–1944.08제12친위기갑사단 제26기갑척탄병연대장
- 1944.08–1945.02제1친위기갑사단 라이프슈탄다르테 사단장
- 1945.04.23–05.02베를린 정부 구역 방어 사령관
- 1945.05.02–1955.10.10소련 억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