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스테판 스타셰프스키

Stefan Staszewski

흐루쇼프 비밀연설을 수만 부 찍어내 당의 통제 밖으로 퍼뜨린 바르샤바 당위원회 개혁파 제1서기

1956년 3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휴식 시간, 흐루쇼프에게 스탈린의 반유대주의를 따져 묻자 흐루쇼프는 손을 떨며 스탈린이 소련 유대인에 대한 포그롬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바르샤바 유대인 상인 가정에서 태어나 14세에 공산청년운동에 가담했고, 국제레닌학교에서 수학한 후 폴란드 지하당 활동과 소련 체류를 오갔다. 1938년 NKVD에 체포되어 콜리마 수용소에서 8년을 보낸 뒤 1945년 폴란드로 돌아와 선전·언론·농업 부문에서 스탈린주의 노선을 집행했다. 1955년 바르샤바 당위원회 제1서기가 된 후 제20차 당대회를 계기로 개혁파로 전환, 당원들이 비밀연설을 학습하도록 제안하고 1만 5천여 부의 비공식 인쇄본을 찍어내 연설문이 폐쇄된 당 문서에서 세계적 문서가 되는 결정적 통로를 열었다. 폴란드 10월 후 고무우카와 충돌해 1957년 해임되고 1968년 반유대 캠페인으로 축출되었으며, 이후 반체제 운동을 지지하며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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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청년공산주의동맹(KZMP) 가입
  • 1926–1929모스크바 국제레닌학교 수학
  • 1930–1932폴란드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 활동
  • 1938–1945NKVD에 체포, 콜리마 강제수용소 8년형
  • 1945–1948카토비체주 선전비서, 『트리부나 로보트니차』 편집장
  • 1948–1954PZPR 중앙위원회 출판·언론부장
  • 1955–1957PZPR 바르샤바 위원회 제1서기
  • 1957–1958폴란드 통신사(PAP) 사장
  • 1968반유대 캠페인으로 PZPR에서 축출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Wojciech Jaruzelski

계엄령과 원탁회의 사이의 폴란드 지도자

1989년 원탁회의는 억압적 통치의 책임과 평화적 체제 이행이 한 인물의 경력 안에서 충돌한 사례다.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군인·공산당 지도자다. 1981년 계엄령을 선포해 연대노조를 탄압했으나, 1989년에는 야권과의 원탁회의 및 부분 자유선거를 받아들여 체제 전환의 협상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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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1계엄령 선포
  • 1981–1989폴란드 통일노동당 제1서기
  • 1989원탁회의·부분 자유선거 수용
  • 1989–1990전환기 폴란드 대통령

미에치스와프 프란치셰크 라코프스키

Mieczysław Franciszek Rakowski

1989년 선거에서 국민이 거부한 폴란드의 마지막 공산당 총리

1983년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연대노조 노동자들에게 둘러싸여, 바웬사가 '수상, 폴란드인끼리 이야기합시다'라고 하자 라코프스키는 '박사와 박사로서 이야기합시다'라고 답했다.

폴란드 통일노동당(PZPR)의 개혁파 정치인이자 『폴리티카』 주간의 편집장을 24년간 맡은 언론인이다. 1988년 10월 총리가 되어 원탁회의와 경제개혁(일명 빌체크법)을 추진했으나, 1989년 6월 4일 선거에서 전국명부에 올랐음에도 50%를 넘지 못해 낙선하며 체제의 민낯을 드러낸 인물이 되었다. 선거 참패 후 PZPR의 마지막 제1서기가 되어 1990년 1월 당 해산을 주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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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폴리티카』 편집장
  • 1972–1989세임 의원
  • 1981–1985야루젤스키 내각 부총리
  • 1988–1989폴란드 인민공화국 총리
  • 19896월 4일 선거에서 전국명부 낙선
  • 1989–1990PZPR 마지막 제1서기, 당 해산 주재
  • 1990–2008『지시』 월간지 편집장, 회고록 집필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

Tadeusz Mazowiecki
폴란드 국가기관 반체제 인사 폴란드 폴란드 1927–2013 ○ 자연사

동구권 최초의 비공산 총리가 된 연대노조의 가톨릭 지식인

우리는 최근 과거의 역사를 굵은 선으로 가른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 위기에서 폴란드를 구하기 위해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만 책임질 것이다.

가톨릭 평신도 지식인으로 1958년 독립 월간지 《비엥치》를 창간·주재하고, 1961년부터 1971년까지 '즈나크' 가톨릭 의원단 소속으로 의회에서 양심적 반대를 실천한 폴란드의 정치인이다. 1980년 그단스크 파업에서 연대노조 고문단을 이끌고 《티고드니크 솔리다르노시치》 초대 편집장을 맡았으며, 계엄령 아래 1년간 억류된 뒤 1989년 원탁회의 협상의 핵심 설계자로 활동했다. 1989년 8월 24일 동구권 최초의 비공산당 총리로 취임해 발체로비치 계획을 통한 급진적 시장 개혁을 단행했고, '굵은 선'으로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으며, 1990년 대선에서 바웬사에 패배한 뒤 민주연합을 창당해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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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1981《비엥치》 창간·편집장
  • 1961–1971'즈나크' 의원단 소속 의원
  • 1980그단스크 파업 연대노조 고문단장
  • 1981《티고드니크 솔리다르노시치》 초대 편집장
  • 1981–1982계엄령 아래 억류
  • 1989원탁회의 협상 핵심 인물
  • 1989–1991폴란드 총리
  • 1992–1995유고전범조사 유엔 특별보고관

스타니스와프 카니아

Stanisław Kania

타협을 모색하다 당권을 잃은 당 지도자

1981년 10월, 당 중앙위원회는 카니아를 물러나게 하고 야루젤스키를 제1서기로 선출했다.

스타니스와프 카니아는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의 지도자로서 당의 통제와 사회적 요구 사이의 균열을 관리하려 했다. 1980년 8월 파업과 연대자유노조의 등장 뒤 그는 노조 및 가톨릭 세력과 대화를 모색했지만, 당 내부의 불신과 경제 위기는 타협의 공간을 좁혔다. 소련 지도부의 압박 속에서 1981년 10월 제1서기직에서 물러났고, 곧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가 뒤를 이었다. 1981년 계엄령 도입 책임으로 기소됐으나 2012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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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폴란드 노동자당 입당
  • 1948폴란드 통일노동자당 창립대회 대표
  • 1968–1971폴란드 통일노동자당 중앙위원회 행정부장
  • 1971–1980폴란드 통일노동자당 중앙위원회 서기
  • 1975–1981폴란드 통일노동자당 정치국원
  • 1980–1981폴란드 통일노동자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 1982–1985폴란드 국가평의회 위원

당의 통제와 노동자 협상 사이에 선 개혁파

그는 파업 첫날 국가보안기관의 보고가 믿을 수 없다며 즉시 현장 정보를 모으라고 지시했다.

타데우시 피슈바흐는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의 당료이자 외교관으로, 1975년부터 그단스크 당 제1서기를 지냈다. 1980년 8월 그는 파업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데 반대하며 노동자 대표들과 초기 협상에 나섰고, 미에치스와프 야기엘스키가 도착한 뒤에도 정부 측 협상에 관여했다. 그러나 그의 온건한 조정은 독립 노조를 통제하려는 당의 전략과 충돌했고, 계엄 이후 중앙 정치에서 밀려났다. 이후 의회 부의장과 핀란드·라트비아 주재 대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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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폴란드 통일노동자당 입당
  • 1964–1968엘블롱크 지구당 위원회 서기
  • 1968–1971트체프 지구당 위원회 서기
  • 1971–1975그단스크 주 당 위원회 서기
  • 1975–1982그단스크 주 당 위원회 제1서기
  • 1976–1985폴란드 인민공화국 의회 의원
  • 1982–1986헬싱키 주재 폴란드 대사관 참사관
  • 2001–2005라트비아 주재 폴란드 대사

즈지스와프 쿠로프스키

Zdzisław Kurowski

청년조직 출신의 당 관료

1980년 7월, 그는 미에치스와프 야기엘스키와 함께 파업 중인 루블린으로 파견된 정부 대표단에 합류했다.

즈지스와프 쿠로프스키는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의 청년조직에서 성장해 당·국가 기구의 중견 간부가 된 정치가였다. 그는 비아위스토크 지역 당 지도부와 중앙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농업·청년·경제 행정을 연결했다. 1980년 루블린 노동자들의 파업이 확산되자 미에치스와프 야기엘스키와 함께 정부 대표단으로 파견되어 임금과 생활 조건을 둘러싼 요구를 협상했다. 이후에도 대외경제 관료로 일하며 인민공화국 체제의 관리자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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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1956폴란드 청년동맹 활동가
  • 1957–1972농촌청년동맹 중앙위원장
  • 1969–1985폴란드 인민공화국 하원 의원
  • 1972–1975비아위스토크 주 당위원회 제1서기
  • 1975–1980PZPR 중앙위원회 서기국 성원
  • 1977–1980PZPR 중앙위원회 경공업·상업·소비부장
  • 1980PZPR 중앙위원회 조직부장
  • 1982–1989대외경제 관료, RWPG 및 무역부

아담 미흐니크

Adam Michnik

공산 정권과 협상해 평화적 전환을 설계한 반체제 전략가

낙원이 아니라 헌법을 위한 혁명. 반(反)유토피아적 혁명. 유토피아는 단두대와 굴라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가정에서 자랐으나 1968년 위기로 투옥되며 반체제 인사가 되었다. 노동자방어위원회(KOR)와 연대노조의 전략가로 활동하고 1989년 원탁회의에 참여했으며, 《가제타 비보르차》 초대 편집장으로서 '당신들의 대통령, 우리의 총리' 구상을 제안해 평화적 권력 이양을 설계했다. 이후 정계에서 물러나 언론인으로 남아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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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반체제 활동으로 투옥
  • 1977노동자방어위원회(KOR) 활동
  • 1980–1989연대노조 고문, 계엄령 기간 재수감
  • 1989원탁회의 협상 참여, 《가제타 비보르차》 초대 편집장
  • 1989.07「당신들의 대통령, 우리의 총리」 구상 제안
  • 1989–1991계약 세임 의원
  • 1989–현재《가제타 비보르차》 편집장

레셰크 발체로비치

Leszek Balcerowicz

폴란드 충격요법의 설계자이자 체제전환의 상징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를 추구함으로써 기회의 창에 대비해야 한다.

폴란드 충격요법의 설계자. 1989년 마조비에츠키 내각의 재무장관 겸 부총리로 임명되어 '발체로비치 계획'을 주도했고, 초인플레이션을 진압하고 가격 자유화와 통화 태환을 단행하며 동구권 최초의 급진적 시장 개혁을 실행했다. 개혁은 폴란드를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로 전환시켰으나 20%의 GDP 하락과 대량 실업을 동반했고, '발체로비치는 물러가라'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격렬한 사회적 반발을 낳으며 1989년 체제전환의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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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SGH 바르샤바 경제대학 졸업
  • 1978–1980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 연구원, 비공식 개혁팀 주도
  • 1980년대연대노조 경제 고문
  • 1989–1991부총리 겸 재무장관, 발체로비치 계획 실행
  • 1995–2000자유연합당 당수
  • 1997–2000부총리 겸 재무장관(2차)
  • 2001–2007폴란드 국립은행 총재
  • 2007–현재시민개발포럼(FOR) 창립·이사장

보그단 보루세비치

Bogdan Borusewicz

1980년 그단스크 파업 계획을 입안하고 MKS를 공동 설립한 연대노조의 설계자

레닌 조선소에서, 레닌의 이론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접어 버렸다.

1980년 8월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 파업의 실질적 설계자로, 파업 계획을 입안하고 21개 요구를 분류·우선순위화했으며 공장간파업위원회(MKS)를 공동 창립한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가이자 역사가이다. 1981년 12월 계엄 선포 후 4년 넘게 지하에 숨어 불법화된 연대노조의 지하 조직망을 재건했고, 여성으로 변장해 딸의 세례식에 참석할 정도로 철저히 은신했다. 1986년 체포되었다가 사면으로 풀려났고, 공산정권 붕괴 후 국회의원·상원의장·내무차관을 거쳐 2010년에는 몇 시간 동안 폴란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독특한 이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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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시위 전단 배포로 체포·3년형 선고, 1969년 사면
  • 1977–1978자유해안노조(WZZ) 공동 조직
  • 1980.08그단스크 조선소 파업 계획 입안·MKS 공동 창립
  • 1981–1986계엄령 아래 지하활동, 임시연대조정위원회 위원
  • 1991–2001폴란드 하원의원(3선)
  • 1997–2000내무행정차관(경찰 담당)
  • 2005–2015폴란드 상원의장(3선)
  • 2010.07.08대통령 권한대행(수 시간)

알리나 피엔코프스카

Alina Pienkowska
연안 자유노조 반체제 인사 폴란드 폴란드 1952–2002 ○ 자연사

정권이 파업 종료를 선언한 순간 노동자들을 붙잡아 연대 파업으로 전환시킨 조선소 간호사

"당신은 그들을 배신했어요. 이제 당국이 우리를 빈대처럼 짓밟을 겁니다." 바웬사가 파업 종료를 선언한 순간 그에게 한 말.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 간호사로 일하며 1978년 자유해안노조(WZZ) 창립에 참여하고 지하신문 『해안의 노동자』에 노동안전과 직업병에 관한 글을 기고한 폴란드의 반체제 노동운동가이다. 1980년 8월 16일, 경영진이 임금인상을 약속하자 바웬사가 파업 종료를 선언했지만, 피엔코프스카는 안나 발렌티노비치와 함께 조선소 정문을 막아서서 동조 파업에 들어간 다른 공장 노동자들을 버릴 수 없다고 호소하며 파업을 연대로 전환시켰다. 이 개입으로 공장간파업위원회(MKS)가 결성되었고, 그녀는 21개 요구 중 의료개혁을 담은 16번 요구의 초안을 썼으며 8월 31일 그단스크 협정의 서명자 중 한 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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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자유해안노조(WZZ) 창립 참여, 『해안의 노동자』 편집
  • 1980.08.14–16조선소 파업: 외부 연락 담당, 파업 연장에 결정적 역할
  • 1980.08.17–31MKS 상임위원, 21개 요구 공동 초안·그단스크 협정 서명
  • 1980–1981NSZZ 연대노조 보건의료 전국부문위원장
  • 1981.12–1982.07계엄령으로 체포·억류
  • 1982–1989지하 연대노조 활동, 억압 피해자 구호
  • 1991–1993폴란드 상원의원(그단스크)
  • 1998–2002그단스크 시의원

예지 보로프차크

Jerzy Borowczak

자유노조를 시작한 조선소 노동자

“파업을 준비한 지 7일이 지나고, 마침내 이곳 조선소에서 시작해야 할 날이 왔습니다.”

예지 보로프차크는 1980년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자유노조 운동의 문을 연 젊은 노동자였다. 그는 보그단 펠스키와 루트비크 프론지뉴스키와 함께 8월 14일 파업을 시작했고, 안나 발렌티노비치의 복직과 임금 인상, 1970년 희생자 추모비를 요구했다. 계엄령 뒤에도 저항을 이어 가다 수감과 해고를 겪었으며, 1989년 조선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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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그단스크 조선소 건설기술학교 졸업
  • 1979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 해안 자유노조 협력자
  • 1980보그단 펠스키, 루트비크 프론지뉴스키와 8월 파업 시작
  • 1980–1981연대 조선소 지부 창립위원, 부위원장
  • 1981–1982계엄령 저항, 이와바 구금시설 수감
  • 1982–1989해고 뒤 고소공포 작업협동조합에서 근무
  • 1989–1993조선소 복귀, 직장 연대노조 위원장
  • 2000–2023폴란드 하원의원, 그단스크 연대센터 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