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용어 사전사회혁명당

보리스 사빈코프

Борис Савинков
사회혁명당 비볼셰비키 사회주의자 소련 러시아 1879–1925 ✕ 처형/의문사

테러리스트에서 반혁명가로: 혁명의 검은 기사

1924년 재판정에서: '나는 플레베와 세르게이 대공 암살의 사빈코프다. 평생 인민을 위해 일했으나, 이제 노동자·농민 정권에 총을 겨누었다고 기소되었다.'

사회혁명당 전투조직을 지휘하며 제정 고위관료 암살을 주도한 혁명가·작가. 『창백한 말』로 테러의 심리를 소설화했다. 10월 혁명 후 반볼셰비키 투쟁을 이끌었고, OGPU에 체포되어 루뱐카에서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3SR 전투조직에 합류
  • 1904플레베 내무장관 암살 기획
  • 1905세르게이 대공 암살 지휘
  • 1909『창백한 말』 출간 — 테러리즘의 심리적 해부
  • 1917.04러시아 귀환, 제7군 정치위원 임명
  • 1917.07임시정부 전쟁차관 — 케렌스키·코르닐로프 중개
  • 1917.08코르닐로프 사건으로 모든 직위에서 해임, SR당 제명
  • 1918조국과 자유수호동맹(SZRiS) 창설, 반볼셰비키 봉기 주도
  • 1920–1921폴란드-소비에트 전쟁에서 폴란드 측에 서서 반소 군사활동
  • 1924OGPU의 트러스트 작전에 속아 소련 귀환, 체포
  • 1925루뱐카 감옥에서 사망 (공식: 투신자살, 의혹: OGPU 살해)

모이세이 이오시포비치 칼마노비치

Моисей Иосифович Калманович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888–1937 ✕ 처형

집단화 시기 국가은행을 이끈 혁명가 출신 금융행정가

1919년 무장 부대를 이끌고 벨라루스 마을들을 돌며 곡물을 강제 징발했다. 18년 후 자신이 세운 체제에 의해 '해충'으로 처형되었다.

시베리아 유대 상인 가정에서 태어나 1904년 사회혁명당에 입당, 1917년 볼셰비키로 전향했다. 10월 혁명기 민스크 수비대장과 서부전선 군사혁명위원회에서 활동했고, 내전기 벨라루스와 리투아니아-벨라루스에서 식량인민위원을 지내며 강제 곡물 징발 조직자 중 하나였다. 1930년부터 1934년까지 소련 국가은행 총재 겸 재정부인민위원으로서 집단화와 병행된 신용개혁(1930–1932)을 주관했고, 1934년부터 1937년까지 곡물·축산 국영농장 인민위원으로 국영농장 체제를 이끌었다. 대숙청 중 체포되어 1937년 11월 처형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7–1918민스크 수비대장, 서부전선 군사혁명위원, 서부지역 인민위원회의 의장
  • 1919–1920벨라루스·리투아니아-벨라루스 식량인민위원, 서부전선 특별식량위원회 의장
  • 1920–1923우크라이나 식량부인민위원, 시베리아 식량위원회 의장
  • 1923–1924러시아 SFSR 식량인민위원, 소련 식량부인민위원
  • 1924–1929사하로트레스트·프롬방크·제르노트레스트 이사, 노농감독부 간부
  • 1929–1930소련 농업부인민위원
  • 1930–1934국가은행 총재 겸 재정부인민위원, 신용개혁 주관
  • 1934–1937곡물·축산 국영농장 인민위원

야코프 이사코비치 세레브랸스키

Яков Исаакович Серебрянский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벨라루스 1892–1956 ✕ 심문 중 사망

파리에서 백군 장군을 납치한 소련 특수공작 창시자, 자기 기관에 고문당하다

프랑스 경찰 제복을 입은 그들은 거리에서 쿠테포프를 멈춰 세우고 심문을 구실로 차에 태웠다. 쿠테포프는 저항했고, 몸싸움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세레브랸스키가 내게 말했다. — 파벨 수도플라토프, 『특수임무』

민스크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1923년 OGPU에 영입되어 팔레스타인에 첫 소련 스파이망을 구축했고, 유럽 전역에서 200명 이상을 포섭했다. 1930년 파리에서 프랑스 경찰로 위장해 백군 지도자 쿠테포프 장군을 납치·살해했으며, 트로츠키 아들의 기록보관소 탈취와 스페인 공화파 군용기 밀반입을 지휘했다. NKVD 특수임무반(SGO) 책임자로 활약했으나 1938년 베리야에게 체포되어 아바쿠모프의 고문으로 거짓 자백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41년 수도플라토프의 요청으로 사면되어 전시 정보전에 복귀했고, 1953년 베리야 사건에 연루되어 재체포된 후 부티르카 감옥에서 심문 중 사망했다. 1971년 복권.

상세 이력 보기
  • 1907–1917사회혁명당 맥시말리스트; 투옥(1909); 제국군, 동프로이센 중상(1914); 바쿠 전기기사
  • 1917–1923바쿠 소비에트 사회혁명당 활동가; 페르시아; 모스크바 체카; 사회혁명당 혐의 체포
  • 1923–1929OGPU 팔레스타인·벨기에·프랑스 불법체류자; '야샤 그룹' 간첩망 구축
  • 1929–1934OGPU 특수반장; 쿠테포프 장군 파리 납치(1930); 200명 이상 포섭
  • 1934–1938NKVD 특수임무반(SGO) 책임자; 트로츠키 기록보관소 탈취; 스페인 무기 밀반입; 상급소령
  • 1938–1941체포·고문·사형 선고; 독소전 발발 후 사면
  • 1941–1946NKVD 제4국 전시 정보작전; 1946년 퇴역
  • 1953–1956베리야 사건 연루 재체포; 부티르카 심문 중 사망

야코프 사울로비치 아그라노프

Яков Саулович Агранов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벨라루스 1893–1938 ✕ 처형

체카의 정치수사 설계자

1921년 타간체프 사건으로 페트로그라드 지식인들을 대거 처형한 뒤, 어찌 그리 가혹하냐는 물음에 아그라노프는 답했다. "페트로그라드 지식인의 70퍼센트는 한쪽 다리를 적의 진영에 담그고 있었소. 우리는 그 다리를 불태워야 했소."

1893년 10월 12일 모길료프 현 체체르스크에서 상인 집안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2년 사회혁명당에 들어갔다가 1915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했고, 같은 해 체포돼 예니세이 현으로 유배됐다. 1918년 인민위원회 서기로 레닌과 제르진스키의 지시를 직접 받았고, 1919년 체카에 들어가 크론슈타트 봉기와 안토노프 농민 봉기, 타간체프 사건을 수사했다. OGPU 비밀부장과 부의장을 거쳐 1934년 내무인민위원 제1부관 겸 국가보안총국 실질 책임자가 되어 키로프 살해 수사를 지휘했다. 1937년 사라토프로 좌천됐다가 체포돼 1938년 8월 1일 총살됐고, 사후 복권되지 않았다.

상세 이력 보기
  • 1919–1931체카와 OGPU의 정치수사 요원 겸 특별전권위원
  • 1931–1933OGPU 비밀정치부장, OGPU 위원회 위원
  • 1933–1934OGPU 부의장
  • 1934–1936내무인민위원 제1부관, 국가보안총국 업무 실질 지휘
  • 1936–1937NKVD 국가보안총국장
  • 1937–1938사라토프 NKVD 책임자, 1937년 7월 20일 체포돼 1938년 8월 1일 총살

보리스 리보비치 반니코프

Борис Львович Ванников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아제르바이잔 1897–1962 ○ 자연사

탄약과 원자력 행정을 맡은 베리야의 생산 관리자

«스탈린 동지, 당신은 적들에게 갇히셨지만, 나는 우리 편에게 갇혔습니다.»

바쿠 유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유대인 기술자 출신으로, 툴라 병기공장 책임자를 거쳐 1939년 무기인민위원이 되었다. 전쟁 직전 체포·고문당했으나 독일 침공 후 스탈린이 소환해 탄약인민위원으로 임명했고, 종전까지 포탄 생산을 4배로 끌어올렸다. 전후에는 쿠르차토프와 함께 제1총국을 이끌며 소련 원자폭탄 계획의 행정·공업 기반을 총괄했고, 수소폭탄 개발까지 관장했다. 세 차례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상세 이력 보기
  • 1930년대방위산업과 병기 생산 행정에서 성장
  • 1941체포 직후 전쟁 발발로 석방되어 탄약 생산에 복귀
  • 1941–1945탄약인민위원, 포탄·탄약 대량생산 체계 지휘
  • 1945–1953제1총국에서 원자폭탄 계획 행정 담당
  • 1953 이후베리야 몰락 뒤에도 원자력 생산 행정 경험으로 생존

나움 이사코비치 에이팅곤

Наум Исаакович Эйтингон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벨라루스 1899–1981 ○ 자연사, 모스크바

트로츠키 암살과 원자력 첩보를 설계한 소련 최고의 암약 지휘관

1940년 8월 20일 코요아칸에서 메르카데르가 트로츠키를 공격한 동안 에이팅곤과 카리다드 메르카데르는 각각 다른 차에서 대기했고, 메르카데르가 붙잡리자 달아났다.

벨라루스 슈클로프 출신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포그롬을 겪었고 1917년 사회혁명당에 가담했다가 내전 중 볼셰비키로 전향해 고멜 체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OGPU 외국부 요원으로 중국·터키·서유럽에서 암약했고, 에스파냐 내전기 오를로프의 부관으로 공화국 금 보유분을 소련으로 반출했다. 1940년 수도플라토프와 함께 트로츠키 암살 작전을 설계했으며, 독소전쟁 중에는 제4국 부책임자로서 적 후방의 전략적 기만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종전 후 원자력 첩보 부서를 총괄했으나 1951년 '시온주의 음모'로 체포되어 12년간 복역했고, 1964년 석방되어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 1981년 모스크바에서 자연사했으며 1992년 사후 복권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7–1919사회혁명당 입당; 모길료프 노동자·협동조합 활동; 1919년 RKP(b) 입당
  • 1920–1924고멜 체카 — 비밀작전부장 대리, 사빈코프 토벌 중 부상; 군사아카데미 동양부 졸업
  • 1925–1930OGPU 외국부 — 중국·터키 암약; 하얼빈 소련 총영사관 부영사
  • 1930–1936OGPU 특수작전국 — 세레브랸스키 보좌; INO 불법작전부 책임자
  • 1936–1939에스파냐 내전 — NKVD 부주재관 (Kotov 장군); 공화국 금 보유분 소련 반출
  • 1940수도플라토프와 '오리 작전' 공동 지휘 — 멕시코 트로츠키 암살
  • 1941–1945NKVD 제4국 부책임자 — 기만작전 '수도원'·'베레지노' 지휘
  • 1945–1951NKVD/NKGB 'S' 부서 부책임자 — 원자력 첩보; 발트·서우크라이나 반소 파르티잔 제압
  • 1951–1964'MGB 시온주의 음모'로 체포, 12년형; 1953년 베리야에 의해 일시 복직 후 재체포
  • 1964–1981석방, 출판사 선임 편집자; 1992년 사후 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