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쉰

习仲勋

산베이 근거지의 창건자, 16년 실각 뒤 광둥에서 경제특구를 열어 낸 개혁가

류즈단과 함께 산간 근거지를 세워 대장정의 종착지를 마련했으나 1962년 실각해 16년을 감금·하방으로 보냈고, 1978년 광둥 제1서기로 경제특구를 열었다.

산시 출신으로 류즈단과 함께 산간 근거지를 세워 대장정의 종착지를 마련했다. 건국 후 서북국 서기와 국무원 비서장·부총리를 지냈으나 1962년 소설 『류즈단』이 가오강을 옹호한 「반당」 작품이라는 캉성의 고발로 실각해 16년 동안 감금·하방되었다. 1978년 광둥 제1서기로 복귀해 홍콩 탈출 문제의 해법으로 중앙에 「선행일보(先行一步)」의 권한을 요구했고, 이는 1980년 선전·주하이·산터우 경제특구로 이어졌다. 1980년대 서기처 서기로 후야오방을 지지했으며 1987년 그의 해임에 반대했다. 시진핑의 아버지다.

다른 이름: 습중훈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민족·통일전선 사업: 청해와 신장, 그리고 정치국 시기

시중쉰은 서북국 시기부터 민족 문제와 통일전선 사업에 깊이 관여했다. 1951년 청해에서 마씨 군벌 잔여 세력이 티베트인 부족을 선동해 봉기가 일어났을 때, 그는 인민해방군의 진압 작전 와중에도 정치적 해결을 주장했다. 17차례 제안이 거부되고 부족 마을이 점령된 뒤에도 협상을 계속 밀어붙였고, 체포된 부족민을 석방하고 항란 부족장 샹치엔에게 관대한 조건을 제시해 1952년 7월 그가 귀순하도록 만들었다. 마오쩌둥은 이를 삼국지의 제갈량과 맹획의 고사에 비겼다. 1952년에는 신장 목축 지역에 계급 투쟁을 확대하려는 왕전·덩리췬의 방침을 중단시켰다. 내몽골 경험에 근거해 목축민에게 계급 라벨을 붙이는 데 반대했으나 무시당했고, 목축 지역의 사회 불안이 커지자 마오쩌둥의 지지를 받아 방침을 뒤집고 왕전을 신장에서 해임했으며 천여 명의 목축민을 석방했다. 1950년대에는 제10세 판첸 라마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1954년 베이징을 방문한 제14세 달라이 라마와도 교류했으며, 달라이 라마는 그를 매우 우호적이고 비교적 개방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정치국 위원이던 1980년대에도 그는 민족 정책과 종교 정책을 주로 담당하며 신장·티베트 문제는 현지의 불만을 해소하고 소수민족 지도자와 협력하며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