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 루스코예 우스티예에 도착한 젠지노프는 일기에 썼다: '이곳은 물론 러시아지만, 17세기, 어쩌면 16세기의 러시아다.'
블라디미르 젠지노프는 러시아 사회혁명당의 중앙위원이자, 세 차례의 시베리아 유배를 북극 시베리아의 민족지·조류학 연구로 바꿔낸 언론인이었다. 1918년 사마라 제헌의회 위원회와 우파 디렉토리에서 볼셰비키와 콜차크 사이의 민주적 대안을 지지하다가 옴스크 쿠데타로 추방당했고, 이후 파리와 뉴욕에서 혁명과 내전의 경험을 기록하는 망명 언론인으로 살았다.
백색테러를 비판하는 글을 쓰다 1920년 쇼모지 벨러와 함께 살해된 『네프서버』의 사회주의 작가·기자
커셔(코시체)에서 태어나 그곳의 『커셔이 너플로』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1918년 장편소설 『세프치크 집안』을 냈다. 1919년 『네프서버』의 기자가 되어 프롤레타리아, 농민의 토지 갈망, 이주 문제를 다루었고, 헤이여시 이반·프로너이 팔·오시텐부르그모러베크 줄러의 이름으로 대표되는 백색테러를 비판했다. 이 때문에 1920년 2월 17일 편집인 쇼모지 벨러와 함께 오스텐부르크 부대에 끌려가 총살되었고, 시신은 도나우강에 버려졌다.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해 베르됭 전투에서 부상한 뒤 1917년 제대했고, 전쟁 경험을 거쳐 평화주의자가 되어 독일독립사회민주당에 가입했다. 1919년 4월 바이에른 레테 공화국 대통령을 엿새간 맡고 공화국의 무장 저항에 참여했으며, 반역죄로 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대표 희곡들을 썼다. 나치 집권 뒤 망명해 반나치 활동을 이어갔고 1939년 뉴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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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독일군에 자원입대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다.
1917전쟁 중 부상과 건강 악화 뒤 군에서 제대하다.
1919독일독립사회민주당원으로 바이에른 레테 공화국 지도부에 참여하고, 4월 6~12일 대통령을 맡다.
『카탈루냐 찬가』, 1936년 12월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첫인상: 「내가 노동계급이 안장에 올라앉은 도시에 있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 버마 제국경찰 5년과 파리·런던 밑바닥 생활의 르포로 작가가 되었고, 1936년 12월 스페인으로 건너가 영국 독립노동당(ILP)의 소개로 POUM 민병대에 들어가 아라곤 전선에서 넉 달을 보내다 우에스카에서 목에 저격 총상을 입었다. 요양 중 겪은 1937년 5월 바르셀로나 시가전과 뒤이은 POUM 불법화는 그를 소련식 공산주의와 완전히 갈라서게 했고, 그 자신이 「트로츠키주의자」로 수배되어 아내와 함께 국경을 넘었다. 그 경험을 적은 『카탈루냐 찬가』는 출간 반년 동안 683부밖에 팔리지 않았다. 오웰은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규정했으며, 『동물농장』과 『1984』는 혁명이 새로운 지배로 굳는 과정과 그것을 떠받치는 언어를 해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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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영국령 인도 모티하리에서 식민지 아편국 관리의 아들 에릭 아서 블레어로 출생
1917–1921이튼 칼리지 장학생
1922–1927인도 제국경찰로 버마 근무, 제국 통치에 대한 환멸 끝에 사직
1928–1932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접시닦이·교사·서점 점원
1933『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출간,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
1936잉글랜드 북부 탄광지대 취재로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집필, 에일린 오쇼너시와 결혼
1936.12바르셀로나 도착, 독립노동당(ILP)의 소개로 POUM 민병대 입대
1937.01–05아라곤 전선 알쿠비에레·우에스카 복무, 5월 우에스카에서 목에 저격 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