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프 나우모비치 드롭니스

Яков Наумович Дробнис

우크라이나 볼셰비즘의 창립자, 46인 선언 서명자

페틀류라 세력에 체포되어 총살형을 선고받았으나, 마지막 순간 부상당한 채 탈출하여 붉은 군대가 도착할 때까지 은신했다.

야코프 드롭니스는 1906년 16세에 볼셰비키에 입당한 유대인 노동자 출신 혁명가로, 1918년 우크라이나 공산당 창립에 참여하고 다섯 차례 중앙위원을 지냈다. 내전기에는 페틀류라와 데니킨에 맞서 파르티잔 부대를 조직했으며, 폴타바·오데사에서 소비에트 집행위원장을 역임하고 1922년 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를 지냈다. 1923년 '46인 선언'에 서명하며 좌익반대파에 가담했고 1927년 제명되었으며, 1937년 제2차 모스크바 재판에서 '평행 반소비에트 트로츠키주의 중심' 사건의 피고로 사형당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지하 운동과 우크라이나 공산당 창립

야코프 드롭니스는 1890년 체르니히우현 흘루히우에서 구두장이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 구두 공방 수습공으로 일하던 그는 열세 살에 아스트라한으로 떠났다가 유대인 거주권 제한으로 강제 송환되면서 정치범들과 처음 접촉했고, 흘루히우의 구두장이 로가쳅스키를 통해 혁명 운동에 들어섰다. 1905년 혁명기에 지방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조직의 기술 임무(헥토그래프 인쇄, 전단 배포, 무기 보관)를 맡으며 활동을 시작해 1906년 정식 입당했다. 이듬해 파업 참여로 처음 체포된 데 이어 1908년 당적 때문에 다시 체포되어 열 달 구금 끝에 미성년자임을 감안한 5년형을 선고받았다.

1918년 우크라이나 공산당(볼셰비키) 창립에 참여해 제2차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뽑혔고, 다섯 차례 소집에 걸쳐 중앙위원을 지냈다. 같은 해 중앙위원 자격으로 우크라이나에 파견되어 게트만·페틀류라 체제에 맞서는 지하 조직과 파르티잔 부대 편성을 지휘했다. 체포되어 총살형을 선고받았으나 마지막 순간 부상당한 채 탈출해 적군이 들어올 때까지 은신했다. 1919~1920년 데니킨 의용군과 싸웠고, 폴타바 집행위원장 시절 코뱌가 역에서 도적에게 납치되어 몽둥이질을 당한 채 지하실에 인질로 갇혔다가 남부전선 혁명군사위원 베르진의 진격으로 구출되었다. 내전 내내 네 차례나 총살 위기에 몰린 이 지하·파르티잔 경력은, 그가 1923년 좌익반대파로 갈라서기 전까지 우크라이나 볼셰비즘의 토대를 세우는 데 바친 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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