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бщенародное государство · 1961년–1980년대 후반

전인민국가

All-People's State

전체 인민의 이해와 의지를 대변하는 사회주의 유형의 국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역사적 임무를 완수한 뒤 등장한다.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생겨난 것이 아니며, 착취 계급이 사라진 조건에서 전체 근로자의 근본적 이해를 표현한다. 1961년 CPSU 제3차 강령에서 정식화되어 1977년 소비에트 헌법 제1조에 명문화되었고, 국가 소멸로 가는 사회주의 단계의 국가로 이론화되었다.

상세

역사

전인민국가 개념은 1947년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제3차 강령 초안 논의에서 이미 거론되었고, 1961년 채택된 CPSU 제3차 강령에 '전인민의 국가'로 들어갔다. 제3차 강령은 1961년 10월 31일 제22차 당대회에서 채택되었으며, 스탈린 시기 행정적 압력으로 위에서부터 밀어붙이던 방식을 공산주의 도덕에 기초한 사회주의적 자치로 대체하려 한 시도였다. 초안 작성은 1958년 중반 시작되어 중앙위 서기 보리스 포노마료프가 주재했고, 약 100명의 과학자와 전문가가 3년간 참여했다.

이론적 준비는 먼저 이루어졌다. 오토 쿠시넨은 1957년 6월 전원회의 후 당 간부회 위원 겸 중앙위 서기로 선출되었고, 그해 9월 작성해 10월 당 지도부에 보낸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현대적 해석에 관한 비망록'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역사적으로 소진되었다는 견지를 폈다. 그가 편집한 《마르크스-레닌주의 기초》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가 전인민국가로 성장한다는 테제를 처음 언급한 문서 가운데 하나였다. 표도르 부를라츠키는 1960년 초 안드로포프가 이끄는 중앙위 부서에 컨설턴트로 파견되어 새 당 강령 초안 작업에 거의 2년간 참여하면서,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전인민국가로의 이행' 테제를 초안에 넣을 기회를 얻었다고 회고했다. 쿠시넨은 그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 기초》의 전인민국가 이행 장을 쓰도록 제안하기도 했다.

1977년 10월 7일 채택된 소비에트 헌법 제1조는 소련을 '노동자·농민·인텔리겐치아, 모든 민족과 종족의 근로자의 의지와 이해를 대변하는 전인민의 사회주의 국가'로 규정했고, 프롤레아타리아 독재의 임무를 완수한 소비에트 국가가 전인민국가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이 헌법은 '발전된 사회주의의 헌법'으로 역사에 남았으며, 전문은 소비에트 사회를 '공산주의로 가는 길의 합법칙적 단계인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로 규정하고 소비에트 권력이 계급 적대와 민족 간 적대를 종식시켰다고 주장했다.

관계

전인민국가는 역사적 임무를 완수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를 계승한 것으로, 국가 소멸과 공산주의적 사회 자치로의 이행 경로에서 일정한 단계로 이론화되었다. 다만 공산주의가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존속하는 것으로 상정되었다.

이 개념은 발전된 사회주의의 특징적 국가 형태다. 발전된 사회주의는 소련이 1964년(좁게는 1966~1967년)부터 1985년까지를 가리킨 공식 명칭으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와 공산주의 사이의 중간 단계이며 이전의 '공산주의 전면 건설 시기'(1959~1964)를 대체했다. 브레즈네프는 1967년 11월 7일 보고에서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선언했고 1971년 제24차 당대회가 이를 규범으로 확정했다.

국가 소멸 테제의 계보는 엥겔스의 《반뒤링》 1878년 저작과 레닌의 《국가와 혁명》 1918년 저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9년 제21차 당대회는 사회주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와 '공산주의 전면 건설'로의 이행을 선언했고, 1961년 제22차 당대회가 이를 강령으로 채택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적대적 계급과 계급투쟁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노동계급이 사회를 국가적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사회주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가 가져온 변화로 인해 독재 형태의 국가 지도는 더 이상 필수적이지 않게 되었다.

구별

소련 사전은 전인민국가를 1870년대 독일 사회민주당이 내세운 소위 '자유 인민국가'와 명시적으로 구별했다. 부르주아적 조건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기초해 사회주의 혁명 없이 그러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기회주의적이며 환상이라는 것이다. 반면 소련의 전인민국가는 현실적 사실로 제시되었다.

또한 '공산주의 국가'(노동자 국가)나 '인민민주주의'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관점에서 공산주의는 계급도 국가도 없는 사회를 전제하므로 '공산주의 국가'는 자기모순이며, 전인민국가는 공산주의로 가는 길 위의 사회주의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이론화되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와의 구별은 헌법 조문에도 나타난다. 1936년 헌법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을 '모든 근로자 조직의 지도적 핵심'으로 규정했고, 1977년 헌법은 소련을 전인민국가로 규정하고 제6조에서 CPSU의 지도적·인도적 역할을 정치체제의 핵심으로 명시했다. 사전은 이를 전인민국가 안에서도 노동계급이 지도적 역할을 유지하는 것으로 읽었다.

사례와 비판

소련에서 이 개념은 1961년 제3차 강령에 '전인민의 국가'로 들어갔고 1977년 헌법 제1조에 명문화되었다. 공식 개념으로서의 수명은 1961년 정식화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1986년 제27차 당대회 이후 '발전된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점차 폐기되고 소련 문헌은 '발전 중인 사회주의'를 더 자주 말하게 되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국가 소멸 이전에 사라졌다는 발상은 국가가 계급 지배의 도구로만 존재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계급 개념과 단절한다는 점에서 논쟁적이었다. 마오쩌둥주의와 중국공산당은 이를 수정주의로 비판했고, 이 입장은 지금도 유지된다. 왕웨이광은 국가가 계급투쟁의 산물인 이상 초역사적·초계급적·전인민적일 수 없고 계급적 기초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련 사전은 반대로 전인민국가가 계급을 초월하거나 계급이 없는 국가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착취 계급이 사라졌기 때문에 국가는 전체 근로자의 근본적 이해를 표현하며, 남아 있는 제한적 기능은 계급 억압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사회생활 규범을 위반하는 특정 개인에 대한 강제일 뿐이다. 사회정치적·사상적 통일은 '소비에트 인민' 개념으로 포착되며, 국가가 전인민의 의지의 도구가 된 것은 농민과 인텔리겐치아가 사회주의화되어 노동계급의 입장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1961년 CPSU 제3차 강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전인민국가로의 이행을 공식 선언
  2. 위키백과 (러시아어) 쿠시넨이 1957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소멸을 주장한 비망록과 《마르크스-레닌주의 기초》 교과서에서 전인민국가 테제를 처음 도입
  3. 위키백과 (러시아어) 부를라츠키 회고록: 자신이 1961년 당 강령 초안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전인민국가로의 이행' 테제를 삽입했다고 증언
  4. tapemark.narod.ru 《과학적 공산주의 사전》(Научный коммунизм: Словарь)의 'Общенародное государство' 항목: 개념 정의, 계급적 성격 논쟁, 국가 소멸로의 경로 설명
  5. 위키백과 (영문) 제3차 강령의 구조와 채택 경위, 전인민국가가 등장한 문서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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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tapemark.narod.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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